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회사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다면?

[박점규의 동행]<40> 불법파견 판결에 침묵하는 노조…불법의 '공범' 될 건가?

지난달 26일 대구광역시와 사용자단체, 한국노총이 '노사분규 없는 평화적 노사관계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노총은 무분규와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를 보장하고 사용자들은 투자 활성화로 좋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에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구본부 박희은 사무처장은 전화 한 통 받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민주노총이 알게 되면 항의시위라도 할까봐 밖으로 알리지도 않고 서울로 올라가 국회에서 평화선언을 했습니다.

한국노총 대구본부가 과도한 임금인상을 한 적이 있는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구지역 사용자들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은 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쭉 해왔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건데, <조선일보>는 9월27일자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했습니다. 9월29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구지역 노사정 평화 대타협을 칭찬하고, 적극 돕겠다고 밝혔습니다.

쭉 해왔던 대구시 노사정 대타협?

대구의 노사정 선언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468명 전원이 '합법 사내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계약'이기 때문에 기아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일주일전인 18~19일에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179명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사내하청이 합법도급이 아닌 이유는 "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정규직 업무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이루어지며 작업결과가 누구의 작업인지 구별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즉, 컨베이어벨트라는 자동흐름방식의 제조업 모든 사내하청 공정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 형태 공시제에 따르면 한국노총 대구본부 소속인 평화정공에는 307명, 평화발레오에는 291명의 간접고용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 중 다수는 사내하청이며, 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불법파견이 확실합니다.

대구지역 사용자들이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기 말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선언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노동자들은 무쟁의 선언이 아니라 사내하청 사용금지 선언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제조업 생산 공정의 모든 사내하청은 합법 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노사가 해야 할 일은 '노사분규 없는 평화적 노사관계 선언'이 아니라 '불법파견 없는 회사 선언'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노사정 협약을 맺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대구 노사정, '무(無)분규 선언'이 아니라 '무(無)불법파견 선언'해야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중에는 제조업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노사 간에 협약을 맺은 모범적인 사업장이 많습니다. 자동차의 전기․전자장치를 만드는 현대케피코는 생산라인에는 사내하청이 한 명도 없고, 식당과 경비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대원강업,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두원정공, 에스제이엠, 대한칼소닉 등 주요 자동차 부품회사들은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내용하지 못하도록 노사 간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지켜왔습니다. 대한이연, 세정, 나스테크, 대림프라코, 케이엠피, 세영테크 등 300명 이하 사업장은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 많습니다.

다스, 대동공업, 에코플라스틱, 위니아 등 500명 이상 중견 사업장들도 생산라인에 소수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지만 대다수는 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성기업, 발레오, 케이이씨 등은 이명박 정권 시절, 회사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전쟁으로 복수노조가 만들어졌지만 다시 다수노조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습니다.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이 없는 회사

하지만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사내하청의 비율이 60~80%에 달하는 조선소만이 아닙니다. 이번 법원 판결의 직접적인 대상인 자동차와 부품사는 물론 '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정규직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기계, 전자, 철강회사들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30~50%에 이릅니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판결부터 2014년 9월18일 서울중앙지법까지 '불법파견의 상징'이 되어버린 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 10월2일 △임금 9만8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금 격려금 등 450%+890만 원 △만 60세 정년 보장 등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에서 모두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6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후 노사 교섭을 통해 불법을 바로잡겠다는 계획도 없습니다.

▲지난 2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현대차 노사의 2014년도 임협 조인식. ⓒ연합뉴스
지난 8월18일 현대자동차 회사와 현대차지부, 아산, 전주비정규직지회는 6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 '1962명 경력 일부 인정 특별채용'에 합의했습니다. 불법 사내하청을 용인하는 합의에 대해 현대차지부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단초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노조는 같은 일을 하는 생산공정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제도를 없애라는 요구를 걸고 투쟁과 교섭을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는 '조합원 전원 정규직'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자본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데, 노조는 한 발 한 발 양보했고, 급기야 조합원조차 모두 정규직화하지 못하는 잘못된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대차 정규직노조 이경훈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파 연합 집행부였던 문용문 지부장도 '조합원 최대 포함 근속 일부 인정 특별채용'을 합의하려고 했습니다.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16.9% 사용하기로 합의한 정갑득 위원장부터 불법파견을 용인한 이경훈 집행부까지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명백한 불법노동을 바로잡기는커녕, 노사합의로 현대차 자본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모든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에도 반성

'현대기아차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 직후인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현대제철지회, 현대로템지회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4000여 명이 모였습니다.

금속노조가 주최한 '한전부지 매입 철회, 정몽구 회장 퇴진,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현대기아차그룹사 투쟁 승리 결의대회'였습니다. 금속노조 김종석 기아차지부장은 "공장 투자와 신규 채용을 몇 년째 요구해도 회사는 늘 어렵다는 얘기만 했다"며 "그런데 천문학 적인 돈을 투자해 한전 부지를 매입했다. 이것이 말이 되느냐"고 규탄했습니다.

현대기아차 그룹사 조합원들의 7대 요구에는 '불법파견 노동자 즉각 정규직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상여금의 통상임금 확대 적용과 임금인상을 중심으로 한 노사교섭의 타결입니다.

지난 2일 현대차지부의 임금 협상이 타결되었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들도 줄줄이 타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수차례 불법 파견이라고 했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노사 합의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법보다 나은 합의는커녕 불법을 바로잡는 합의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불법을 바로잡는 노사 합의도 찾기 힘들어

상급 단체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노총은 잘못된 합의에 대한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고, 잘못된 합의를 바로잡거나 반복하지 않도록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현대와 기아차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에는 환영 성명서 한 장 외에는 어떠한 사업 계획이나 활동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금속노조는 몇 년 동안 중앙교섭에서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요구로 내걸었다가 포기했습니다. 올해는 금속산업 최저임금 적용대상에 사내하청, 파견, 용역노동자를 포함시키는 요구를 내걸었다가 실태조사를 하기로 합의하고 끝냈습니다. '현대-기아차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입니다.

▲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달 19일 법원 판결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0년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이번 판결은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판결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7.22 판결에 대해 사용자들은 한 명에 대한 판결이고, 한 공정에 대한 판결이라고 우겼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프레스, 도장, 조립에서부터 제품 포장과 출고까지 모든 공정과 2~3차 하청까지 불법파견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 판결의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9.18 판결 다음날 <조선일보>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고,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단신 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신문 한 줄 볼 시간이 없는 하청노동자들은 판결 소식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산하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이 판결을 알려야 합니다.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공장 정문, 공단과 거리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판결 내용을 알기 쉽게 만들어 공장 내 사내하청 노동자와 공단의 하청노동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중앙과 지역, 사업장에 '불법파견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여해 대대적인 사업을 벌여내야 합니다. 현수막과 유인물을 들고 공단과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조용합니다. 아니, 위원장 직선제 선거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중요한 판결 알리지 않는 노동운동

현대자동차는 9월24일 회사 소식지 <함께 가는 길>에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직영 고용안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며 "법 판결 결과도 결국 현대차의 존속과 발전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세 배가 넘는 10조5500억 원으로 구입한 현대차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비용 3000억 때문에 '존속'을 걱정한다고 협박합니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면 회사가 망할 것처럼 노노 갈등을 유발해 정규직노조와 간부들이 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현대차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2000만 원이 넘는 성과금 받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정규직도 해고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법의 공범이 되라는 것입니다.

법은 최저 기준입니다. 노동조합은 교섭과 투쟁을 통해 최저기준인 법보다 높은 수준의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불법을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것을 넘어 불법노동의 공범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진정한 반성과 실천입니다.

지금 당신 회사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습니까? 대법원부터 서울중앙지법까지 모든 법원이 자동흐름방식의 제조업 생산공정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불법의 공범이 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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