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라는 도박, 이념 갈등 '끝판왕'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누가 한반도 역사를 100년 전으로 돌리려 하는가"

대한민국은 위험 또는 위기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도 매우 독특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울리히 벡이 말한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데다, 사회 구성원 간 이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정치적 위험과 동족(남북) 간 적대적 대치, 강대국(미·일·중·러) 간 대결의 장(場)이 한 데 섞여 종종 안보 위기를 겪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사건들이 바다와 육지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다. 지금도 언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폭발할지 모른 채 잠재돼 있다. 최근 미국이 '사드(종말단계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를 한국에 구축하려는 계획을 본격 추진하면서 한반도에서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일본과 중국 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수명이 다 끝난 핵발전소 가동 연장 문제 등을 둘러싸고 빚어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와 손잡은 핵마피아와 지역주민 간 무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세월호 침몰 참사 후유증이 여전히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드 문제까지 불쑥 끼어들어 우리 사회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긴장과 위기 상황을 제때, 적절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이, 극우 세력과 일부 보수 세력은 노골적으로 사드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도 이미 후보지를 물색했다고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미국은 후보지를 하루빨리 배치해달라며 때론 은근히, 때론 반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을러대고 있다. 게다가 마크 리퍼트 주한미대사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보여준 '석고대죄', '부채춤', '절' 등 일부 보수 세력의 부끄러운 친미사대주의 행태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상식을 지닌 많은 시민들을 불안케 하기에 충분하다.

누가 한반도의 역사 수레바퀴를 100여 년 전으로 돌리려 하는가?

여기에 맞서 진보 세력과 합리적 중도 세력들은 굴욕적 친미 외교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들 사이의 균형 잡힌 외교를 강조하며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다. 중국도 사드 배치를 신중하게 결정하라며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고, 미국 못지않게 때론 은근하게, 때론 반노골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 ⓒAP=연합뉴스

일부 역사학자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 각축전을 떠올린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의 이런 우려와 비교에 대해 많은 시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초강대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는 한 나라 두 국민들이 양국의 입장을 대변하며 언론을 통해, 또는 거리로 뛰쳐나와 각자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정치권도 대결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해 풀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강력 반대한다는 입장을 박근혜 정부가 애초부터 피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긴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위험이든 위기이든, 사전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사전예방에 실패해 갈등이나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는 조기에 이를 탐지해 사회적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기(위험)소통 또는 위기(위험)관리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의 적절성이다. 심각한 갈등이나 대립은 때론 폭력을 불러올 수 있고 이는, 나중에 힘들여 봉합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겨 우리 사회의 건전한 통합과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국가와 국가, 세력과 세력 간 모두에 이는 통하는 진리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을 수렁에 빠트리는 이념 대결의 '끝판왕'

우리 사회는 이미 역사적·정치적·사회적으로 이념 간 대립을 겪을 만큼 겪었다. 지금도 그 대립이 가져온 정신적·물리적 상처는 언제 치유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깊다. 우리가 지닌 모든 역량을 집중해 툭하면 터져 나오는 종북몰이 등 이념 대결을 지양하고 국민대통합에 나서도 쉽지 않을 판에, 이념 대결의 '끝판왕' 또는 '대마왕'이 될지도 모를 사드 배치는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 대결을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곳곳에서 위험과 위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잠재적 위험과 위기들도 분장을 모두 마친 뒤 무대 위로 오를 채비를 갖추고 있다. 묻지 마 살인, 총기 범죄, 성추행과 성폭력, 보이스피싱 등 각종 사기 범죄, 가계 부채 폭탄, 부정부패, 4대강 사업·외국자원투자 실패 등에서 보듯이 정치인들의 경쟁적인 나라 살림 거덜 내기, 자살, 화재와 가스누출, 폭발사고, 산재·직업병, 환경병, 결혼 포기, 취업 포기 등 이른바 '5포 세대' 사회, 디플레 위협, 저성장 등 많은 것들이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인 생태·재난·환경·경제·사회 위험과 위기들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잠재적인) 위험과 위기 해결에도 힘이 부친다. 얽히고설킨 위험 증폭사회의 실타래의 매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는 항구적인 제도와 수단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일부 정치 세력은 이를 면종복배(面從腹背)의 꼼수로 외려 방해하고 있다. 세월호 1주년을 계기로 희생했던 많은 분들을 향했던 첫 마음, 즉 '사람이 먼저다'의 정신을 오롯이 되살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는 우리나라의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내기 위해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부 보수 세력들도 사드만이 북한의 도발을 잠재우고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라며 미국의 주장에 적극 동조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조금만 성찰해보면 문제가 있다.

사드는 그야말로 북한의 본격적인 도발, 즉 전면전에 따른 미사일 대량 발사나 핵미사일 발사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가능성은 너무나도 낮다. 서울 도심에는 매일 중국인들로 북적이는데 여기에다 북한이 미사일을 쏟아 붓고 핵폭탄을 투하한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사드가 아니라 경제 침체 극복

오히려 이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이나 한시 국지전이 몇 배 내지 몇십 배 더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지전이나 도발에 사드는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다. 사드보다는 국지전에 대비한 무기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거나 남북 간 활발한 교류와 상호 존중, 그리고 경제 협력 등을 강화하는 것이다. 제2의 개성공단과 같은 것을 북한 곳곳에 만들어 한국의 수천 기업들이 진출하고 한국의 경영인과 기술·관리인 수천 내지 수만 명이 북한에 거주한다면, 일부 보수층들이 우려하는 전쟁의 위험은 사실상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불필요한 논쟁과 대립·갈등을 벌이고 이를 부채질해 위험을 증폭시킬 때가 결코 아니다. 침체되고 나아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야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민의 소득을 늘리고, 밥과 꿈과 일터를 잃었거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국민과의 소통에 있다.

위험과 위기의 예방에는 소통이 정답이다. 위험과 위기의 조기 탐지와 해결에도 소통이 모범답안이다. 위험과 위기가 설혹 현실이 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과 위기에서 재빨리 벗어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 역시 소통이다.

지금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때가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며 공감·공유·경청과 같은 소통의 정신을 5000만 국민의 마음속에 새겨야 할 때이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극우 세력, 극좌 세력, 보수와 진보 세력, 중도세력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마음, 즉 뇌 속에 소통이라는 두 글자를 '낙인'처럼 찍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누구든 진정으로 국민과 말 그대로의 소통을 실천한다면 사드 문제는 저절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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