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힙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릅니다. 본말을 뒤집었고,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심지어 분위기 파악조차 못했습니다. 청와대가 그렇습니다.
청와대 관계자가 지난 14일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삼성서울병원 부분 폐쇄 등 조치는 VIP께서 지시해 만든 즉각대응팀이 요구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으면 틀리지 않는다.'
어이없습니다. 삼성서울병원 부분 폐쇄가 무슨 희소식입니까? 메르스 사태 진정국면을 알리는 청신호라도 됩니까? 오히려 정반대 아닙니까?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란 사람은 공치사하기 바쁩니다. 그게 다 대통령 덕이라고 나댑니다. 헌데 메시지 내용을 잘 보면 '덕의 덕'입니다. VIP 덕에 즉각대응팀이 생겼고, 즉각대응팀 덕에 삼성서울병원이 부분 폐쇄에 들어갔다는 거니까 한 다리 건너 박 대통령 공적이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어이상실 할 수준인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이상실을 넘어 '어이졸도'할 수준의 사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어제 동대문 밀리오레를 방문했습니다. 여기서 머리핀과 머리끈과 원피스를 샀고, 중국인 관광객을 만나 "중국에 가면 안심하고 와도 된다고 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연한 행보입니다. 대통령으로서 메르스 공포가 경제영역에까지 확산돼 경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걸 막기 위한 의례적이고도 기본적인 행보입니다. 쇼이든 아니든 할 수 있는 행보입니다.
보는 사람들의 어이를 졸도케 만든 사례는 그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박 대통령의 밀리오레 방문 소식을 전한 '청와대 브리핑'이었는데요.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온 이 브리핑을 보면 '가관'입니다. 시종일관 '박비어천가'입니다.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시민들은 연신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며 촬영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보여주기 위해 안거나 목마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상인들은 "더운데 우리들을 도와주시려고 일요일인데도 나와 주셨네요. 대통령 최고!!", "다른 바쁜 일도 많으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없어 어렵다", "너무 어려운데, 대통령님이 잘 해결해 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쇼핑객 중 말레이시아, 몽골, 중국인들도 몰려들어 대통령에게 말을 걸며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특히 말레이시아 관광객(3명)은 사진 촬영 이후 "한국대통령과 사진 찍게 돼 놀랍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건물을 나오는 길에 도로 맞은편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고, 일부는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기도. 이를 본 대통령이 차에 바로 타지 않고, 길을 건너 기다리던 시민들과 반갑게 악수했습니다.
브리핑의 99%가 이런 내용들입니다. 박 대통령이 밀리오레에 가서 무슨 메시지를 던졌는지는 눈 씻고 봐도 없습니다. 밀리오레 방문 이유이자 브리핑의 목적이어야 할 '불안심리 진정' 메시지는 아예 없습니다. 오로지 대통령의 '인기'만 집중 부각돼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아이돌' 급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게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도 이런 식으로, 천지분간 못하며 자기 홍보 하지는 않습니다.
문자메시지와 브리핑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확확 퍼져가는 메르스에 대한 염려보다 뚝뚝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염려가 더 큽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민망한 수준의 자기 홍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청와대의 문제점 하나를 더 짚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엔 청와대의 엉터리 면모인데요.
박 대통령의 밀리오레를 방문한 그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또 하나의 글이 올랐습니다. '청와대 뉴스'였는데요. 이 글에는 박 대통령이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하여 상인들을 위로하고 민생현장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기술돼 있었습니다. '예고' 형식의 기술인 것으로 미루어 밀리오레 방문 전에 올린 글로 추정되는데요. 밀리오레 방문 후 올라온 '청와대 브리핑'에는 박 대통령이 동대문 상점가 밀리오레를 '예고 없이' 방문하여 상인들을 위로하며 민생 현장을 점검했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자기들이 미리 예고해 놓고선 뒤에 가서 예고 없이 방문했다고 하네요. 동대문 상점가 방문은 예고했지만 동대문 상점가 중 밀리오레는 예고하지 않았으니까 예고 없는 전격 방문이라 여긴 걸까요? 그것보다는 아마도 밀리오레 방문 영상을 키우기 위해 극적 효과를 강조하는 상투적 표현을 쓰다가 표현의 교통사고를 낸 게 아닌가 추정되는데요. 아무튼 청와대의 일처리가 얼마나 무신경하고 무원칙한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칼럼은 6월 15일 <시사통>에 게재된 것입니다. (☞바로 가기 : <시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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