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가 던진 경고: AI의 시대, '노동사회기금'이 대안 될 수 있나?

[노회찬재단 함께 맞는 비 포럼] AI와 로봇의 시대, 노동의 대응

2026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선보인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가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아틀라스는 모든 움직임이 이제껏 본 어떤 인간형 로봇보다 자연스러웠고, 현대차그룹은 이 휴머노이드를 양산해 미국 공장 생산라인에부터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당장에 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반발을 놓고 다시 온라인에서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고, 대통령까지 '아틀라스 도입은 불가피한 변화'라는 취지로 말을 얹었다.

이 모든 소동은 앞으로 한국 사회, 아니 전 세계가 경험할 사태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가 과연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인간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지능(AI)만으로도 노동시장이 요동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반응을 일부 형편 좋은 노동자들의 이른바 '밥그릇 지키기'로 몰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향후 거의 모든 노동자들(생산직뿐만 아니라, 아니 그보다 더 사무-전문직)이 느낄 충격과 우려를 '조금 더 일찍' 표출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즉각적인 공포를 넘어서는 냉정한 판단과 담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포에 휩쓸리기만 한다면, 공포의 원인이 되는 변화를 너무 과장되게 받아들여 지레 후퇴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기술 변화를 노동자의 재앙으로만 몰고 가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데도 이를 놓쳐 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노동운동이 다시 한 번 근본적인 고민과 모색에 나서야 할 때다.

그래서 노회찬재단은 4월 22일 '함께맞는비'포럼 제17차 토론을 통해 'AI와 로봇의 시대, 노동의 대응'에 관해 따져봤다. 각 부문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 노동 연구자-정책가 등이 공동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연구모임 '노동포럼 나무'(labortree.net)에서 활동하는 안정화 박사가 발표를 맡아, AI를 통한 자본축적, 기술변화와 분배 등의 주제를 짚었고, 온-오프라인으로 토론회에 참여한 이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였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어느 때보다 열띠게 질문과 의견이 오간 자리였다.

▲노동포럼 나무 대표 안정화 박사(오른쪽)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노회찬재단

노동의 권리와 지위를 추락시킬 최근 기술 변화

안정화 박사는 우선, 현재 AI 개발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자본 축적 양상과 과거의 자본 축적을 비교하며 운을 뗐다. 1950-6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이끈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포디즘 축적 체제는 대규모 실물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반면에 이른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1990년대 이후의 금융화 국면에서 자본 축적은 이자, 배당, 지대 등 금융적 통로를 통해 이뤄졌다. 이 축적 체제에서는 이전 시기와 같은 활발한 실물 투자는 더 이상 없었고, 실물 투자가 후퇴하는 만큼 일자리 증가가 정체되었다. 즉,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났다.

이러한 과거의 두 사례와 비교하면, 최근 AI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축적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AI 개발 경쟁을 벌이는 빅테크 기업들은 금융화 국면에서 나타났던 일반적 양상과는 달리 대규모 실물 투자를 추진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실물 투자를 통해 드디어 고용 없는 성장이 극복될 것이라 내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실물 투자가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아니 줄어들기까지 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 전망한다.

흔히 AI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설파하는 논객들은 AI 등을 통한 자동화로 생산성이 기적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인간 노동이 불필요해지는 상태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처럼 보다 냉정한 분석가들은 그런 기적적인 생산성 급증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고용이 축소되고 고용의 질이 낮아질 가능성은 높다. 생산성의 비약적 증가가 없더라도, 현재 AI 개발의 방향이 노동절약형 기술 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안정화 박사는 무인공장이 보편화되어 생산과정에서 인간 노동 전체가 쓸모없어지는 상황보다는, 일부 노동자는 생산과정에 남고 일부 노동자는 퇴출되어 실업 상태가 됨으로써 현직 노동자와 실직 노동자 사이의 치열한 일자리 경쟁이 고용의 질을 낮추는 '고전적'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고용 경쟁 덕분에 임금은 하향 평준화될 것이고, 고용 규모 축소 덕분에 사회보험제도의 사용자 기여분을 크게 줄이는 등 복지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의 권리와 지위는 분명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일터에 남은 노동자들은 AI나 알고리즘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면서 노동과정으로부터 더욱 소외될 것이다. 한편, 아예 일터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은 직업 활동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체험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결국 노동의 소외와 궁핍화가 더욱 심해지는 삶에 내몰리게 된다.

그런데 안 박사는 이런 좁은 의미의 노동을 넘어, 노동의 시공간적 지평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여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AI가 중심이 된 자본 축적 과정에서 빅테크 기업들은 사회의 공공재인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키고 이로부터 수익을 낸다. 과거의 상품 생산에서도 자본은 공공재(가령 공적 투자로 구축된 사회간접자본 등)를 활용하면서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윤을 늘렸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데이터라는 막대한 공공재를 비용 지불 없이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무임승차를 전에 없이 확대한다. 즉, 사회 전체가 상품 생산 가치사슬에 포획된다.

이것이 가치사슬의 공간적 확장이라면, 가치사슬의 시간적 확장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령 노동자가 공장과 사무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노동력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품 생산도, 이를 통한 자본 축적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노동절약형 기술 도입을 통해 고용의 양과 질이 추락하면, 노동력 재생산에서 자본이 그나마 비용을 지불하던 부분이 대폭 축소된다. 공적 복지 기여분도 줄어들고, 숙련 노동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훈련 비용도 줄어든다. 그럼 노동자 가족이 스스로 버텨 나가야 할 몫이 커지고, 반대로 그만큼 자본에게 돌아가는 몫은 커진다. 기술 개발이 노동과 사회 전체의 고통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시공간의 지평을 넓히는 노동의 개입과 협상 - 노동사회기금을 향해

그러나 이런 악순환이 숙명은 아니다. 안정화 박사는 기술 유토피아론이든 디스토피아론이든 모두 기술이 자체 논리에 따라 발전한다는 기술결정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제는 고전이 된 영국 사회학자 트레버 핀치와 위비 바이커의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을 소개했다. 핀치와 바이커에 따르면, 하나의 기술에도 사회의 각 집단이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며 기술 발전은 이러한 사회 집단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특정한 방향의 기술 발전을 고정된 상수로 볼 게 아니라, 고용주나 정부처럼 기술 발전 방향의 결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최근에는 아세모글루 등이 노동친화적 AI의 개발과 적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D. Acemoglu, D. Autor & S. Johnson,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Brooking, 2026). 아세모글루에 따르면, AI를 도입한다고 하여 고용의 양과 질을 줄이는 노동 '대체'의 방향 밖에 없는 게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노동자의 숙련을 말살하지 않고 오히려 향상시키는 노동 '보완'의 방향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노동을 AI에 일방적으로 입력하는 대신 로봇과 인간의 협업을 촉진하는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방향을 계속 타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노동조합의 개입이 과거 활동방식의 단순한 연장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국으로 치면, 기업별 노동조합이나 기업별 단체교섭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상품 생산의 가치사슬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확대됐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임금이라는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관심사를 다룰 때조차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확대된 시간 지평'과 사회적 공공재에 대한 무단 사용이라는 '확대된 공간 지평'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별 단체교섭을 넘어 산업별 단체교섭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산업별 단체교섭을 뛰어넘는 사회적 교섭까지 필요하다.

안 박사는 이런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거 스웨덴 노동운동이 시도했던 '임노동자기금'의 현대판인 '노동사회기금'(가칭)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했다. 1970년대에 스웨덴 노동 진영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인 연대임금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대기업 초과이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과이윤을 신규 발행 주식 형태로 노동자들의 집단적 기금('임노동자기금')에 적립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계산으로 기금 설립 이후 20-30년이 지나면 임노동자기금이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기업, 산업, 국민경제의 결정에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임노동자기금 안 자체는 스웨덴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안 박사는 이러한 발상을 부활시켜 현재의 기술 급변 문제에 적용해볼만하다고 주장했다. 산업별 단체교섭만으로는 다 풀릴 없는 가치사슬의 사회적 확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세나 데이터세의 신설, 국가 AI 투자의 활용, 대기업 초과이윤의 공유 등을 바탕으로 '노동사회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런 노동사회기금이 현재의 국민연금기금과 마찬가지로 핵심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다면, 이 기금을 통해 대기업의 기술 개발 과정에 보다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가령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방향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도록 압박할 수 있고, 주식 보유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을 집단적인 숙련 향상 프로그램에 투자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사회기금' 제안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 사이에서 가장 열띤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려울 게 분명하지만 시도해야 한다'

발표가 끝난 뒤에 한 시간 가까이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우선 AI 전면화 이후의 대안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기본소득'과 '노동사회기금'의 차이가 무엇인지, 발표자가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안정화 박사는, 기본소득도 필요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본소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직업을 갖고 노동을 한다는 것이 다수의 인간에게 존엄성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필수적 계기이기에 모두가 '탈노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는 일부 기득소론의 전제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수 시민에게 노동(물론 노동시간의 대폭 단축을 전제로)의 기회를 부여하는 대안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런 취지에서 '노동사회기금'을 고민하고 있다는 답이었다.

이에 이어, 한국 사회에서 과연 산업별 단체교섭이나 사회적 교섭으로 전환할 수 있겠는가, 전 세계적으로 노동의 집단적 역량이 유례없이 약화된 현 상황에서 '노동사회기금' 같은 높은 수준의 대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안 박사는, 비록 속도가 대단히 느리기는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이나 청소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기존의 기업별 교섭을 넘어서는 교섭 형태가 발전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답했다. 더구나 기업별 체제로 출발했는데도 이 정도로 산업별 체제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례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거의 유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업별 단체교섭이든 '노동사회기금'이든 모두 '실현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시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론회가 있고 나서 며칠 안 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엄청난 1분기 실적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자 곧바로, 소속 노동자와 주주 가운데에서 누가 이익을 더 많이 나눠 가줘야 하는지가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또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의 고수익은 빅테크 중심 자본 축적의 한 사례이므로 이제는 '사회'를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사회기금'을 둘러싼 고민은 생각보다 더 가깝게 우리 앞에 이미 닥친 현안이었던 셈이다. 주주자본주의도, 기업별 노동조합도 AI 시대의 현안을 다루기에는 한참 낡아버린 틀이다. 이런 시대에는 오직 가장 전향적인 대안만이 현실적일 수 있다. 노회찬비전포럼의 이번 토론회와 그 뒤 며칠 동안 숨 가쁘게 전개된 현실은 바로 이 점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6 CEO 인베스터 데이'에 보스턴다이나믹스 아틀라스, 스팟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