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초심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기고〉 80년대 동지가 이상수 노동장관 내정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김대환 노동부장관의 후임으로 이상수 열린우리당 전 의원을 내정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개각을 계기로 얼음장처럼 얼어 있는 노·정 관계가 회복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로드맵 처리 등 첨예한 갈등의 소지가 있는 당면 현안들은 올 한 해 노·정 관계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분출하던 1980년 대 후반 이상수 내정자와 함께 민중민주운동의 일익을 맡았던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 이 내정자에 대한 기대와 소망, 제언이 담긴 편지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박 위원장은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정계에 입문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도 민중진영을 지키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오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이 글에서 80년대 후반 이 내정자가 보여준 소외된 자에 대한 열정을 기억하며 신임 노동부 장관으로서 산적한 노동 현안에 대해 전임 장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다. 〈편집자〉

먼저 노동부장관으로 내정되신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난마와 같이 엉클어져 있는 노정관계를 개혁적으로 재정립할 적임자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물론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노정관계는 이미 상당부분 악화되어 있고, 노동관련 여러 현안들이 장기간 논란을 거듭해 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를 해결할 시간적 여유조차 별로 없습니다. 

***"1980년대 말, 당신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이상수 장관(인사청문회를 거쳐 곧 장관으로 취임하실 것이므로 편의상 장관으로 호칭하겠습니다)께서는 지난 시기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권리향상을 위해 남달리 노력했습니다. 바로 그 정열과 헌신을 본격적으로 현실의 노동정책에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노동부장관 직은 자칫 욕먹기 쉬운 자리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985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내에 국내 최초로 '노동법률상담소'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노동변론에 나섰던 초심을 생각한다면, 또 1987년 7-8월 노동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노조설립과 관련해 사망한 고 이석규 열사 장례투쟁 때는 직접 거제까지 내려가서 지원하다 구속까지 되었던 그 초심을 계속 유지한다면, 그리고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대투쟁 이후 새로 구성된 13대 국회 때 노동위 3총사의 일원으로 맹활약하면서 노동정책의 개혁과 전문화를 촉구·추동했던 바로 그 초심을 발전시킨다면,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노동정책을 개혁해내고 전문화시키는 업적을 성취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 듬직한 촌놈 기질 기대합니다"**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비정규노동자의 권리보장 문제입니다. 만약 전태일 열사가 이 시대를 산다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는 대신 "비정규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라!"고 절규할 것입니다. 이 장관께서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 입법을 원칙에 입각해서 해결한다면, 현재 증폭된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노·정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또 노·정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재작년 가을 전임 장관이 추진하던 입법안이 비정규노동자 수를 확대시키고 또 권리보장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는 대다수 전문가들과 노동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도리어 이를 비정규노동자 보호 입법이라고 일방적으로 강변(指鹿爲馬)만 했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노·정 간에 신뢰가 깨지고 그 결과 노정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이 장관은 바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성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 입법 문제는 기본권 보장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마땅합니다. 기본권보장 문제는 절충의 대상이라기보다 원칙의 문제에 해당됩니다. 현재 나와 있는 대책들 중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 여름 제시한 입법권고안이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권고안에 근거하여 입법하는 것이 "명실상부하게" 비정규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이 될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노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천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비정규노동자 관련 입법은 장기간의 토론 끝에 이제 "꼭지 딸 일"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께서 생전에 이 장관님을 가리켜 "듬직한 촌놈기질"이 있다고 평한 바 있는데, 지금이야 말로 바로 그 촌놈 기질을 발휘해 원칙대로 뚜벅뚜벅 걸어가 단숨에 꼭지를 따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사관계로드맵 처리, 노정 간 신뢰구축이 먼저입니다"**

다음 현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되어 있는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 문제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문제입니다. 이 문제까지 포함하여 그간 노동부에서는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가지 검토를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직 사회적 공론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골간을 뒤흔들 수 있고 또한 당사자 간 합의도 결코 쉽지 않을 광범위한 의제를 시한에 쫓겨 추진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무리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 도입될 법안과 제도를 놓고 논쟁하고 또한 샅바잡기 하느라 모든 정력을 낭비하게 될 것이고, 정작 노사정 간에 신뢰를 축적하고 그에 바탕해 새로운 노사정 관계를 정립하는 노력은 아예 물건너가게 될 위험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위의 두 가지 문제의 시행시기를 노사합의 하에 몇 년 연기하여 시간을 벌어 놓고, 노사정 간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방향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자리 창출, 노동부의 우선 과제로 배치해야 합니다"**

현재 심각한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일자리 창출의 문제가 또 다른 현안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년실업문제, 중고령자 실업의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문제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현안 과제입니다.

그러나 민간 영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문제는 경기의 영향이나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고용없는 성장" 등의 현상에 의해 정책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방향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공공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나 돌봄노동 등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문제에 더욱 집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노동부가 정부 차원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간사부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영역의 과제를 우선적 과제로 배치하고 명목만이 아니라 내실 있는 대책이 실현되도록 점검하는 일은 일자리 창출의 핵심고리를 잡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당국이 이미 그 구체적 해결방안을 약속한 바 있지만 실제로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린, 공공 부문에서의 비정규직 차별해소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정부 정책의 신뢰성과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정책의지를 확인시킨다는 차원에서라도 시급하게 실천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적 일자리창출에 있어서도, 일시적 땜질식 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방향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장관께서도 노동법률상담소 시절부터, 또 노동위 3총사 시절에도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정책과제를 실천하는 일에는 노동문제 전문가다운 솜씨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노동자 입장 생각하는 노동부장관이 되길 기원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노동부장관으로서 진정한 중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사 간에 단순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압도적인 힘의 열세에 처해 있는 노동자, 특히 비정규노동자와 같은 약자, 소수자의 편에 서서 실질적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는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고 많은 국무위원 중 노동자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국무위원인 노동부장관을 갖고 싶다는 오래 된 우리의 희망이 현실화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역사를 감히 입에 올리기가 민망하지만 새해이기도 하고 또 새로 중책을 맡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노동부장관 직을 시대정신에 합치되게, 그리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올곧게 수행하셔서 이를 통해 이 정부와 이 장관 개인이 모두 실질적 부활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