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시민사회'는 '트로이의 목마'가 두렵지 않다"

[반론] "'국가와 시장 이분법'을 넘는 발상의 전환 필요"

<프레시안>은 지난 4일 김종건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쓴 "NGO가 경쟁을 만났을 때…"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지난 정부 시절 크게 성장한 사회 서비스 부문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복지 서비스 공급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택한 길은 사회 서비스 분야에 민간의 참여를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시장 논리를 통해 공공 서비스 분야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보기에 이런 구상은 몇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공공 부문이 극도로 취약한 한국에서 취약 계층이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지역 NGO의 활동에 기인한다. 그런데 사회 서비스 분야에 시장 논리가 성급하게 적용될 경우, 지역 NGO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자칫하면, 공공 부문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에서 그동안 사회 서비스 공급망의 구멍을 메워왔던 지역 NGO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취약 계층이 기댈 곳은 아예 사라진다.

김 교수의 글에 대한 반박 혹은 보완 성격을 띤 글이 들어왔다.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경제센터 박사 과정 연구원 엄형식 씨가 쓴 글이다. 엄 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먼저, 김종건 교수가 "NGO가 경쟁을 만났을 때…"라는 글을 통해 보여준 사회 서비스 시장화의 폐해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이미 지난 2006년 사회 서비스 확충 정책이 시작됐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시장 친화적인 정책 설계의 폐해가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고, 특히 공공 부문과 시장 부문 사이에 애매하게 존재하면서 사회 서비스 확충 정책의 실질적인 최전선이었던 시민사회의 조직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책 초기 단계에서부터 현장과 학계로부터 예상되던 문제였다.

하지만 시장 친화적인 관점의 정부나 공공 부문 강화를 주장한 전통적인 사회복지 부문 및 현장 사이의 논쟁은 주로 '공공성'의 배타적 독점체로서의 국가와 사적 이익 추구의 원리에 기반한 시장이라는 전통적 이분법 아래에서 진행되어 왔고, 김종건 교수의 문제제기와 제안한 해법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사회 서비스 확충의 실행 주체는 공공 부문과 시장 부문 밖에 없는 것인가? 시민사회의 조직들은 두 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종속변수일 뿐이가?

이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서, 유사한 문제를 먼저 겪어온 서구 복지국가의 197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되고 있는 사회 서비스 영역 탈국가화 과정에 대해 좀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 또는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준공공기관(가령 한국의 사회복지기관)에 의해 공급되었던 사회 서비스가 비판을 받게 된 것은 비단 사회 서비스 영역을 새로운 시장으로 집어삼키려는 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 서구를 휩쓴 사회운동의 열풍은 기존 복지 시스템의 관료주의, 여기에서 비롯된 이용자들을 클라이언트 또는 관리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태도, 시민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뒤늦은 대응 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시민사회의 조직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사회 서비스 공급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으로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운영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욕구를 가진 이용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면서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직접 조달하는 자조조직들이 등장하였다.

즉, 시민사회가 스스로의 욕구를 스스로 조달하는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의 사회 서비스 탈국가화 동력의 일정 부분은 시민사회의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탈공공화'와 '시장화'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리어, 그들은 근대 이후 국가가 독점해왔던 '공공성'이 합리적으로 조직된 시민사회 조직들을 통하여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고, 이 과정에서 국가의 권한과 자원이 시민사회에 배분되는 다양한 방법들이 요구하고, 실험해 왔다.

보조금에서부터 경쟁 입찰, 최근의 바우처 등 다양한 방법들은 사업의 공공성 유지, 시민사회 조직의 자율성 유지, 서비스의 적정성 유지, 정부의 재정 절감 시도, 국민적/정치적 합의 수준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동한 조합으로 실험돼 왔다.

(물론, 의도와 달리 시민사회 조직들의 요구가 시장 부문의 '트로이 목마'로 작동한 결과도 상당 부분 발견된다. 아니, 현시점까지의 냉정한 결산은 시민사회 조직들이 '트로이 목마'가 되어 국가의 역할을 허물고, 시장에게 많은 공공성의 영역을 넘겨준 것이 지배적이라고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주요하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공공성에 기반한 (경제) 활동의 장을 가리키는 '사회적 경제' 또는 '연대적 경제'라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칭하기 시작한 서구 유럽의 시민사회 조직들은 이러한 사회 서비스의 영역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늘날 새롭게 제기되는 사회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오랫동안 국가의 재분배 기능이나 시장의 이윤 극대화 기능 아래에서 작동하지 않고, 상호 호혜와 협력, 그리고 가족 및 이웃의 근린성에 기반하여 공급되던 것들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전통적인 가족과 이웃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급 주체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기반한 서비스라는 이들 서비스들의 특징은 관료적인 접근이나 이윤의 논리 만으로는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총족시키지 못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기존 복지국가 시스템의 변방에서 실험적인 역할에 머물렀던 시민사회 조직들이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사회 서비스 공급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주체로 뛰어든 것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은 변화된, 아니 확장된 공공성에 기반하여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원이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재조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보조금이냐, 바우쳐냐, 경쟁 입찰이냐는 재조합의 여러 가능한 변수일 뿐이며, 시장화라는 표현은 과도한 단순화라고 볼 수 있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서, 새로운 주체로서 시민사회라는 관점으로 한국의 사회 서비스 확충 정책을 바라보면, 우리는 새로운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충분한 사회 서비스의 확충과 공급의 공공성 유지라는 대전제 아래, 이미 국가와 시장이 전략적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공공성의 또 다른 담지자로서 시민사회 조직들의 주도적인 역할이 주된 전략방향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민사회 조직들이 시민사회, 구체적으로는 급속한 근대화와 시장중심 경제 발전으로 해체된 지역 사회를 재조직하고, 복원함으로서 시민들이 서비스 이용과 공급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보다 궁극적인 전망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의 복원이라는 과정에서 국가의 자원과 시장의 메커니즘은 각각 지역 사회를 살찌우는 고유의 장점을 가진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자신의 중심을 잃고 사회 서비스 확충 정책을 보조금의 새로운 원천 정도로 바라보거나, 괜찮은 수익 사업의 창구로 인식하는 것은 스스로의 역할과 정체성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민사회 조직들의 노력은 국가로부터 더 많은 보조금을 끌어내는 것이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에 우선순위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조직으로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 즉 지역 사회에서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신뢰받는 이웃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용자로서의 시민과 공급자이자 마찬가지로 시민인 노동자들이 조직운영에 참여하는 소위 다중이해당사자(multi-stakeholder) 거버넌스 모델은 시민사회 조직을 '그들만의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 사회 주민들이 참여하는 지역사회의 단체로 인정받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별 조직들의 조직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그물망의 한 구성 요소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다른 시민사회 조직들과 유기적인 협력과 협동에 참여해야 한다.

여기에는 경쟁자로 여겨지던 동종업계의 시민사회 조직이나,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조직들 (대표적으로 사회 서비스 노동자들의 권익에 관심이 있는 노동조합이나, 소비자들의 이익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단체, 생협 등)과의 적극적인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이처럼 사회 서비스 공급에 참여하는 시민사회 조직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지역 사회에 열린 운영모델을 갖출 수 있다면, 이들 조직의 경쟁력은 분명하다. 이용자의 욕구에 민감해질 수 있고, 현장의 서비스 공급자로서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태도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시민사회 조직들과의 네트워크는 현금 거래 관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보완적인 서비스와 정보 제공을 가능케 하고, 지역사회 주민과 조직들의 우호적인 태도는 실질적 구매자인 지자체와 공공부문으로 하여금 이들 조직에 우호적이게 만드는 정치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국기기관이 강제로 얻을 수도 없고, 기업들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시민사회 조직들만의 독특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서비스의 질과 합리적 운영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며, 당연히 이용자와 지역사회로부터 우선적으로 평가받는 지점이 될 것이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볼 때, 현재의 상황에서 비영리 민간단체들은 국가의 안전한 그늘에서 밀려나, 광폭한 시장의 경쟁에 내던져지는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의 복원과 강화라는 관점에서 이들 조직들이 전략을 세우고, 연대를 하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다면 지금까지 정치적으로는 강하지만, 생활의 문제에서는 거리가 있었다고 평가받던 시민사회의 조직들이 시민들 곁으로 더욱 다가서고, 시민들의 힘으로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고, 더 나아가 이들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강한' 시민사회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계기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주장 역시 목마를 끌어들이자는 어리석은 트로이 시민의 주장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목마가 경쟁의 논리로 가득찬 시장을 민주화하고, 공공성이 존중받게 만들어 낼 시민사회의 전사들을 쏟아내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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