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
지금까지 계속 좀 무거운 이야기만 해 온 것 같아서 이번 글에는 중간에 잠시 쉬어 가는 이야기를 한 토막 해 보려고 한다. 내 이야기의 마침표는 아니고 쉼표다. 다름이 아니라 대안연대회의(이하 대안연대)라는 조직(2001년 설립, 2010년 해체된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와 당시 논쟁에 대한 것이다.
나는 정승일, 장하준, 이종태 등과 함께 대안연대에 소속된 같은 멤버로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성격 변화에 대해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이미 대안연대 멤버들 사이에, 그리고 정승일 등과 필자 사이에도 큰 견해 차이가 드러났었다. 그리고 그 견해 차이 때문에 공개적, 비공개적인 논쟁과 갈등도 있었다.
지금의 한국경제 성격 논쟁의 구도는 당시의 논쟁과 매우 흡사하다. 이전에 드러났던 쟁점과 견해 차이가 새로운 상황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10년 재정위기 국면에서 새롭게 표출되고, 예각화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지난날 일어났던 일과 논쟁을 반성적으로 상기해 보는 것은 독자들이, '경제시민'들이 이번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이해하는 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대안연대의 태동
아마 2000년 겨울쯤이 아니었나 기억된다. 당시 참여사회연구소 경제분과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던 조원희 교수가 끙끙 속병을 앓고 있는 걸 내가 알게 되었다. 그는 97년 위기 이후 IMF 관리하에 진행되어온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이 '한국적 신자유주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바라보면서 비판적 입장에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하성, 김상조 교수 등이 주도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자세한 것은 조원희, "경제민주화운동론", 이병천 조원희 편, <한국경제-재생의 길은 있는가>, 당대, 2001 참조).
그는 이 운동이 재벌체제와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전근대적 성격을 개혁하는 데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인데, 이 개혁 운동은 한국경제의 영미식 주주자본주의화를 추동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안정화를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의 부설-또는 병설(倂設)?- 연구소이긴 했으나, 연구소를 이끌고 있던 박진도(당시 소장), 김균(당시 경제분과장) 교수도 조원희 교수와 대체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속병을 앓고 있던 조원희 교수에게 내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연구소 테두리 안에서만 맴맴 돌지 말고 경계를 넘어 바깥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별도 조직을 꾸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나의 이 아이디어에 조 교수가 공감했다. 그 공감 위에서 조원희, 박진도, 김균, 이병천, 유철규, 이찬근, 이해영, 조돈문 제씨 등이 동참한,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연대회의'라는 긴 이름을 가진 네트워크형 싱크탱크가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창립 이후 오랫동안 대안연대는 참여사회연구소 안에 사무국을 두었다.
당시 상황에서 대안연대라는 조직을 띄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 정부가 집권에 성공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는데 이 정부를 흔든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뿐 아니라 당시 시민운동을 비롯하여 주류 시민사회권의 지배적 분위기는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과 IMF라는 외압이 모처럼 재벌체제 개혁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가 추진한 소액주주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장하성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을 '제2의 6월항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었고, 예컨대 강준만 교수 같은 사람조차 맞장구를 쳤다(강준만, "재벌 상대로 '6월항쟁' 벌이는 장하성과 참여연대", <인물과 사상>, 8호, 개마고원, 1998).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에 가두어 놓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언론의 호응도 컸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런 상황에서, 더군다나 참여연대에 부설된 연구소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의 기본방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소액주주운동과 결이 판이하게 다른 진단과 대안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참고로, 당시에 'DJ노믹스'를 바라보는 대표적 견해들로는 김형기 편, <21세기 한국의 대안적 발전모델>, 한울, 2002, pp.158-176에 개진되어 있는 이진순, 이정우, 김균, 김영철의 견해를 보라.)
2. 한국경제 97년 체제의 인식 -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
대안연대의 주축이 된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이 위에서 말한 바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적 신자유주의'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들은 이 문제에 대해 꽤 깊이 고민하고 토론했으며 그 결과가 대안연대의 발족 선언문 속에 담겨 있다. 다소 길긴 하지만, 선언문의 해당 중요 대목을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http://position21.jinbo.net).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 공론 영역의 새로운 장을 열 대안연대회의의 발족을 선포한다. 우리는 낡고 부패한 구체제의 뿌리 깊은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시장 독재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 우리는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가 매우 근본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경제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국민경제 대외 종속의 위기다. 한국 경제는 국경이 무장 해제된 채, 무한 자유를 누리는 국제금융 자본의 무책임한 유출입과 미국 금융 주도 자본주의의 거품 사이클에 덩달아 춤추면서, 한 나라 국민경제의 기본적 자율성과 주권적 통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 둘째, 사회적 통합과 민주주의 실종의 위기다. 공정한 고통 분담 및 권한과 책임의 상호성 원칙이 실종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무책임 체제가 재생되고 민주주의는 실종되어 버렸으며, '두 국민'으로의 사회적 양극 분열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만성적인 고용 파괴와 고용 불안,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의 희생, 160조 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른 일반 국민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 집단, 재벌로 요약되는 3대 부실 지배 복합체는 마땅히 그 권한에 뒤따라야 할 법적, 도덕적 책임을 감당한 적이 없다. 이 땅의 지배 집단은 국민 대중에게 참여는 배제시킨 채 구조조정 비용을 전담케 하면서, 정작 그들 자신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 규율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은 세계화된 새로운 시장 독재에 기득권 지배 집단의 심각한 무책임이 중첩된,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 아래서 고통받고 있다. (…)
그간 한국의 시민운동은 6월 민주항쟁 이후 새로이 출현한 보수 독과점 정치의 무책임과 직무 유기를 비판하고, 더 많은 정치 개혁을 위한 압력의 행사와 시민의 정치적 계몽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안연대회의는 시민운동의 이러한 귀중한 성과를 공유하고 계승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IMF 위기 이후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 구도를 형성하기보다는 상당 정도 개발 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이분법에 기울어진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시민운동의 성찰적 쇄신의 필요성을 느낀다. (…) 문제 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발 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양자택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의 대안연대 발족 선언문은 "세계화된 새로운 시장 독재에 기득권 지배 집단의 심각한 무책임이 중첩된,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득권 지배 집단이란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 집단, 재벌로 요약되는 3대 부실 지배 복합체"를 말한다. 경제적 지배집단은 물론 재벌이다. 따라서 대안연대의 발족 선언문에서 우리는 시장독재에 무책임 재벌의 지배가 중첩된 체제를"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로 규정했던 것이다. (나는 이전 글에서 '잡종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비슷한 말이다.)
다시 말해 재벌은 장하준, 정승일이 주장하듯이 신자유주의의 공격 대상이라기보다 그 핵심 중추, 지배세력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시장독재란 "국민경제가 주로 단기 투기적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국제 금융자본의 목마장으로 전락하고 이들에 의해 국민 경제의 금융 혈맥이 장악되고, 국민적 산업 기반 또한 잠식되고 있는 상황", 또 "'두 국민'으로의 사회적 양극 분열이 심화되고, 만성적인 고용 파괴와 고용 불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국민 대중에게 참여는 배제시킨 채 구조조정 비용을 전담케 하면서, 정작 지배집단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 규율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즉 금융자유화와 개방화,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재벌을 포함한 지배집단의 무책임과 다수 대중의 민주적 참여 배제를 시장 독재의 내용으로 파악했다. 거기에는 인간 노동력, 토지·주택, 금융 그리고 기업 등의 상품화·시장화가 몰고 오는 이른바 '폴라니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깔려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안연대의 발족 선언문은 멤버들의 요청으로 내가 기초했다. 그렇지만 초안의 핵심 기조에 대해 주요 멤버들이 모두 동의했었고, 발족에 즈음해서는 전체 회원들에게도 회람된 결과 최종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발족 선언문에서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를 시장독재에 무책임 재벌지배가 중첩된 체제로 파악하는 데는, 특히 나와 김균 교수 사이의 그간의 공감대가 큰 역할을 했다. 김균 교수는 당시에 - 지금은 참여연대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다 - 참여사회연구소 경제분과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김대중 정부 100일 토론회 발제문을 공동작업해서 발표한 것을 필두로, <위기 그리고 대전환>(당대, 1998)이라는 공동연구서를 발간했었다. 또 다음해 그는 참여사회연구소가 만든 <한국 5대 재벌 백서>(나남, 1999) 작업도 주도한 바 있다. 김균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박순성 교수와 공동으로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라는 글(<위기 그리고 대전환>에 수록), 그리고 "IMF 위기 이후의 재벌개혁"(<한국 5대 재벌 백서> 수록)이라는 글을 집필했다. 그중에서도 김균, 박순성이 공동 작업한 글 중 중요 대목을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현 정부(김대중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경쟁질서의 확립이다. 이는 재벌개혁정책, 탈규제정책, 공정거래 정책 등으로 질서자유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철수를 통하여 기업을 국민경제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기업주의적 경향 또는 재벌지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 결과적으로는 재벌의 힘을 강화하는 '자본의 자유화'로 나아가는 경향을 지닌다. 둘째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임노동관계의 불안정화, 적대화를 의미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 셋째는 민영화이다. 외자유치와 효율성 강화를 위해 대규모 국영기업을 국내 대자본과 국제자본에 매각하는 이 정책은 국민경제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넷째는, 대외개방이다. 급속하고 무차별적인 국민경제의 개방은 국민경제에 대한 초국적 자본(국제금융자본과 초국적 기업)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고, 국민경제의 거시안정성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현 정부가 탈규제화, 자유화, 민영화로 규정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전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의 재벌은 근본적으로는 IMF가 요구하였으며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을 적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pp.388-389).
위의 김균의 글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쟁 시장규율로 재벌을 개혁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재벌에 밀려 재벌의 힘을 강화하는 경향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 심화, 대외적으로 무분별한 개방과 국제금융자본의 침투에 따른 국민경제 자율성 약화와 불안정을 짚고 있다. 다시 말해 대안연대 선언문의 기조와 거의 유사한 논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발족 후 대안연대는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였고 처음 약 2년간은 순탄히 굴러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흥미로운 일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2001년 10월에 발표된 공동성명서(23일) 건이다. 이 공동성명서의 제목은 "정부는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조치들을 철회하라"로 되어 있는데, 경실련, 대안연대, 민교협,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변, 참여연대, 한국노총, 함께하는시민운동 등의 공동명의로 발표된 것이다.
이즈음에 김대중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및 의결권 제한 등 이른바 재벌 개혁 "5+3" 원칙에 따른 주요 개혁조치들을 거의 모두 폐기처분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요 노동, 시민, 사회단체들이 항의하면서 재벌정책에 대해 입장을 밝히게 된 것이다.
이 성명서의 요구 사항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 제한, 30대기업 집단지정제도 유지, 은행주식의 동일인 소유한도 제한, 그리고 증권 집단소송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시에는 이런 내용의 재벌개혁 요구에 대안연대, 참여연대, 경실련, 민주노동당 등 대부분의 시민 노동단체가 동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 대안연대의 균열과 <시민과 세계> 지상 논쟁에서 이찬근과 장하준의 견해
대안연대 안에서 균열과 갈등이 발생한 것은 2003년 4월 소버린에 의한 SK㈜의 적대적 M&A 시도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때를 전환점으로 당시 대안연대 일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찬근 교수가 이후 장하준, 정승일이 <쾌도난마>와 <선택>에서 보인 것과 거의 유사한 논조를 펴기 시작했다. 또 그런 논조로 정승일 등과 함께 대안연대 포럼도 이끌어 갔다. 어떤 경우는 아예 재벌 연구원(한국경제연구원) 쪽 인물을 불러다 놓고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토론회, "신산업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2003/3/14 참조). 그런 걸 보고 나는 아연실색했고, 포럼 당일에는 청중석에서 언성을 높여 성토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보수 언론에서는 대안연대를 국제금융자본의 공격에 대항해 재벌을 옹호하는 조직으로 정리하면서 참여연대와 경쟁을 시켰다. 참여사회연구소의 동료 중에는 왜 대안연대를 만들었냐며 비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이찬근 교수가 처음부터 '한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후 정승일, 장하준처럼 재벌을 뺀 국제 금융자본 지배체제로 보았는지, 새로운 상황에서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아마 처음부터 생각이 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어쨌건, 나로서는 이런 생각과 활동에 대해 이해되는 바가 없진 않았지만, 시장독재에 무책임 재벌의 지배가 중첩된 체제를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로 보고 그 극복을 지향한 대안연대 발족 취지와는 심각하게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안연대 내부적으로는 유철규, 조돈문 교수 등과 함께 이 문제를 검토했고 2004년 6월에는 토론회도 열었다(2004/6/30 8회 대안정책 포럼 및 총회 참고). 다른 한편, 대안연대 외부적으로는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잡지 <시민과 세계>(이하 <시세>로 줄임) 지면에서 '한국자본주의 개혁 논쟁'이라는 주제로 지상 논쟁을 진행시켰다. <시세>의 지상 논쟁은 아마 지금까지도 이 문제에 관해 장하준, 김상조, 김진방, 이찬근, 신정완 등 주요 논자들의 견해를 가장 충실히 담고 있는 기록이 아닌가 싶다. (이 논쟁 참여 글은 모두 이병천 편, <세계화 시대 한국자본주의>, 한울, 2007에 수록되어 있다). <시세>에 기고한 글에서 이찬근이 하고 있는 말을 들어 보자.
"논쟁의 한 축인 참여연대는 국민경제의 최대모순은 경제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득권적 재벌이며, 국내외 자본 모두가 독과점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참여연대는 주주가치에 입각한 자유시장주의적 재벌개혁을 지지하며 (…) 필요에 따라 외국자본을 재벌개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대해 대안연대 측은 국민경제의 최대 모순은 자본자유화 이후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해 국민경제가 장악된 것이며, 재벌은 여러 가지 파행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국민적 요구를 근본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 국적자본의 성격을 띤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대안연대는 외국자본에 의한 물적 기반의 파괴현상이 매우 심각하므로 이상론적인 주주가치 방식의 재벌개혁을 지양하고 외자로부터 국내 재벌의 지배권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찬근, "한국경제 시스템의 위기와 대안정책", <시민과 세계>, 6호, 2004 상반기 p.308)
위의 인용문에서 보인 이찬근의 견해가 <쾌도난마>, <선택>에서 보인 장하준, 정승일의 견해 즉, "오늘날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주체는 재벌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다", "노동운동의 주적은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라는 주장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찬근이 대안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 것도 비슷하다. 그는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재벌의 지배권 안정을 위한 특단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조건으로서, 이찬근은 재벌이 이윤의 일정 비율을 사회공헌 기금, 혹은 주력업종의 발전 기금으로 출연할 것, 이 재원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의 역량 확충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케 할 것을 제시했다. 또 그가 재벌의 사업영역이 비금융권에 한정되어야 말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재벌의 금융사 지배는 사금고로서의 폐해뿐만 아니라 은행과 제2금융권 간의 유기적인 결합을 제약함으로써 겸업화, 복합화를 통한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으므로 이를 시정해야 한다. 이는 금융전업 그룹이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같은 글, p 313)
이처럼, 이찬근의 제안은 오늘의 장하준, 정승일의 견해에 비해서는 재벌개혁과 사회적 타협에 대해 더 진취적인 지점을 갖고 있다. 아마 그가 우리와 대안연대를 같이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시세> 논쟁에는 장하준도 참여했는데, 이 시기 그의 견해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 당시 그가 표명한 견해는 <쾌도난마>, <선택>의 견해에 비해 재벌 개혁에 대해 훨씬 더 열린 생각을 보여 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벌체제의 장점은 (…) 경영권의 중앙 집중, 대규모 자금동원력, 위험분산 능력 등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와 신산업으로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위험도 큰 체제였다. (…) 장기적으로도 채산성이 없는 기업을 계열사 간 보조를 통해 지탱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부실을 장기화하고 계열사의 연쇄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 총수로 권한이 집중되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있지만, 이 투자가 실패할 경우 그 대가가 크다. 이러한 재벌체제의 단점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개혁에서 추진하는 대로 회계의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소액주주 권한의 강화 등을 통한 외부감시기능을 높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업원, 거래은행, 하청업체 등 기업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내부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 또 재벌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꼭 기존의 총수 가족의 지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가족소유가 없이도 주거래 은행제도, 관련사 간 상호 주식소유 등을 통해 재벌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하준, "경제'개혁'의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 <시민과 세계>, 5호, 2004 상반기, pp. 262-263).
여기서 장하준은 재벌체제의 장점뿐만 아니라 그 단점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내부감시 강화가 더 중요한 개혁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소액주주권의 강화 등 외부감시 기능을 높이는 것도 재벌체제의 단점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장하준의 견해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재벌체제를 유지한다는 게 꼭 기존 총수가족의 지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이다. 그는 일본의 경우를 거론하면서, 가족 소유가 없이도 주거래 은행제도, 주식 상호 보유 등을 통해 재벌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보건대 사실 장하준의 이 언급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먼저, 한국의 재벌체제가 일본식의 기업집단으로 가려면 엄청난 재벌개혁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태연히 말하고 있다. 총수 가족의 지배권을 박탈하는 문제를 너무 간단히 말한다. 일본에서 발본적 재벌 개혁은 전후 미국 점령 하에서 비로소 단행되었으며, 그 결과 나타난 일본의 기업집단과 '법인자본주의'는, 개인소유 구조에 관한 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 재벌개혁이 이루어진 경우에 속한다. 물론 장하준은 안정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수가족의 통제를 일시에 없애면 외국자본이 국민경제를 '접수'할 위험도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관련된 문제인데 그가 재벌체제와 기업집단의 중대한 차이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이다. 일본식 기업집단에서처럼 가족소유가 없이도 재벌체제의 장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재벌체제도 기업집단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점령 하에서 재벌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업집단 체제의 변화, 재벌체제와 대기업 집단 간의 중대한 차이를 너무 가볍게 스쳐간다. 무엇보다도 재벌체제의 기업집단으로의 개혁 길에서, 총수가족의 지배권을 위시하여 소유권이 어떻게 질적으로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정립되는지, 그간 노동자와 국민 대중의 피와 땀, 국가의 퍼주기라는 '출생의 기억'(유철규)이 새겨져 있는 재벌의 부를 어떻게 국민화하게 되는지 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한국 재벌체제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다. 그리고 재벌체제가 갖고 있는 독점적 지배력의 문제, 그리하여 민주적 참여와 협동의 자본주의로 가는 길에서 갖는 반독점 또는 독점 비판이 갖는 의미를 가볍게 생각한다. 나는 (구)자유주의적 공정경쟁론자에게도 이 점에 대한 역사적, 전망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이와 또 다른 의미에서 장하준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시세> 논쟁에서 장하준이 한국재벌의 일본식 개혁 경로를 열어 놓았다는 사실만큼은 의미가 크다. 이는 <쾌도난마>, <선택>의 견해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처럼 <시세> 논쟁에서 한국의 재벌체제에 대해 일본식 재벌 개혁 경로까지 열어 놓고 있음을 보면서 - 그 글은 내가 직접 요청해서 받은 것이다 - 그가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 많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에서는 나와 의견의 합치점도 갖고 있다는 생각까지 나는 했었다. 또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장하준은 이찬근처럼 확실히 '초국적 금융자본 지배 주요모순'론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물론 장하준의 <시세> 글은 소버린 사태 이후지만 <쾌도난마>(2005년 7월)가 나오기 전의 견해다. 여하튼 나는 <쾌도난마>, <선택>에서 제시된 장하준의 견해는 일본식 재벌개혁까지 열어놓은 <시세>의 글로부터 재벌옹호 쪽으로 크게 후퇴, 경도된 스탠스임을 말하고 있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4. 한국적 경로에 착근된 역사적 제도주의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건대, 당시에는 이찬근 그리고 장하준의 견해도 소수 의견에 불과했고 큰 지지를 얻지는 못하였다. 이후 이찬근은 대연연대를 떠나 투기자본감시센터라는 새 조직을 발족시키게 되는데(2004/8), 이 조직이 발족 후 주최한 '국민 대토론회' 석상에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듣게 된다(이찬근 외,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21세기북스, 2004).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서민을 위한 개혁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 이를 두고 재벌은 외자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외자지배체제와 재벌지배체제가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재벌이 먼저 변해야 한다. 특히 재벌은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 삼성같이 무노조를 고수하는 재벌이 외국자본과의 차별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로밖에 볼 수 없다." (p.431, 김기준, 금융산업노조 정책위원장)
"외자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려던 재벌은 자승자박의 형세가 되어 버렸다. (…) .재벌, 대기업들은 외자에 대한 과도한 특권이 경영권을 위협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재벌에 특권을 줄 것이 아니라 외국자본의 특권을 제거해 나가는 쪽으로 규제를 강화해 동일한 경제조건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재벌도 더 이상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반기업정서가 팽배한 것은 그동안 재벌의 행태가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다. 국민적 지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p.434,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위의 김기준 위원장, 심상정 의원의 견해는 나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국자본주의의 97년 체제를 시장독재에 무책임 재벌지배가 중첩된 "한국형 무책임 신자유주의"로 파악하고, 그 민주적 재개혁 또는 제2 민주화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대안연대의 창립 선언문의 정신과 기조는 당시 이찬근과 함께 대안연대 일선을 책임졌던 유철규가 중간 결산한 글, 그리고 '삼성공화국' 사건이 터져 나온 상황에서 조돈문, 송원근 그리고 필자가 주도하여 수행했던 공동 연구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 2008)로 이어졌다. <삼성을 묻는다>에서 나는 장하준뿐만 아니라 김상조의 견해에 대해서도 비판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달리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이찬근이 "국민경제의 최대모순은 자본자유화 이후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해 국민경제가 장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런 생각으로 대안연대 활동을 끌고 갔을 때, 유철규가 이 문제에 대해 중간 정리해 놓은 문건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유철규는 <재벌과 외자의 딜레마>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런 체제(재벌지배와 외자지배가 혼합된 체제 - 인용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 재벌계열사에 대한 외자지분이 확대되면서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재벌개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자가 재벌독점체제로부터 발생하는 이득을 직접 향유할 수 있게 되면서 외자가 스스로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 저항하게 되었다. 외자로서는 재벌체제의 이득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 때까지는 재벌독점체제의 해체와 투명성을 주장했지만, 일단 그 통로가 확보된 다음에는 오히려 재벌체제의 유지에서 나타나는 이득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투명성 확대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찬근 외,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p. 218-219)
"재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가장 많이 반발했으며 세금과 국민적 지원에 의해 성장한 역사도 스스로 부정해 왔다. 이미 형성된 사적 소유권은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 비정규직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할 때, 부분적인 복지제도의 도입마저 사회주의적이라고 반대할 때, 한국의 노동조합이 전투적이라고 비난할 때, 그리고 재벌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꾸짖을 때는 외국자본과 손잡았으며, 외국인 주주의 합리적 요구를 이유로 들었다. 현재 한국사회의 경제적 권력은 외국자본과 재벌이 나누어 갖고 있다. 이것이 외자와 재벌 딜레마의 허(虛)다." (p.221).
"외자와 재벌 딜레마의 실(實)은 국적과 무관하게 이 땅에서 활동하는 기업에게 민주적 책임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자와 손잡고 국내재벌을 공격하거나, 재벌과 손잡고 외국자본에 대항하는 전선을 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 (p. 222)
위의 유철규의 말은 소버린 사태가 발생한 이후 달라진 한국경제 상황에서 대안연대의 창립 기조를 적절히 이어받으며 정리하고 있는 견해라 하겠다. 나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이런 생각의 공유 기반 위에서 지금 장하준, 정승일과 토론하고 있다.
나는 이번 글에서 이전 <시민과 세계> 지상 논쟁에서 나타난 장하준의 견해가 <쾌도난마>, <선택>의 견해와는 꽤 큰 차이를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재벌 체제의 일본식 개혁의 길을 열어 놓은 그의 <시세>의 글은 <선택>과 <쾌도난마>에 비해 분명 진취적 측면을 갖고 있으나 그만큼 비역사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우리의 조건에서 일본식 개혁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가능할까.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장하준에서 한국의 역사적 경로가 일본의 경로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인식을 잘 찾아보기 어렵다.
장하준의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은 한국의 역사와 현실, 구체적 문맥에 더 뿌리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그만의 숙제는 아니다. 그것은 흔히 역사와 제도, 국민국가 공간을 쉽게 건너뛰며 추상적 이론을 바로 들이대곤 하는, 탈맥락·탈착근적인 한국 진보경제학 전반이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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