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2012년은 아주 특별한 해인 것 같다. 단지 총선과 대선이 겹쳐서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87년 6월 항쟁 및 민주화 이행 25주년, 그리고 97년 외환위기 15주년이 중첩된 해라서 특별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이제 다시 '제2민주화'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어떤 아래로부터 사회적 동력으로, 무슨 수로 '제2민주화'의 길을 열 수 있을까?
6월 항쟁으로 성립했던 '87년 체제'의 생명력은 92년의 3당 합당, 97년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그리고 이어 이명박 정부의 돌진적인 '두 국민' 분열 정책에 의해 거의 고갈되어 버린 것 같다.
밖으로는 2008년 금융 주도 신자유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발병(發病)한 세계경제 위기, 안으로는 그 뒤꽁무니를 열심히 쫒아간 MB 정부의 지독한 역주행 폭정을 겪고 난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다수 대중의 빈곤과 배제, 불평등과 양극화, 고용 불안과 삶의 불안을 극복하고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새 시대정신으로 세워지고 있다. 재벌 개혁과 '삼성 동물원' 상황의 극복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기본 관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폭넓은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때 늦었지만 그래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제2민주화'를 요구받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런 동의가 퍽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기본적 동의 위에서 총선을 치렀고 또 연말 대회전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찬물 끼얹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주축으로 한 '야권 연대' 측은 두말할 것도 없고, 문패를 새누리당으로 바꿔 단 여당조차도 지난 날 지배적 정책 기조였던 '경제적 자유화' 대신에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 민주화 실현'을 '국민과의 약속'으로 내세웠을 정도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중요한 이유도 재벌과 부자는 더욱 살찌우면서 다수 대중은 쥐어짜는 두 국민 분열정책을 밀어붙인 MB 정부와 나름대로 차별을 시도한 대목에 점수를 준 때문일 것이다. 그 진정성은 여전히 의심스럽고 내부 논란도 많지만 말이다. 여하튼 여야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대한민국이 나아갈 공통의 가치로 인정한 기반 위에서 그 내용과 수준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폭넓은 동의가 형성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와중에, 최근 이 무드에 대해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강도 높은 이의(異議)와 비판이 제기되었다. 장하준, 정승일 두 사람이 지난번 <쾌도난마 한국경제>(이하 <쾌도난마>)에 이어 다시 그 후속판이라 할 수 있는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라는 좌담집을 내놓았다.
이들은 결론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낡은 화두" 또는 "구시대 담론"(p.420)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쾌도난마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들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낡은 화두라고 한 그들의 말은 어쩌면 실언(失言)인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책 전체를 호의적으로 읽는다면 그들이 말하고 싶은 진짜 진의인즉, 주주 자본주의적인 '가짜 경제민주화'(1원 1표)가 아니라 '진짜 경제민주화'(1인 1표)를 하자는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그들의 주장은 순진한 갑돌이, 갑순이가 한 말이라면 그냥 무시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유력한 경제학자, 한국사회 공론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점이다.
이미 한 유력 주간지는 "장하준 넌 누구냐"라는 제목의 특집호까지 발간하기도 했다. 장하준, 정승일 두 사람의 말은 그야말로 난마(亂麻)를 쾌도(快刀)로 끊어내듯이, 얽히고설킨 한국경제의 난맥상을 명쾌, 통쾌하게 풀이하고 처방까지 제시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주목하고, 그들의 말과 글이 한국사회 공론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뿌리 깊은 보수 지배 아래에 있는 한국사회와 학계에서 그들이 사회경제의 진보적 재구성과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다.
이전 책처럼 새 책 역시 재미있고 속 시원한 맛이 난다. 정말 또 다시 난마를 쾌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제대로 한국경제의 난마를 쾌도한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읽은 바로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재벌에 불편한 진실 숨겨
나는 그간의 한국경제 논의 흐름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막대기를 반대쪽으로 구부려 바로잡고 싶은 그들의 심정이나,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다.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들의 견해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대표적인 게, 금융의 고삐를 풀어놓으면 경제민주화든 뭐든 되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선택>이 확실히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있으며, 주류 주주자본주의적 개혁론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고 본다.
제 2민주화가 또 한 번의 민주화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의 민주화, 새로운 질(質)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민생 진보의 길이 되어야 한다 할 때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책은 제목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말해주듯이,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를 양자택일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택> 은 그런 식의 이항 대립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처방전을 내면서, 그러지 않으면 모두 공멸할 것처럼 우리를 몰아간다. 이런 <선택>의 논지는 막대기를 반대 방향으로 너무 많이 굽힌 나머지 정반대 극단론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들은 말로는 '1인 1표 경제민주화'를 말하기는 한다. 그러면서도 '재벌에 불편한 진실'은 숨기거나 최소화하면서 중요한 대목에서 재벌의 손을 들어 준다.
재벌 플렌들리 복지론
사실상 재벌 프렌들리한 그들의 복지국가론은, 민주화 시대와 포스트 캐치업(탈추격형. 선진 기술 모방/추격 전략을 넘어 벗어나 창의적 신기술 혁신을 중심에 두는 전략-편집자) 시대 공룡 같은 특권 재벌권력의 강력한 지배력과 그 규제의 실패, 내외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실패 때문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길, 제2민주화의 길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고 또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있는지, 그 난관을 돌파할 동력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지 하는 쟁투의 동학에 대해 둔감하다.
특권 재벌권력의 힘과 경제력 집중을 비호한다면, 그것을 민주적 시민기업으로 재편할 수 있는 사회적 견제 및 규율력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국가와 재벌 사이, 국가와 국제금융자본 사이에서 '1원 1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사회적 제3항'의 역량(정치력과 제도형태)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민주국가와 사회 간의 건설적 협력, 노동자를 위시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수평적 협력 체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창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들에게서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장하준, 정승일에게서 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가능케 할 힘은 그저 국가에 맡겨져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그들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길을 지난하게 만든, 박정희 개발독재체제의 경로의존적인 덫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지점에서 장하준, 정승일의 양자택일 이분법은, 헌법 119조를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최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도 활동한 김종인의 안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김종인이 새누리당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산업화 이후 공룡처럼 비대해진 재벌 지배의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개발독재로부터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가는 데 걸림돌이 주주자본주의라고만 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뿐더러 금융시장과 공생하는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이라는 'X파일'을 빠트린 것이다. 그들은 제도진화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갈등과 쟁투의 동학에 대해 불감증을 보인다.
양날의 칼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라는 이항대립을 핵심 골격으로 삼은 <선택>의 기본논리는 한국사회경제의 진보적 구조개혁을 바라는 99% '경제 시민'들에게 '양날의 칼'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말이 정말 쾌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쾌도라면 양날의 칼을 가진 쾌도일 것이다. 양날 중의 왼쪽 날은 난마를 끊어 내지만, 그 오른쪽 날은 난마를 더 꼬이게 하며 자기 발등을 찍고, 자기 손을 베는 쾌도 말이다. <선택>의 칼은 잘 쓰면 양약(良藥)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쓰면 치명적인 독(毒)이 될 수 있다.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선택>에 대한 나의 지적이 학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제2민주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또 내 자신, 미리 무슨 뾰족한 해답을 갖고 이런 말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토론은 열려 있다. 답은 생산적인, 열린 토론 과정에서 집단 지성으로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대선 후보 선출 과정만 흥행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2민주화의 정치경제학'으로 떠들면서 또 다른 흥행판이 열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 이종태 <시사IN> 기자(왼쪽),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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