미국의 전쟁중독증과 난민 위기

[주간 프레시안 뷰] "미국 군사주의, 극소수만 배 불린다"

지난주 '프레시안 뷰'에서 저는 '난민 위기의 근원은 미국이 촉발했거나 개입한 전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지구상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입니다. 지금도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 예멘 등에서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유로 미국과 러시아가 준전시상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수천만 난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전쟁을 계속하는 걸까요?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는 고상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은밀한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군산복합체를 비롯해 미국의 지배 계층에게 전쟁이 최고의 돈벌이 수단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쟁은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중대한 버팀목이기 때문에 중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난민 희생자의 절반은 어린이

미국의 전쟁경제를 얘기하기 전에 지난 2일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Rafat Alkhateeb

위의 만평은 요르단의 만평가 라파트 알카팁의 작품입니다. 자유와 안전과 인권이 보장된 대륙과 허허벌판의 대양 사이에는 철조망이 쳐있고, 세 살의 쿠르디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대양 한가운데 주검으로 버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계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실제로 이런 철조망은 미-멕시코 국경 사이에 설치돼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햐려는 중남미인들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분쟁 지역 사망자의 절반이 어린이라고 합니다. 1995년 유니세프는 이전 10년간 군사분쟁에 의한 어린이 사망자가 200만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1차 걸프전이 끝난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로 이라크에서만 50만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999년 당시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주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강변했습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왔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생필품과 의약품 부족으로 어린이 50만 명을 비롯해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참담한 고통 속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아가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이슬람국가(IS)가 국토의 3분의 1을 점거하는 등 이라크는 무법천지가 됐습니다. 이라크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국내 난민만 310만 명입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서유럽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제3국에 대한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단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구유고연방을 비롯해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의 정권이 무너졌고 시리아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등의 인도주의적 개입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혼란과 파괴를 불러왔습니다. 수천만 명의 전쟁 난민들이 살 길을 찾아 지구 도처를 헤매가다가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영국 트리니티대학의 비제이 프랴사드는 "서방은 (자신들의 대외활동의 근거로)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행동한다"고 비판합니다. 대외 개입의 대상이 된 제3세계 국가에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기는커녕 혼란과 고통만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서방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서방의 자유, 서방의 평등일 뿐 보편적 인류의 자유와 평등은 아니라는 겁니다. 각종 자유무역협정과 IMF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본의 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반면 국제자본의 횡포로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제3세계 국민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서방으로 이주하는 것은 철저히 봉쇄합니다. 한마디로 자본에는 국경이 없지만 인간에게는 국경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제자본의 일방적 횡포에 반대하는 제3세계의 지도자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에 의해 제거됩니다. 프라샤드는 현재 서방이 추구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돈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돈의 자유'를 위해 무력이 행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Regime Change Refugees: On the Shores of Europe)

20세기 이후 미국의 무력행사는 돈벌이를 위한 것

1953년 이라크, 1954년 과테말라, 1973년 칠레 등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벌인 정권전복 공작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들 나라의 민주정부는 석유메이저를 비롯한 미국 대기업의 돈벌이에 방해가 됐기 때문에 제거된 것입니다. 미국 대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미국의 군사력과 정보기관이 동원된 것은 20세기 초 이래 미국의 전통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우선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됐습니다. 1900-1910년대 미국의 전설적 해병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이 멕시코, 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들에 군사 정벌을 나선 것은 미국 대기업의 돈벌이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버틀러 장군은 1935년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통해 예전의 자신은 '자본가들을 위한 조폭'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군사행위가 미국의 안보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고매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고백한 것이죠.

1차 대전 참전의 결정적 이유도 대기업의 돈벌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최고 금융재벌 J. P. 모건이 영국과 프랑스 등에 대출한 수십억 달러의 전쟁 자금을 회수하려면 이들 연합국이 승리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1934년 제랄드 나이 상원의원은 미국의 1차 참전 경위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했습니다. 결론은 "은행가들(모건)이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중심이자 핵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전 당시 윌슨이 내세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은 사실상 거짓이라는 얘깁니다.

이에 앞서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통령 취임 직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실은 (…) 자네나 나도 알다시피 이 나라 정부는 앤드류 잭슨(1829~1837년 재임) 이래 금융계가 소유하고 있다는 걸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금권에 의한 미국 정부 통제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미국의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정부기구가 아니라 민간 은행가들이 비밀리에 만든 민간기구입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활동무대를 전 세계로 확대합니다. 미국 자본의 세계적인 이윤 추구 활동을 돕기 위해 동원된 것이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과 CIA 등 비밀공작기관입니다. 앞에 말한 것처럼 민족주의를 내세워 미국 대기업의 이윤 추구를 방해하는 이란, 칠레 지도자 등은 비밀공작으로 축출하고, 소련을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의 반대는 압도적 핵무기의 우세로 잠재운 것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1964~75년)의 패배로 미 군사력의 신뢰도에 중대한 균열이 생깁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 베트남을 굴복시키지 못함으로써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 자본의 이윤 추구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대리전 전략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군사주의의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소련과 데탕트에 나서는 한편, 대리인을 앞세운 은밀한 전쟁을 추진한 것입니다. 우선 닉슨은 1972년부터 이란에 미국의 신무기를 무제한 공급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미 지상군의 해외 파병이 불가능해졌고, 그동안 중동의 안보질서를 유지해왔던 영국이 1968년 이 지역에서 철수함으로써 안보 공백이 생긴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미국 신무기를 원하는 대로 제공할 테니 이란이 미국을 대신해 중동의 경찰 노릇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가' '중동의 안보는 중동 국가가' 맡으라는 닉슨 독트린의 적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그동안 전쟁 특수를 누렸던 미국 방위산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몰린 것이었습니다.

닉슨의 결정으로 미 방위산업의 상업화가 빠르게 진전됩니다. 1960년대까지 미국의 대외무기 이전은 퇴역 단계의 구식 무기를 정부 차원에서 무상원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란에 신형무기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미 방위산업체를 노다지를 만나게 됐습니다. 1971년 14억 달러에 불과했던 미국의 무기 수출은 1975년 160억 달러로 11배 이상 늘어납니다. 이 가운데 이란이 80억 달러, 사우디가 60억 달러를 차지합니다. 전체 수출의 87.5%입니다. 1960년대까지 이렇다 할 무기가 없었던 중동 지역은 이후 미국제 첨단무기의 핵심 구매자가 됩니다. 주목할 것은 1971~75년간 한국의 미제 무기 수입은 200배로 폭증했다는 점입니다.

중동 지역에 미제 무기가 범람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이 발생합니다. 1973년 10월의 1차 석유 위기입니다. 석유가격이 일거에 4배나 뛰어오르자 미국도 막대한 석유 대금 결제로 심각한 무역적자에 직면하게 됩니다. 미국은 사우디와 비밀 협정을 맺습니다. 앞으로 모든 석유대금 결제는 달러로만 한다, 사우디가 벌어들인 석유 수입금을 미국 금융기관에 예치한다, 그리고 미제 무기를 대량 구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두 약속은 달러의 국제결제통화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뒤는 미국의 석유 수입에 따른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사우디는 미제 무기의 최대 구입국이 됩니다. 사우디는 석유 대금을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는 형식입니다. 2011년 미국의 무기 수출액은 663억 달러로(러시아는 48억 달러) 전체 무기 거래의 79%를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사우디의 수입액은 절반이 넘는 334억 달러입니다. 중동 지역에 미제 신무기가 넘쳐나게 된 것이죠. 미국의 무기산업은 미국 경제의 매우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겁니다.

무슬림 용병을 앞세운 대소련 아프간 전쟁

한편 미국은 1978년부터 아프간의 무슬림 전사들을 앞세워 소련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한 전쟁을 벌입니다. 1979년 말 아프간의 안정화를 위해 소련군이 군사 개입을 단행하자 당시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드디어 소련에게 '그들의 베트남'을 선사할 기회가 왔습니다"고 말했답니다. 10년 간 3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 CIA 역사상 최대 비밀 공작으로 결국 소련을 무릎을 끓고 맙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사마 빈 라덴,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이슬람국가 지도자) 등 10만 명 이상의 무슬림 전사들이 탄생했습니다. 미국의 자금과 무기로 무장한 이들은 오늘날 중동지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또한 미국은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중동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무려 55억 달러의 정부 신용보증으로 이라크의 무기 구매를 돕는 한편 함께 화학무기 기술 이전 등 이라크의 전쟁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9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1차 걸프전을 일으켰고, 2003년에 이어 지난해부터 3차 걸프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차 아프간 전쟁에서 3차 걸프 전쟁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쟁의 과정을 보면 모두 미국이 개입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의 민영화-전쟁 자체가 돈벌이가 되다

미국 드레이크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이스마엘 호세인 자데는 <미 군사주의의 경제학>(2007년)이란 책을 통해 미국의 군사주의가 탈냉전(1990년)을 경계로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전의 군사주의는 미국 대기업의 해외팽창을 돕기 위한 것으로 그 경제적 과실이 일부나마 미국 국민들에게도 돌아간 반면 냉전 이후에는 전쟁 자체를 위한 전쟁이 됨으로써 방위산업 등 전쟁산업에 직접 연관된 극소수 엘리트만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네오콘 딕 체니가 전쟁의 민영화를 적극 추진한 탓입니다. 체니는 1992년 말 미 육군과 핼리버튼의 자회사 브라운루트 간에 5년간의 군대 업무 외주를 성사시키면서 전쟁 민영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후 체니는 세계 최대의 석유개발기업인 핼리버튼의 회장을 맡게 됩니다. 당시의 군대 외주는 병참 등에 국한된 것인 반면 클린턴 정부 때인 1994년 보스니아 내전부터는 미국 퇴역군인으로 구성된 MPRI란 기업이 크로아티아군의 훈련 및 전투 지휘를 맡습니다. 이 전투용역에 투입된 금액은 자그마치 4억 달러나 됩니다. 이후 미국의 다인콥스, SAIC, 블랙워터 등 미국의 민간 용병 집단은 코소보전쟁(1999년), 아프간전쟁 및 2차 걸프전 등에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럼스펠드 역시 군대 외주화의 신봉자였는데, 그의 임기 말인 2006년 이라크에는 미군 병사와 맞먹는 10만명의 민간 용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민간 용병은 전투를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요인 및 주요 시설 경호, 외국 군대의 훈련 및 지휘 등을 맡고 있습니다. 한 추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용병산업의 연 매출 규모는 1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미국 정보 관련 예산의 70%가 외주화

전쟁뿐만이 아닙니다. CIA 등 정보 수집도 외주화되고 있습니다. 탐사전문기자인 팀 셔록이 2008년에 낸 <청부 스파이(Spies for Hire)>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연간 정보 관련 예산 6백억 달러 줄 70%가 외주화돼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 수혜기업이 부즈 알렌 해밀턴으로 이 기업의 일감 중 99%가 정부 용역입니다. 부즈 알렌 해밀튼은 유명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일하던 곳이죠. 더 놀라운 것은 부즈 알렌 해밀튼이 CIA 용역을 수주한 것은 알렌 덜레스가 국장을 맡은 1953년부터였다는 것, 그리고 이 회사의 소유주는 아버지 부시, 영국 존 메이저 총리 등 미영의 고위 관리들이 주주로 있는 카알라일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보국(NSA) 국장을 지낸 마이크 매코넬이란 인물은 이후 클린턴 정부 때 부즈 알렌의 임원으로 옮겼다가 아들 부시 때는 미 정보기관의 총수인 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를 역임했고, 그 다음에는 부즈 알렌 부사장으로 옮겼습니다. 이렇듯 한 인물이 정부와 기업 사이를 오가면서 미국의 전쟁정책을 요리하고 그 과정에서 이윤을 챙긴다는 것이죠. 이렇듯 미국의 정관계와 기업에는 전쟁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세력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 재정적자의 대부분은 전쟁 부채

전쟁과 금융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익은 사유화되고 위험은 사회화된다는 것입니다. 즉 전쟁의 이익은 정치가와 고위 지휘관, 그리고 방위산업체들이 독차지 하는 반면 그 피해는 군인들의 목숨과 국민들의 혈세로 부담하는 것이죠. 금융 역시 이익은 소수 주주들이 독점하는 반면 위기가 닥치면 국민들의 세금으로 때웁니다.

미국의 과학자 윌리엄 에드스트롬이란 분이 최근 <카운터펀치>에 미국의 정부 부채와 전쟁 및 금융 간의 관계에 관한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전쟁을 일삼지 않았다면 정부 부채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GDP는 18조 달러, 부채는 17.52조 달러입니다. 내년도 우리 정부 부채가 645조원에 GDP의 40%를 돌파한다고 하는데, 우리 형편은 미국보다 훨씬 나은 편입니다. 미국은 부채 비율이 10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드스트롬은 미 정부의 통계가 부채는 실제보다 적게, GDP는 높게 계산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의 실제 GDP는 14.77조 달러, 연방정부의 부채는 23.1조 달러입니다. 부채 규모가 커진 것은 정부신탁기금으로부터의 차입금, 공무원 연금의 부족분, 헬스케어 비용 등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23.1조 달러의 부채 중 군사/정보/전쟁 비용에 의한 빚이 22.5조 달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연방정부 부채의 대부분이 전쟁 등 군사비용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1996년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연방정부의 부채는 5.5조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1940년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1996년까지 핵무기의 개발, 생산, 배치, 유지에 든 비용이 5.5조 달러였다고 합니다. 즉 핵무기 관련 비용 전체가 정부 부채가 된 것입니다. 이후 20년 간 미국이 군사/정보/전쟁 비용으로 쓴 돈은 연간 8500억 달러로 지난 20년간 17조 달러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5.5조+17조=22.5조 달러'라는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이 막대한 부채는 결국이 미국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갚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은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이용해 달러를 찍어내는 것으로(2008년 10월부터 4.5조 달러 발행) 적자 위기를 모면하고 있지만 중국 위앤화 등에 의해 달러 헤게모니가 무너질 경우 그 후과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전쟁중독증이 미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그동안 전쟁으로 경제를 유지해온 미국이 전쟁중독증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 위기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Wall Street and the Military are Draining Americans High and D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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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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