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되기의 어려움

[이슈 인 시네마]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 리뷰 (8)

※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무려 3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마녀사냥 광풍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 <경계도시 2>가 지난주 18일 드디어 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이 영화에 특별한 응원을 보내며 프레시안에 릴레이 지지 리뷰를 기고해오고 있다. 여덟 번째 지지리뷰는 《우리 안의 파시즘》의 저자이기도 한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가 보내주셨다. - 편집자 주

홍형숙의 다큐 필름 <경계도시 2>는 도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송두율이라는 한 '경계인'에 대한 기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계인'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냉전체제의 압도적 힘과 그에 맞선 한 시지포스적 지식인의 이야기이다. 패배를 예감한 시지포스처럼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온 그에게 패배가 두려울 것은 없다. 승리를 기대하는 주위의 시선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40년 이상을 망명지에서 보내야했던 그의 삶은 냉전이라는 압도적인 상황의 힘 앞에 표류하는 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잘 드러내준다. '경계도시' 베를린에서 그가 택한 망명의 삶은 비단 국가의 경계뿐 아니라 체제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으로 도망가는 '내적 망명'이 아니라면, 냉전 체제 자체를 벗어나는 이주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했다. 탈냉전의 망명자들은 냉전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냉전 체제의 경계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탈냉전의 망명자들이 부딪쳤던 딜레마에서 송두율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반도의 분단이 만든 '특수' 상황은 사실 한반도만의 고유한 문제라기보다는 냉전이 갖는 여러 얼굴 중 하나일 뿐이다.

▲ <경계도시 2>

전지구적 차원에서 냉전체제를 조감하면, 사회주의 진영의 노동자 및 반체제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지배계급과 손을 잡고 자본주의 진영의 노동자와 좌파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의 추악한 국가권력과 친화력을 갖는 이상한 구도였다. 즉 양 진영의 노동자계급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각각 상대 진영의 국가권력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양 진영의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냉전체제를 유지하는 주요 축의 하나였던 것이다. 남한의 보수 세력이 북한 민주화의 기수를 자처하고 남한의 진보운동에 대해 북한의 국가권력이 후견인인양 행세하는 한반도의 양상은 분단의 특수성이 아니라 냉전체제의 메커니즘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냉전 시대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국가권력이 서로 상대 진영의 노동운동이나 반체제운동의 국제 연대 혹은 후원 세력으로 자처함으로써, 냉전의 경계를 넘어 선 노동자 연대나 국제적 평화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냉전 체제의 변화가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변혁으로만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밑으로부터의 탈냉전적 국제연대의 불가능성은 냉전체제를 지속시키는 요인이었다. '경계인'으로서 송두율의 역사적 의미는 '민족'에 기탁하여 이러한 냉전의 경계를 넘어보고자 시도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민족을 근거로 냉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있다.

송두율에 앞서, 냉전의 경계를 넘어 민족의 다른 반쪽을 방문하고 탈냉전의 물꼬를 트겠다는 탈냉전적 민족주의 지식인들의 선의는 '동베를린 사건'과 그 이후의 궤적에서 보듯이 결국 냉전의 경계에 갇혀 남한과 북한 양쪽의 국가권력에 이용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비극적 경로는 끊임없이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냉전의 상황 속에서 '경계인'이 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드러내준다. 남한 민중과 북한 민중의 연대는 말의 영역에서만 가능했다. 정작 현실의 영역에서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은 남한의 국가 권력이거나 북한의 국가 권력이었다.

냉전의 진영론을 넘어서는 경계인의 포지션을 유지한다는 것은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나 강고한 도덕성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권력이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서로 적대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또 강화시켜주는 '적대적 공범관계'를 어떻게 해체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비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자처하면서 냉전의 경계를 넘어 실존의 근거를 옮겼던 냉전 시기 지식인들의 비극은 이들의 선의가 냉전 체제의 '적대적 공범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경계인 송두율의 고투가 시지포스의 도로(徒勞)가 아니라 역사적 결실을 맺도록 만드는 것은 그와 동시대인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것을 <경계도시 2>는 아프게 보여준다.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리뷰 이전 글

<7> 어게인 경계인 : 경계에 갇힌 우리의 초상 - 하라 인권영화제 활동가
<6> 불가능했던 한 민족주의자의 귀환 - 이택광 문화평론가 · 경희대학교 교수
<5> 우리 안의 송두율, 망각과 기억 사이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4> 2003년 그리고 2010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 - 김이환 소설가
<3> 사라진 경계도시를 기억하기 : <경계도시 2>를 감상하는 두 가지 시선 - 이희영 대구대학교 교수
<2>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추민주 명랑씨어터 '수박' 대표
<1> 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 서복경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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