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1> "재벌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2>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3> "장하준·정승일의 자가당착, 그리고 '잡종 신자유주의'"
<4> 그들이 눈감은 박정희 체제의 '불편한 진실'
<5>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
<6> 장하준의 재벌론, 8년 전엔 달랐다

메아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그래서 기분도 상쾌해지고 듣는 사람도 덩달아 신이 난다. 학술 논쟁도 마찬가지다. 나의 문제제기에 대해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씨가 연명으로 응답을 해 왔다. 뿐만 아니라 응답이 늦어진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까지 했다. 고마운 일이다.

사실 나는 작년에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해 제법 길게 비판적 논평을 한 바 있지만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끝났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의 답변과 비판을 받았다. 장하준 그룹(세 사람의 약칭)은 앞으로 8-10회 정도에 걸쳐 연속으로 글을 쓸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독자들도 그럴 것이다. 이번 논쟁이 불필요한 소모전이 되지 않고 6월항쟁 25주년에 걸맞게 제2 민주화를 위해 생산적이고 홍익(弘益)한 결과를 낳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이번 글은 장하준 그룹의 첫 번째 응답,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라는 제목의 글에 대한 재반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앞으로 순조로운 논쟁 전개를 위해 필요한 몇 마디를 먼저 하고 싶다.

1. "왜곡, 중상 비방"?

우선, 장하준 등은 내가 (정태인과 함께) 그들의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나의 글에는 "왜곡과 중상비방이 수없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좀 당혹스러운 건 이런 지적을 받는 내 쪽이다.

해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장하준 그룹의 글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저질러온 부정, 불법, 편법, 비리와 독점 독식, 무책임, 구사대-용역 동원 폭력 등에 대한 비판은 너무 미약하고 과소한 반면에, 재벌의 장점과 기여에 대해서는 너무 과대 포장하여 치켜세운다고 읽었다. 재벌의 장점과 기여라면, 굳이 진보주의자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그간 당사자인 재벌과 산하 기관/연구원(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등), 재벌을 옹호하고 지원사격한 정/관/언/학계가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장황하고 시끄럽게 떠들어 왔던 바이고, 넘치도록 선전 홍보도 해 왔다. 엊그제만 해도 전경련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여론몰이를 하면서 헌법 119조 2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위헌적 재벌 만능 주장을 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장하준 그룹이 한국의 재벌이 지닌 양면성, 그 두 얼굴에 대해 너무 불균형하고 비대칭적인 시각과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번 내 글에서도 밝혔듯이, 장하준은 한때 일본식 재벌해체 대안까지 말한 사람이다. <프레시안>에 실린 내 글의 제목은 "장하준의 재벌론, 8년 전엔 달랐다"라고 되어 있지만(이 제목은 <프레시안> 측에서 잘못 붙인 것이다 - 편집자 : 원제는 '한국경제 성격논쟁, 과거와 현재 - 다시 대안연대를 생각한다'였다), 장하준은 일본식의 급진적인 재벌해체 대안을 말한 때와 거의 같은 시점에서 일본식 길과는 180도 다른,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식 '대타협'안도 제기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출자총액제한제나 지주회사 규제강화처럼 엉뚱하게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도와주는 방식"(<선택>, p.257)이라고 말할 정도로 극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세계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재벌해체론까지 수용하더니 표변해 극단적인 재벌체제 옹호론을 펴기에 이른 것이다.

또 장하준은 다른 나라 대기업들의 횡포를 거론하거나 자본주의 기업원리란 원래부터 독재라고 말하면서 한국 재벌총수의 독재를 옹호한다(<선택>, pp. 219-220). 내용적으로 보자면, 장하준 그룹은 재벌과 관련되어 발생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빈곤화 등 한국 사회경제의 주요 문제들, 나아가서는 재벌 조직과 큰 관련 없는 문제조차 거의 다 주주자본주의 탓으로, 재벌체제가 약화된 탓으로 돌린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사태를 쌍용차가 재벌체제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한 가지 사례다.

위와 같은 견해를 두고 내가 '재벌 옹호'론, 또는 '재벌 프렌들리' 견해라고 지적한 게,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이 되는가. 좀 납득하기 힘들다.

2. 논쟁의 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의 내용이나 표현에서 나의 주관적 의도와는 관계없이 혹시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본의는 아니니 오해는 풀었으면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간 숱한 논쟁을 겪어 왔고 그것에 대해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장하준의 <23가지>에 대한 비판적 논평 이래 내 나름대로는 조심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곡과 중상비방을 일삼았다고 하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최대한 원만한 소통과 열린 토론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첫 번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토론은 열려 있다. 답은 생산적인, 열린 토론 과정에서 집단 지성으로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이번 한국경제 성격논쟁이 학술적으로(가능하면 정치적으로도) 뺄셈이 아니라 덧셈의 게임이 되길 원한다.

덧붙여 내가 부탁할 게 있는데, 나의 견해를 정태인 원장과 도매금으로 묶어 취급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와 공유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3인 공동명의로 책을 두 권이나 냈지만, 나는 정태인과 그런 식으로 글을 같이 쓴 적은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의 생각을 김상조 교수와 같이 묶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은 사양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국경제 성격과 대안 논쟁의 구도를 정치권에서 "반MB"처럼 양자 구도가 아니라 적어도 삼각 구도로 보고 있음을 밝힌다(이 삼각구도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조혜경,"한국자본주의 체제의 진화와 사회갈등", 최태욱 편, <갈등과 제도>, 후마니타스, 2012, pp. 55-59).

3. 재벌이란?

위에서 건설적 논쟁을 위한 약간의 제안 그리고 부탁까지 했지만, 내용면에서 꼭 분명한 설명이 필요한 별도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그건 우리가 재벌, 재벌체제, 재벌 조직, 재벌개혁, 재벌 해체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때 무엇을 재벌로 보고 그런 말을 하고 있나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간 이 기본적인 문제에서 소통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이 겉돈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최근 <한겨레신문> 재벌개혁 지상 논쟁에서 정승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도) 재벌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찬성한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옹호하는 것은 대기업 집단이지 재벌 패밀리(가문)가 아니다. 재벌 패밀리 잡겠다고 재벌 해체하려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한겨레신문>, 2012/5/31, 4면).

여기서 정승일은 대기업 집단 일반과 재벌 체제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해 매우 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승일, 장하준은 재벌 개혁을 곧 기업 집단의 해체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재벌 개혁론자 중에서 어떤 논자가 기업집단을 해체하자고 말하고 있는가. 나만 해도 재벌 해체를 주장한 적은 없다. 이 문제는 <한겨레신문> 지상 논쟁에서 김기원 교수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 쪽은 있지도 않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재벌 개혁론자들 중 기업집단을 해체시키자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위의 의문에 대해 장하준 그룹은 확실한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재벌 이해의 모호성에 대해서는 이번뿐만이 아니고, 이전에도 지적들이 있었다(장하준, "사회복지가 곧 경쟁력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08, pp.257). 그러므로 이를 둘러싼 혼선 때문에 논쟁이 뜬구름 잡기가 되지 않도록 장하준 그룹은 재벌을 무엇으로 보는지, 재벌과 대기업집단의 차이를 무엇으로 보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었으면 한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결코 나의 독창적 견해는 아니다- 나는 재벌을 네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대기업 집단으로 보고자 한다. 1) 총수 일가의 소유와 지배 또는 통제, 2) 피라미드형 소유로 연결된 기업 집단, 4) 다각적 사업경영, 3) 독과점적 시장지배와 국민경제 지배, 이상 네 가지다. 이런 정의로 보자면, 재벌은 분명 대기업집단의 일종이긴 하나 매우 특수한 대기업 집단이다. 1)~4)에 걸쳐 재벌의 특징이 해체된다 해도 대기업 집단의 특성은 지속될 수도 있고, 재생될 수도 있다. 이는 전후 일본의 재벌 해체와 그 후 기업집단 형성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일본에서 재벌 해체 후의 기업집단은 느슨하게 수평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개별기업의 독립성이 강하다. 그 때문에 총수가문이 수직적으로 통제하면서 피라미드형 소유로 연결된 재벌형 기업집단과는 기업조직의 원리가 질적으로 다르다.

장하준은 한국 재벌에 대해 일본식 개혁 대안도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가 재벌, 재벌개혁, 재벌 해체를 정확히 무엇으로 보는지를 설명해 준다면 -책이나 글에서 이미 말했다 해도- 논쟁의 진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좀 엉켜 있는 논쟁의 실타래를 쾌도난마해 주기 바란다.

4.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를 구별하자?

이제 이번 글의 메인 주제로 넘어가자. 장하준 등은 그들의 최초의 공식적 응답에서 매우 중요한, 새로운 논점을 제기하고 나왔다. 이 논점 때문에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반복하거나 서로 엉키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또 논쟁의 재미도 더하게 됐다. 그들은 금융자본과 재벌의 이원론/양자택일론을 비판한 나의 지적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반박을 했다.

A.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라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B.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C.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 버린다."

나는 이전 글에서 재벌이 한국 신자유주의의 핵심 세력이라는 것, 그래서 한국 신자유주의는 개발독재의 유산 위에 '올라탔다는 것', 그리하여 그것은 재벌과 금융자본이 타협하면서 공생하는 '잡종 신자유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 생각으로 장하준 등이 <쾌도난마>와 <선택>에서 제기한 바 '재벌을 떼어낸 신자유주의론'을 비판했으며 그들의 견해는 재벌이 신자유주의 동맹의 핵심 세력이라고 한 <구조조정>의 논지와도 모순된, 자가당착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위의 반박에서 장하준 등은, 재벌이 신자유주의 동맹의 핵심 세력이라고 썼던 장하준(과 신장섭)의 이전 논지를 강력히 옹호한다. 그러면서 나의 '잡종 신자유주의'론에 대해서도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라고, 자신들과 같은 생각이라면서 받아들인다. 어찌된 영문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모순, 또는 자가당착에서 빠져나오는 묘수를 발견한 것 같다. 그 묘수란 다름 아니라, 인물·개인과 제도·정책을 구별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재벌 가문과 그룹체제 또는 대기업 집단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면서 사리사욕을 취하는 재벌총수/가문과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대기업 집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나의 비판이 이 양자를 구분할 줄 모르는 무지의 소치 때문이라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 데서 나왔다고 반박했다.

이는 일견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논법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식의 인물/제도 이분법이 지금까지 그들 견해의 난점과 자가당착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문제를 쾌도난마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꼬아버린 것 같다.

그들은 인물/세력과 제도/정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둘은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 논쟁을 읽고 있는 모든 경제시민들도, 심지어 '초딩'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뿐인가? 장하준 등은 싱겁게 그렇게 말하고는 끝낸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서는 뭔가 찜찜하지 않은가. 나는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기 쉽게 보이기 위해 아래와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생각은 <그림 1>에서처럼 인물과 제도가 완전히 둘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원과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묻는다. 인물/세력과 제도,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체제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처럼, 그렇게 완전히 따로따로 동떨어져 있는가?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가란 자본주의라는 구조 또는 자본"관계"의 (지배적) 담당자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지적은 너무 구조주의적이긴 하지만, 구조/제도와 동떨어진 인물/세력론이 가진 허점에 대해서는 적확한 비판이 될 수 있다. 재벌총수/가문은 재벌 체제에서, 그 틀 위에서 독점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인물/세력이다. 그리고 재벌체제란 재벌총수/가문들이 독점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이다. 즉 인물/세력과 제도는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복합체라는 것이 나의 재반박이다.

<그림 2>는 이런 나의 생각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 세력으로서 재벌이란 단지 인물이 아니라, 인물과 제도가 겹친 C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장하준 등은 인물/세력과 제도의 이분법을 사용함으로써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에서 핵심 논점인 권력의 문제를 제거했다. 그러나 권력이야말로 인물/세력인 동시에 제도화된 구조의 수준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도에 내장된 이 권력문제의 존재 때문에 갈등과 그 조절, 타협의 문제가 제기된다. 인물/세력, 제도에 권력수준까지 포개놓은 것이 <그림 3>이다. 인물/세력, 제도, 권력 세 수준은 D에서 통합되면서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복합체가 바로 재벌체제다.

▲ ⓒ이병천

5. 신자유주의 = 재벌 인물 - 재벌 제도 + 금융자본?

그런데 위에서 보았듯이, 장하준 그룹은 인물/제도 이분법에 입각하여, 총수/가문/가신으로서 재벌은 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며 사리사욕을 취하는 반면, 대기업집단/그룹체제로서 재벌은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게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연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장하준 등의 주장대로 총수/일가/가신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주주자본주의, 주식펀드와 타협하고 '의기투합'한다 (<선택>, p. 215, 223-224). 그러나 그간의 연구와 실태를 보면, 총수/일가/가신들은 소액주주와 여타 이해당사자, 여타 계열사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총수가치'(조돈문) 경영을 일삼아 온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배정 사건 등에서 보듯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불법비리 행위가 대표적인 경우다. 또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물량 몰아주기"로 부당 내부거래를 악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 부담은 소액주주 및 여타 이해당사자에게 전가된다. 총수/일가/가신들이 하는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산업지휘관으로서 조직능력(organizational capacity)을 발휘하여 재벌체제의 중장기 성장과 동태적 효율성을 추구한다. 만약 그들이 단지 사익만 추구하고 주주가치만 추구하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들을 단지 지대추구자라고만 간주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갖는 경쟁력을 설명하는 데는 큰 난점을 갖게 된다. 한국 재벌체제의 작동에서 총수가 하는 역할은 주주가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기업의 CEO와는 결코 같지 않다.

다른 한편 제도로서의 재벌의 경우, 기업집단 형태 그 자체로 보자면 장하준 그룹의 주장대로 이 조직형태는 분명히 주주 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난다. 총수가 주도하고 통제하는 기업 집단의 행동원리는 분명히 자본시장의 요구와 감시에 순응하기 쉬운 독립 기업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자본주의와의 타협과 의기투합은 제도로서 재벌 수준과 무관하게, 단지 총수/가문이라는 인물의 수준에서만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다. 총수/가문이 통제권을 행사하는 재벌제도, 재벌체제 전체가 가동되면서 주주가치와 타협, 공생하는 하나의 축적양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그런 축적양식은 재벌체제 전체를 관통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찌 재벌의 주주가치 추구와 타협이 인물수준에만 국한된 현상이고 제도와는 전혀 무관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제도로서의 재벌, 그 인적 물적 지적 자원과 역량을 조직화하지 않고, 생산체제를 가동시키지 않고, 그 축적 양식을 구성하지 않고서 단지 인물들만이, 제도와는 관계없이 자기들끼리만 주주가치를 추구한다는 말인가.

장하준 그룹의 인물/제도 이분론과 달리, 나는 1997년 이후 한국의 재벌은 인물과 제도, 총수/가문과 대기업집단이 한 몸으로 어우러져서, 1) '총수가치', 2) 주주가치, 3) 독점적 대기업 집단의 가치라는 세 개의 가치를 교묘한 방식으로, 타협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보고 싶다. 총수가치는 불법,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 등, 총수/가문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주가치는 주식시장과 금융투자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점적 대기업집단의 가치는 위험을 공유하고 '사회화'함으로써 성장 또는 동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성장지향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또한 독점적 지배력과 승자독식, 경제력 집중 심화를 통해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개방적 협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재벌체제는 이렇게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함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 축적체제를, 다시 말해 재벌과 금융자본이 공생하면서 그 지배 동맹의 공생의 힘으로 노동자와 서민, 취약한 중산층을 양극화 함정으로 몰아넣는 '잡종형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밀고 가는 것이다.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여기에 재벌과 금융자본, 부자를 더욱 강하게 하고,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취약한 중산층, 중소기업 등을 더욱 바닥으로 향하게 하는 정부 정책이 막강한 지원 사격을 한다.

장하준 그룹은 날더러 인물·개인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재벌총수/가문과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대기업 집단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들은 총수/가문이라는 인물들만이 신자유주의를 추구할 뿐 제도로서 재벌은 신자유주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물로서의 재벌은 신자유주의 세력이지만, 제도로서의 재벌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한다. 다시 그들의 논지를 풀어 보자면, <신자유주의= 인물로서의 재벌 + 금융자본>의 공식이 될 것이다. 여기서 재벌 제도는 빠진다. 이런 식의 <재벌 인물-재벌제도+금융자본=신자유주의>론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가 않다.

6. 결론: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시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장하준 그룹이 제시한 인물/제도의 기계적 이분론보다 인물/제도/권력의 복합체를 보아야 한다는 나의 통합적 인식틀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자가당착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왜 이런 덫에 빠졌는지에 대해서도 자기 발밑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물과 제도,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천리만리로 서로 생이별시켜 놓은 후에 <신자유주의 = 재벌 인물- 재벌제도+ 금융자본>이라는 자못 흥미로운 새 공식을 제시한 장하준 그룹은 자신들이 빠진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땀을 좀 흘려야 할 것 같다.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라고 한 그들의 비판에 대한 나의 반비판은 다음과 같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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