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이 산재가 아니라고?

[기고] 산재 승인은 명백한 과학적 증명 필요하지 않아

20~30대에 백혈병은 흔하지 않은 암이다. 1년에 10만 명 당 2명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내 같은 라인에서 짝을 이뤄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두 여성과 인근 라인의 유지보수를 담당했던 고 황민웅 씨가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온양공장에서도 박지연, 김옥이 씨 등 백혈병 환자들이 나타났다. 이들 외에도 백혈병과 흑색종 등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여럿 발견됐다.

이것이 우연일까?

이들 중 다섯 명의 환자와 가족들은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공단(산안공단)에 그 업무관련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이에 1년에 걸쳐 산안공단의 역학조사가 이루어졌고, 지난 2월, 역학조사 결과를 놓고 업무관련성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산업보건 분야의 전문가들 십여 명이 모인 이 회의에서는 역학조사 방법과 결과에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공은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어갔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달 안으로 '자문의사 협의회'를 구성해 산재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역학조사 결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조사 결과를 꼼꼼히 봐야하는 이유다.

필자는 결과 발표 당시 일부 언론과 삼성 측이 '삼성전자와 백혈병은 무관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산안공단 발표내용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업체 종사자들과 보통 사람들의 백혈병 사망률 차이에 대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으며, 이는 연구 기간이나 방법상의 한계 때문일 수 있으므로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들이 '전리방사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인자에 노출되었다는 것은 확인되었으나' 그 노출 정도는 매우 낮았다는 것.

하지만 제보자들에 따르면 산안공단의 작업환경측정은 작업장을 깨끗이 청소한, 이른바 '세팅'된 상태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 보고서의 어디에도 삼성 반도체에서 발생한 백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본다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이 업무 때문에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과학적인'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기가 어렵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되는 전리 방사선과 몇 가지 화학물질이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알려져 있지만, 그 구체적인 노출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건강문제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으며,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들은 흔히 '영업비밀'이기에, 그 작업환경과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산재보상보험법은 사실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상당'이라는 규범적인 측면도 같이 고려해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법원은 '인과관계의 입증정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직접적인 증거에 의하여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사실에 의해 업무와 재해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될 정도로 보면 족하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7누13573 판결 참조).

이번 산재 신청자들이나 삼성반도체의 퇴직 노동자들에 따르면, 생산량에 대한 압박이 커서 표준 작업 수칙을 지키지 못하며 화학물질의 누출을 무릅쓰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이들은 전리방사선과 발암물질을 포함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지만 그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적절한 보호 장비를 지급받은 적도 없었다.

이는 고 이숙영 씨의 사망 전 10년 간 진료기록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 이숙영 씨는 거의 매년 자극성 접촉피부염에 대한 치료를 받았는데,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의 화학물질 노출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고 황민웅 씨는 1980년대에 건설된 노후 라인 설비를 유지ㆍ보수하느라 다양한 화학물질에 순간적으로 높은 농도로 노출되는 일이 잦았다. 온양공장의 박지연 씨는 전리방사선을 취급했고, 아직까지 독성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일했다. 같은 공장의 김옥이 씨는 백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트리클로로에틸렌에 몇 년 동안 노출되었다. 또한 이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이라는 유해인자에 노출되어 면역력 저하를 통해 암 발생이 촉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백혈병과 '상당인과관계'에 있다고 보는 근거다. 당연히 하루 빨리 산재 승인이 이뤄져야 한다.

또 산재 승인은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취급하고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암 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병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업종에서 충분한 규제 없이 사용되고 있는 여러 발암물질에 대하여 구체적인 노출 실태를 파악하여 취급에 대하여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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