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탄저균 반입, 국제 조약 위반 아닌가?

[정욱식 칼럼] 미국, 생화학 무기 실험 중단해야

한국에서 때아닌 탄저균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5월 28일 유타 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오산 미군 기지로 배송했다고 밝힌 것이다. (☞관련 기사 : 주한 미군, 비밀 탄저균 실험 들통 났다)

주한 미군과 일부 언론은 북한의 생화학 공격에 대비한 훈련 목적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그리 간단히 지나칠 사안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치명적 세균이 검역은 고사하고 사전 통보도 받지 않고 한국 영토에 있는 주한 미군 기지에 들어온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이 국제 조약을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도 가입한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제3조에서는 "이 협약의 각 당사국은 제1조에 열거한 미생물과 세균, 독소, 무기, 설비 또는 수송 수단을 수령 대상자 여하를 막론하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양도하지 아니하며"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반입된 탄저균은 BWC가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세균 무기이다. 이에 따라 이 조약의 가입국인 미국이 제3국으로 탄저균을 이전한 것은 이 조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방어용과 공격용 구분 의미 있나?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생화학 무기의 경우엔 공격용과 방어용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제독 실험에 사용되는 탄저균은 언제든 공격용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BWC가 생물 무기 보유 자체를 금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구소련에서 생물 무기 프로그램을 다룬 바 있는 세르게이 포포프는 "방어용과 공격용 생물 무기 프로그램의 최초 연구 단계는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생물 무기는 기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공격용과 방어용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여전히 비밀리에 생물 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미국은 1969년부터 생물 무기 제조를 중단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도 비밀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미국의 <핵과학자 협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2003년 9-10월호에서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세균 무기 개발에 착수했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잡지는 미국이 자체적인 세균전 능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탄저균, 페스트균, 보툴리누스균 등을 조종·변형·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소를 건설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러자 국제 사회에서는 미국의 생물 무기를 검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자국의 안보와 기업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제적 검증 요구를 묵살한 바 있다.

그 이후 미국의 생물 무기 프로그램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다만 이번에 탄저균이 미국 내 9곳의 연구소와 오산 공군 기지로 이송된 것을 감안할 때, 생물 무기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생화학무기 및 물질 반입 금지해야

이번 사건 직후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군이 들여오는 모든 생화학 무기 및 물질에 대한 통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에 백지수표를 위임한 한미행정협정(SOFA)의 관련 조항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불법 무기인 생화학 무기 반입에 면죄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진정 국제 규범을 중시하는 나라라면, 생화학 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비밀 프로그램을 중단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외부 이전을 중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스스로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다른 나라에게 강요하는 행태로는 미국의 이중성만 부각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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