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글은 인파이터 형은 아니다. 파고들고, 못살게 굴고, 매운 맵을 구사하기 보다는, 마치 무하마드 알리처럼 성큼성큼 링 외곽을 돌다가 한방 펀치에 넉다운 시키는 쪽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신랄하기 보다는 인간적이다. 그는 좋은 게 좋은 척, 에둘러 많은 영화를 옹호해주다가, 어느 순간 어깨에 팔을 두르고 미안한데, 그건 아니었어, 좀 잘해, 쾅!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는 부드러움의 이면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김영진이, 영화진흥위원회가 새로 발간하는 'CINO' 4호에 쓴 글 <한국 상업영화는 어디로 가나 – 장르에 대한 도전없이, TV적 감수성으로 승부하기>도 같은 맥락에서 곱씹을 가치가 남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과속스캔들>과 <7급 공무원>, <차우>와 <국가대표> 그리고 <해운대> 등 올 한해 지금까지의 흥행작들을 아울러 거론하며 칭찬하는 척, '전통적인 기준에서 과연 영화적 퀄리티라고 부를 만한 것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인지 다소 의문스러운 영화들'이라고 혹평했다. 그가 인색함을 조금 덜어내고 그나마 대우를 해 준 작품은 <해운대>와 <국가대표>였는데 <해운대>는 상대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을 고수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가대표>는 영화 자체데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점에서였다. 그나마 배급과 마케팅으로 '밀어붙인' 점을 차치하고서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김영진이 걱정하는 것은, 이들 영화가 '별종들'이라는 점에서인 것 같다. 영화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모험적인 제작 시도를 통한, 장르 관습에 대한 도전이 두드러져야 하는데 앞서의 영화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장르에 대한 도전이 돋보인 영화로 그는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를 거론하고 있다.
김영진의 고민은 그 깊이만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국영화 미학의 미래에 대한 그의 걱정은 진정성이 있다. 맞다. 진화는 도전에서 온다. 한국영화가 요즘 천만 신화를 다시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들, 웬지 신이 나지 않는 건 2% 부족한 무엇, 그러니까 그 도전정신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진의 그같은 우려는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기에 다소 한가한 '책상앞 비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지금은 흑묘백묘의 방법론이 필요할 때일지도 모른다. 검은 고양이가 됐든, 흰 고양이가 됐든 득실거리는 쥐부터 때려잡는 게 먼저일 수 있다. 그게 실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험과 도전도 판이 깨지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한 시도가 있기까지는 그걸 시도라도 하게 만드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다소 별종이 됐다 한들 상업영화권이 살아날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투자가 회복되고,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 근데 이건 너무 시장주의적 발상의 발언일까. 주변에 너무 '고픈' 사람을 많이 봐서일지도 모른다. 생계와 예술, 그 어느 것이 우선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영화를 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벌어서 영화를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험과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시스템과 제도를 만드는 것을 고민할 때다.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97~398 합본호에서도 볼 수 있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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