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들은 부동산을 모른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그릇된 인식으로는 아무도 설득 못해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3인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다가 두 번 놀랐다. 정승일 박사 등이 토지와 보유세에 대해서 철저히 부정확하고 크게 잘못된 인식을 하는데 우선 놀랐고, 그토록 잘못된 얘기를 너무나 자신 있게 하는데 두 번 놀랐다.

3인 중 주로 이종태 기자가 질문을 하고 주로 정승일 박사가 토지 문제와 종부세 등에 대해서 답변을 하는 패턴이었는데, 정 박사의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고 논리 구사에도 치명적인 허점들을 내장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등장하는 토지와 보유세 등에 관한 인식의 오류들을 찾아보기로 하자.

박정희에 대한 면죄부? 혹은 박근혜를 위한 알리바이?

정승일 박사와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부동산 투기가 박정희 시절에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매섭게 비판한다. 정 박사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박정희 체제하에서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 집값, 부동산 가격만 올라간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도 급속도로 늘어났고, 소득과 일자리, 기업투자라는 실물경제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그 덕택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갔기 때문에 거품경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 박사와 장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부터 만연한 부동산 버블의 근본원인은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화 때문이고, 대한민국 같은 경우는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이른바 시장 개혁-기실은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도입-이 진행된 이후 기업 투자가 줄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은 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데 부동산 값만 올라가는 거품경제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정 박사와 장 교수의 분석은 그러나 박정희 통치 하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지가 상승 및 그로 인해 발생한 불로소득의 규모를 파악하면 설 자리를 잃는다. 이정우(2011)에 따르면 박정희의 집권기인 1963~79년의 16년 동안 전국의 지가 총액이 3.4조 원에서 329조 원으로 폭등함으로써 무려 100배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박정희 집권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할 때 지가총액은 국내총생산의 무려 12배에 달하고, 박정희 통치 전 기간을 합하면 토지 불로소득은 생산소득의 두 배 반을 가볍게 넘는다. 박정희가 다스리던 시절의 대한민국 지가는 상승률과 지가상승 기여도 측면에서 다른 모든 정권을 압도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그럼 지가가 이렇게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이 소수의 토지소유자와 부동산 소유자에게 집중될 때 임금은 얼마나 상승했나? 실질임금 기준으로 고작 4배도 되지 않는 상승률을 기록했을 뿐이다. 은행이자는 고작 17배 남짓 상승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민주정부 시절의 지가는 어떻게 움직였나?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의 연평균 지가 상승률은 각각 -0.6%, 4.3%로 박정희 집권 시기의 연평균지가상승률 33.1%와 비교가 되지 않으며, 국내총생산 대비 지가총액도 김대중 정부 2.5배, 국민의 정부 2.0배로 박정희 집권기와는 역시 상대가 되지 않는다. 또한 생산소득 대비 불로소득의 비율도 국민의 정부는 -0.8로 오히려 생산소득이 불로소득 보다 컸으며, 참여정부도 고작 8.4%가 더 높았을 뿐이다. 경제성장률을 지가상승률과 비교해 봐도 박정희 정권 시절의 지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훨씬 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박정희 정권 시절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지가상승률을 훨씬 하회하는 9.1%에 불과했다. 반면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4.2%, 노무현 정부 시절의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4.3%로 연 평균 지가 상승률을 압도하거나 지가상승률 만큼의 경제성장을 하였다.

결국 박정희 시대의 지가 상승은 투자, 일자리, 소득이 가파르게 상승한데 수반되는 현상이어서 거품이 아니었지만, 민주정부 시기의 지가 상승은 투자, 일자리, 소득이 따라주지 못하는 가운데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무분별한 도입이 야기한 금융버블이라는 정승일 박사와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셈이다.

토지문제는 토지불로소득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토지불로소득은 분배를 악화시키며, 토지를 적정하지 못하게 사용하게 만들고, 개발 갈등을 유발하며, 주택문제를 악화시키고,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며, 경기변동의 진폭을 크게 만드는 등의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토지불로소득은 토건분야에 엄청난 예산 할당을 강요하며, 토건형 산업구조를 고착화시키고, 부정부패를 양산하며, 경제위기와 노사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 같은 토지문제를 경제성장의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박정희 체제였고, 대한민국은 아직도 박정희가 쳐 놓은 외상경제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부동산 버블과 그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이 경제의 금융화 경향이라는 사실은 자명하고, 특히 참여정부가 그로 인해 고전한 것은 팩트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고지가(高地價)시스템의 존재 및 그 시스템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기각시키는 것은 학문적으로 잘못이다.

한편 박정희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박사의 설명과 분석은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전혀 옳지 않다. 커다란 상징권력을 지닌 이들의 이 같은 주장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 아비의 부채는 도외시한 채 자산만을 상속하려하는 박근혜에게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박사의 존재와 주장은 천군만마와도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조선일보>의 종부세 비난을 보는 듯

종부세를 사납게 공격하는 정승일 박사의 등 뒤에 <조선일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고 느낀 건 서글픈 일이었다. 참여정부 내내 <조선일보>의 세금폭탄론에 맞서 싸운 기억들이 탄환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종부세에 대한 정 박사의 주장을 정리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가격이 오른 부동산을 지닌 사람을 투기꾼으로 몰아 종부세를 징수하는 건 부정의하고, 저소득자가 종부세를 못 견뎌 매물로 내놓으면 필경 고소득자들이 이를 매집할 것이며, 자산 재분배가 아닌 소득 재분배가 더 중요하고, 부동산 가격 규제는 종부세가 아닌 주택 대출 규제가 훨씬 효과적이며, 보유세 보다 양도세가 더 나은 세금이고, 저소득 노인들이 상징하듯 종부세는 징벌적 성격의 세금이다'정도가 될 것이다.

정 박사는 보유세 혹은 종부세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보유세 혹은 종부세는 투기꾼 혹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다. 보유세는 만민이 토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등한 권리를 구현하는 세금이며,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보유세 버전이 바로 종부세다.

또한 보유세는 만악의 근원이라 할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기능을 한다. 토지보유세는 형평성 기준을 충족시키며, 효율성 기준(경제성 효율성 및 제도 운영비용) 역시 충족시키는 세금이다. 토지보유세는 초과부담(excess burden) 또는 사중적 손실(死重的 損失, deadweight loss)이 가장 적은 세금이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소위 램지의 조세원칙(Ramsey tax rule)에 가장 가까운 세금이다.

저소득자가 종부세를 못 견뎌 매물로 내놓으면 필경 고소득자들이 이를 매집할 것이라는 정 박사의 주장을 보고 있자면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경상소득이 높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불로소득이 발생하지도 않는데 토지를 매집할 사람은 없다. 그럴 유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토지의 보유 및 처분시에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대도 토지를 매집하지 하겠는가? 토지를 취미삼아 매입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산 재분배 보다 소득 재분배가 훨씬 중요하다는 정 박사의 주장은 소득세 위주의 증세를 주장하는 평소 정 박사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니 새삼 시비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소득 불평등도 보다 자산불평등도가 훨씬 심하며 자산불평등의 주범이 토지 소유의 편중이라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다. 또한 보유세가 가장 좋은 세금이라는 점은 경제학의 상식이며, 같은 조건이 동일하다면 소득세는 생산이나 거래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거의 없으며 주택 대출 규제가 부동산 시장 안정에 훨씬 좋은 정책수단이라는 정 박사의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수히 많고 그 효과도 장기, 중기, 단기에 걸쳐 발휘된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급, 세제, 금융, 주거복지 등의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특정한 정책 하나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호언하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면 그 주장은 의심하는 것이 옳다.

분명한 것은 보유세가 부동산 시장 안정에 필수적인 정책옵션이라는 사실이다. 보유세는 '자본화 효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보유세만 가지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는 없지만, 보유세 없이 부동산 시장을 항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유세 보다 양도세가 더 좋은 세금이라는 정 박사의 주장도 경제학 일반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장이다. 양도세는 동결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보유세에 비해 열위한 세금이다.

끝으로 소득이 적은 노인들의 종부세 부담을 근심하는 정 박사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소득이 적어 종부세를 납부할 수 없는 노인들의 경우 차후 소유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상속할 때 종부세를 일시에 납부하는 납부유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비판은 정확한 사실과 근거와 이론에 터 잡아야

정승일 박사 등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한국사회 안에서 진보나 개혁으로 분류되는 학자 및 이론가들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상대는 김기원, 김대호, 김상조, 선대인, 이동걸, 유종일, 최태욱, 헨리 조지주의자, 홍종학 등을 망라한다. 주주자본주의와 경제의 금융화를 신자유주의적 모순과 질곡의 근본원인으로 지목하고, 복지국가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정 박사 등에게 위에서 열거한 사람들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 문제를 보지 못하고 한국적 특수성을 천착한답시고 지엽적인 문제에 연연하거나, 미국의 경제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사회를 재단하는 사람들이다. 정 박사는 이들에게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를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팩트와 근거와 이론에 터잡아 논적들을 격파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 박사 등이 논적들을 그리 솜씨 있게 제압하는 것 같지는 않다. 토지와 보유세에 대한 정 박사 등의 이해와 인식 수준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게 부정확한 근거와 엉성한 이론에 근거한 비판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진보, 개혁 진영 안에서 국가발전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론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쥐기도 어려울 것이다. 기왕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고착화된 인식의 틀을 무장해제하고 겸손하게 다른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시비를 분별하는 자세가 절실히 정 박사 등에게 필요하다.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운명을 위해 헌신하고 궁리하는 이들에게 왜 배울 것이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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