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엽 내정자, 박근혜 '의료 영리화' 종합선물세트

[분석] 박근혜, 왜 정진엽을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정진엽 전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을 내정한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초기 대응에 실패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을 경질하고 17년 만에 의사 출신 장관을 임명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전문가'를 내세워 임기 말에 '의료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전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전문가'였다. 문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주력했던 공무원 연금 개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에 책임을 져야 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문 전 장관을 경질하고 의사 출신 장관을 내정함으로써 메르스 종식 선언과 함께 후속 대책을 맡기겠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정진엽 내정, '의료 영리화' 가속화되나?

정진엽 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산업화·영리화' 기조에도 잘 맞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내정자는 병원 경영자의 이익 집단인 대한병원협회에서 병원정보관리 이사를, 의료 기기 업자의 이익 집단인 의료기기상생포럼에서 총괄운영위원장 등을 맡았으며, 삼성과 SK텔레콤 등 전자 회사와 통신사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바이오 산업과 헬스케어 산업 등에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서울대학교병원과 SK텔레콤의 영리 합작 회사인 '헬스커넥트' 사업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산업창의융합포럼' 글로벌헬스케어 분과 위원장을 맡음으로서 '의료 규제 완화론'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다. 공무원 연금 개편도 끝난 지금, 이러한 이력을 가진 정진엽 내정자가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 '의료 영리화' 정책에 박차를 가할 적임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 박근혜 대통령은 "의료 분야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연합뉴스

정진엽 내정자가 주관한 세미나는 '의료 영리화' 종합세트

정진엽 내정자의 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정 내정자가 글로벌헬스케어 분과 위원장으로 있던 산업창의융합포럼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지난해 6월 27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산업창의융합포럼 건강 분야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프레시안>이 5일 입수한 이 세미나 발제문을 보면, 정 내정자의 '의료 산업 활성화'에 대한 신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 세미나에서는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법제도'로 병원 부대 사업 제한, 병원 영리 자회사 제한, 영리 약국(법인 약국) 제한, 원격 진료 제한 등이 꼽혔다.
이 가운데 '병원 부대 사업 확대'와 '병원 영리 자회사 허용'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법 개정 없이 각각 시행 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 제시만으로 실현한 바 있다. 시민 200만 명의 반대 서명이 이어졌음에도 강행된 이 정책들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 초반에 최대 중점을 두고 추진한 대표적인 '의료 영리화' 정책으로 꼽힌다. (☞관련 기사 : 하루 새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 67만…합계 120만 명)

또 이 세미나에서는 "의료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신의료 기술 평가 절차 간소화, 의약품 인허가 절차 간소화, 보험회사의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 병원 부대 사업 확대, 건강 관리 서비스업 활성화, 해외 진출 의료 기관을 상대로 한 세금 감면 혜택, 줄기세포 치료제 규제 완화 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 동안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보험회사의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은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흔드는 규제 완화"이며, 줄기세포 등 각종 치료제 규제 완화는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조치"라고 비판해왔다. (☞관련 기사 : "신의료기술평가 규제 완화, 누구 위한 건가?", 박근혜 야심작 '의료 관광', 실은 독(毒)사과?)

이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들을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의료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청와대와 정 내정자의 생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의료법 개정안은 보험회사의 해외 환자 유치를 뼈대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의료법 개정안인 이른바 '원격 진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서비스산업법'은 기재부 장관의 의료 규제 완화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즉,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의료 산업 규제를 풀어 '병원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 법안을 '경제 활성화법'으로 규정하고,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 교수는 이 세미나에서 "헬스케어 시장은 급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원격 의료가 허용되지 않았다"면서 의료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원격 의료를 허용해서 건강관리서비스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또 "환자 유치에 보험회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유치 업자의 규모가 영세한 곳이 많아 시장이 교란이 심한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조직화된 보험회사를 유치 업자로 등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권 교수는 이와 함께 "병원 부대 사업 범위 확대, 건강관리서비스업의 활성화, 국제 의료(의료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며 더 나아가 "신의료 기술 평가가 좀 더 쉽게 되기 위해서는 (시행령, 시행규칙, 가이드라인 완화를 넘어서) 현행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엽 내정자가 복지부 장관이 되면, 의료 영리화와 직결돼 있는 이들 정책이 모두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이같은 의료 산업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면, 본격적으로 정진엽 내정자의 '공간'이 열리게 된다. 후속 대책을 광범위하게,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데는 장관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박근혜 정부가 '의료 민영화'의 물꼬를 트게 되는 셈이다.

▲ 산업창의융합포럼 건강 분야 세미나 자료집 갈무리.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산업창의융합포럼 글로벌헬스케어 분과위원장으로서 '의료 규제 완화' 포럼을 주도했다.

보건의료단체 "공공 의료 강화는커녕, 국민 보건복지와 관련 없는 인물"

보건의료 시민단체는 정진엽 내정자를 계기로 의료 영리화 정책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5일 논평을 내고 "정진엽 장관 내정은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부족한 공공 의료를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원 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의료 수출론을 키워 의료 산업화에 가속화를 꾀할 인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청와대는 '공공 의료를 강화하고 국민 건강에 안정을 이룰 적임자'라고 정진엽 내정자를 소개했지만, 그는 공공 의료 강화에 아무런 관련도 발언도 공헌도 한 바 없다"면서 "그가 의사라는 점을 제외하면 국민의 보건복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보건의료노조도 논평을 통해 "정 내정자는 분당서울대병원장 재임 시절 '의료 기관의 군비 경쟁'을 부추겨왔다"면서 "의료 수출, 원격 의료, 의료 산업화의 선두주자 격인 인물을 내정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의료 영리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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