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임대료가 월 150불? 시리아 난민들 현실은…

[토론회] 난민 사태, 인도적 사안 아닌 정치적 사안

"시리아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시리아 난민임을 증명하려면 여권을 비롯한 인증 서류가 필요한데, 집이 폭격으로 무너져 버려 이런 서류들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1호 시리아 한국 유학생이자 시리아 난민들을 지원하는 '헬프 시리아'의 압둘 와합 기획국장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 중 외국으로 떠날 수 없는 시리아 국내 난민들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12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시리아의 비극,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주제로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주최하는 이야기 마당이 열렸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참석한 와합 국장은 시리아 내 난민캠프가 "다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고 밝혔다.

▲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기획국장이 시리아 내부의 의료 시설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참여연대

"지난해 시리아 내 난민 캠프를 방문했는데, 시리아 내에서는 병원과 학교가 폭격 대상 1순위가 돼버렸다. 치료와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없는 시설을 가져다가 그나마 병원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응급실에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고 심지어 1시간 전에 수술을 받은 사람들도 응급실로 옮겨졌다"

▲ 시리아 내 난민 캠프의 한 병원 응급실. 방금 수술을 마치고 온 환자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응급실에 누워있다. ⓒ압둘 와합

시리아 국내 난민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인 레바논의 난민들도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와합 국장은 "레바논으로 온 시리아 난민들은 레바논 민간인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텐트를 빌려야 한다. 임대료는 한 달에 100달러에서 150달러 수준"이라며 "레바논 사람들이 시리아 난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제단체나 유엔의 지원이 있지만 지원물품은 직접 시리아 난민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텐트 주인인 레바논 민간인에게로 간다"면서 "어떤 사람은 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간에 가로챈다"고 한탄했다.

▲ 레바논 사람들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임대를 준 텐트 ⓒ압둘 와합

시리아의 또 다른 이웃 국가인 요르단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 정부가 나서서 캠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텐트 임대료를 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상황은 상당히 열악했다. 와합 국장은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캠프에는 약 8만 명의 난민들이 모여 사는데 캠프에 사막에 세워져 있고 물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캠프 내 반 이상의 어린이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학교에 나가는 어린이들도 사실상 '수용'되는 것에 불과한 실정이다. 와합 국장은 "한 반에 130~15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있고 이들을 제대로 지도해 줄 선생님도 없다"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시리아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시리아 난민, 인도적 해결? 정치적 의지!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향하다가 터키의 한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어린이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난민 문제는 인도적인 사안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뜻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송영훈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하지만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송영훈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난민 문제는 인도적인 요소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그동안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측면이 있지만, 실제 난민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살펴봤을 때 인도주의적인 요인보다는 정치적 입장이 훨씬 중요한 변수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냉전 종식 후 난민의 정치적 가치가 감소하고,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난민 위기가 발생하면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다른 지역의 난민들을 자국으로 정착시키기보다는 발생국 주변에 난민 캠프를 설치하고 그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며 "실제 시리아 난민의 95% 이상이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난민의 대모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카다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그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방탄조끼만 입고 분쟁의 현장을 찾아 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그런 그가 난민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과 재정착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며 "우선적으로 유럽으로의 정착을 희망하는 피난민들이 최소한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내전, 끝나지 않는 이유

시리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난민을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방안도 있지만, 난민 문제를 유발한 원인인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만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군사적 균형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국익을 우선에 놓고 시리아 문제 개입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느슨한 대응 △종파와 지역 패권 등 중동 내의 복잡한 정치 지형 등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시리아 내전이 끝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참여연대

김 교수는 우선 미국이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중심에 두고 시리아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시리아와 대립했다. 양국은 적대관계에 있는데, 시리아가 내분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안보 걱정을 덜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리아가 분열돼 있는 상황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나쁠게 없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과 대립하고 있는 반군 중 세력이 가장 큰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에 나섰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IS가 점령한 시리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 정권보다 이스라엘에게 훨씬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셈법을 적용한다면 미국의 IS 공습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만 자국의 국익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사드 정권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러시아 역시 중동 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IS에 공습을 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러시아가 IS뿐만 아니라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반군에도 공습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구의 강대국뿐만 아니라 이슬람 내부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의 맹주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 국가 이란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 교수는 지금처럼 복잡한 양상의 내전을 끝내기 위해서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와 미국·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겪은 미국이 적극적인 개입을 망설이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인 대안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내전이 시작된 원인인 바샤르 알 아사드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종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와 이란, 그리고 국제사회가 아사드를 국제형사재판소의 전범재판에 넘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김종철 변호사 ⓒ참여연대
한편 시리아 난민 문제가 관심을 받으면서 한국의 난민 실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시리아 난민 768명이 들어왔는데 이 중 3명만 난민을 인정 받았다. 전체 난민 인정 비율로 보면 5%에 불과하다. 캐나다는 35% 정도"라며 난민 수용에 관대하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예전보다 난민 인정의 형식적인 측면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청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구금된 상태에서 난민 인정 절차를 기다려야 하고 이 구금에는 기한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것들이 난민 인식 문제로도 이어지는데,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반응이 많다"며 "우리도 일제강점기도 겪었고 전쟁도 치르면서 난민인 적이 있었다. 시리아 난민들도 지금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면서 난민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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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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