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는 핵, 탄저균엔 탄저균?

[정욱식 칼럼] 北, 핵에 이어 생물무기까지?

우려했던 일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배달 사고(?)로 촉발된 탄저균 파문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비확산센터의 멜리사 해넘 연구원은 7월 9일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농약 연구소로 알려진 북한의 평양생물기술연구원이 생물 무기의 일종인 탄저균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넘이 지목한 연구소는 6월 6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현지 지도에 나섰던 곳이다. 그는 이를 보도한 <노동신문>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 연구소가 정규적이고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생물 무기를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북한이 주장하는 농약 시설은 "탄저균과 같은 생물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시설로도 이용될 수 있고, 또 위장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해넘은 과거 구소련과 이라크의 사례에도 이는 입증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노동신문> 사진에 등장한 현대적 장비들이 생물 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스위스의 농업생명과학센터(CABI)가 2005년에 북한에 생물 살충제 개발 시설을 제공했는데, 북한이 이를 생물 무기 시설로 전용하고 있을 개연성도 제기했다.

이러한 해넘의 주장이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되면서 북한이 발끈하고 나섰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이 시설은 "21세기 생물 농약을 연구 개발"하는 시설이라며, 이를 탄저균 생산 시설로 보는 것은 "정신착란증에 걸린 저능아들"이라고 비난했다.

▲ 오산 주한 미군 공군 기지를 비롯해 51곳에 탄저균을 배송한 사고를 일으킨 미국 유타주의 군 소속 더그웨이 연구소. ⓒAP=연합뉴스

프로파간다 전쟁의 재발

기실 한반도에서 생물 무기는 오랜 프로파간다의 소재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 무기 사용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진실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세균 무기 사용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오늘날까지 대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최근 발생한 주한 미군의 탄저균 반입 사건에 대해서도 북한은 6월 3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세균전 흉계"로 규정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미국은 북한의 생물 무기 개발 및 보유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대표적인 게 2001년 가을이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생물무기금지협약(BWC) 회의에서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대표적인 BWC 위반 국가로 지목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이듬해 1월에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대표적인 이유로 북한의 생물무기 보유 의혹을 들었다.

주목할 점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혹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실체가 불분명하고 검증도 어려운 생물 무기 개발 의혹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악의 축 발언이 제네바 합의에 의해 봉합되었던 북핵 문제를 다시 호출하게 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후세인 정권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 무기는 이라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마음 속에 있었다는 게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미국 국무부와 주한미군 사령관 사이의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국무부는 8월 30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생물 무기 제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헌신적인 노력을 해왔고 이를 개발·제조했으며 실전용으로 무기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수주 내에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세균 무기를 갖고 있고, 무력 충돌 발생 시 생물 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6월 보고서에도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에 대한 이견은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나왔었다. 레온 라포테 주한 미군 사령관은 국무부가 보고서를 발표하기 직전인 8월 26일 미군 공보국 군사정보지인 <아메리칸 포스 인포메이션>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계속 생물 무기 관련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를 무기화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생물 무기 능력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조차 이견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네오콘은 이를 호재로 삼았다. 그해 9월 6자 회담에서 9.19 공동 성명이 발표되자, 네오콘들은 북한의 핵무기 포기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 폐기를 요구하면서 이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한미 동맹, 솔선수범해야

현실적으로 생물 무기를 둘러싼 갈등을 풀기란 대단히 어렵다. 핵이나 미사일(로켓) 문제도 '이중 용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생물 무기 문제는 훨씬 까다롭다. 방어용과 공격용이라는 구분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농약과 같은 '평화적 목적'의 생물 연구는 언제든 '생물 무기'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는 검증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의 불신도 대단히 크다는 데에 있다. 이로 인해 상대방의 부정을 긍정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균무기의 적대적 의존관계가 나올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세균 무기 보유 의혹을 '주피터'와 같은 자신의 생물 무기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북한도 이를 빌미로 자신의 생물 무기 프로그램을 보유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문제 해결의 중요한 출발점은 남북한과 미국 모두 BWC 회원국이라는 데에 있다. 이에 근거해 한미 양국이 이 조약의 철저한 준수를 확약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생물 무기 보유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북한에게 더욱 강력한 국제적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사시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생물 무기를 사용하는 게 더욱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생물 무기 사용시 유엔 안보리 회부 등 강력한 국제적 대응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생물 무기는 포탄이나 미사일에 탑재하는 게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반도는 미핵(美核) 대 북핵이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불안한 '공포의 균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더해 양측에서 '탄저균엔 탄저균'이라는 적대적 상호의존과 보복 심리가 강해지면 한반도는 미래는 더욱 어둡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솔선수범을 통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내거나 더욱 강력한 대북 억제를 발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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