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성(性)산업…제동을 걸 때다"

[기고] 그대는 진정 '평등 사회'를 원하는가?

기득권 세력이 법을 우롱하고 유린하는 유사한 예는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지만, 삼성 엑스파일 사건처럼 본말이 전도돼 처벌대상자가 엉뚱한 사람이 된 일이 또 일어났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사건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기에 저들이 맞고소한 대상이 성매매 특별법 위반으로 고소한 당사자가 아니라 이를 보도하고 거론한 제3자들이라는 데 있다.

상식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일개 연예인이 대한민국 법까지 유린하는 권력의 한 가운데에 있는 신문사와 그 임원의 실명을 감히 적시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지장까지 찍어 증거로 남긴 글에 언론계 절대 권력자에게 불려나가 그들을 접대했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서가 장난으로 보이는가?

여성으로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화폐에 의한 강간 행위나 다름없는 행위를 당한 것을 고발한 고인의 글은 유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사건은 조사가 이루어져서 고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인이 자신의 목숨 대신 남긴 유서나 다름없는 문서에 거명된 자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한 지인이 있었다. 그가 외국에 있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것을 이용하여 온갖 모욕과 욕설 횡포를 저지른 한 대학생이 실명을 건 그의 공개 사과 요구에 법을 교묘히 악용하여 그를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이라도 공개적으로 적시했다는 것으로! 그 외국이 후진국이어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그 대학생은 처음과는 달리 이제 적반하장으로 증거를 대라며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는데 그가 혼자 날뛰는 것이라며 기세가 등등하다. 얼마든지 수사를 통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상황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비양심적 범죄적 행위를 어찌 한 국가의 최고 언론 기관마저 그처럼 고소를 남발하며 자행할 수 있는가? 그만큼 뒤가 구린 것이다.

고 장자연 님의 억울함은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그러나 아직 단 한 번도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가 없음은 매우 한탄스럽다. 우리는 종종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과 언론과 같은 그들의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티격태격하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음모를 폭로하며 그 틀을 깨 주는 현명한 이들의 역할이 늘 있어 온 우리의 역사이지만, 이번만큼은 소위 진보주의자라고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탓에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들의 의도 그대로 따라가 주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디로 간 채, 독자의 알 권리 운운하며 실명을 들먹이고 일방적인 평까지 곁들이며 실시간 보도하던 언론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서우리만치 침묵과 중립을 지키고 있다. 사실 적시라도 명예 훼손이 될 수 있어 실명과 해당 언론사 이름을 표기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여타의 기사들과 비교할 때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여기에는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곳들에서도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보도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언론계 제 식구 감싸기라서 그런 것일까? 그들이 진짜 감싸는 건 무엇일까?

과연, 이른바 '장자연 사건'은 단지 '일부' 연예계와 '일부' 권력층, 재벌들, 언론인들만의 문제일 뿐인가? 그렇다. 성'접대' 문화도 문제이지만, 접대와도 상관없는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을 유희의 도구로 삼고 있는 남성 중심 유흥 문화, 성산업의 총체적 문제가 바로 이 사태의 근본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성이 매매되고 있는지, 이른바 '2차'가 이뤄지고 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바로 그 성매매 여부의 기준 탓에 많은 이들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곤 한다. 이제 근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의 유흥과 접대,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가지각색의 직간접적 성산업 문제를 심각하게 문제제기해야 할 시기가 왔다.

다시 묻는다. 곧잘 더욱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예리한 논평을 남기곤 하던 그 많은 진보 남성 지식인, 활동가, 언론인들 중에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 글을 쓰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설마 돈 많이 버는 연예인 한 명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서일까?

그렇다. 이종걸 의원의 문제제기에 <조선일보>가 곧바로 전면에 배치한 한 누리꾼의 글 제목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종걸 의원, 당신은 성 접대 안 받아 봤소?' 물론, 선정적인 글 내용과는 달리, 그 누리꾼의 글은 식당 등에서의 여성 종업원의 서비스와 성 접대를 동일시하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 문구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거의 모든 남성이 성 산업과 성 접대 유흥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접대를 주고받는 이들이 바로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 권력자들과 자본가들, 언론인들 그리고 거기에 붙어먹고 사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부패와 불의의 영역과는 달리, 이러한 문제는 그 보호의 두터운 막 탓에 그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계라는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같은 성 접대 문화의 공동 향유자로서 그 구조를 파헤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언론인들도 성매매 반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한 여성 의원의 말에 광분한 사설을 쓴 근본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평등과 인권을 옹호해야 할 진보 좌파들조차 이 문제에서는 기권하거나 성노동자 운운하며 정반대의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이나 통일, 비정규직과 성소수자 등 진보 좌파적 거대담론이나 서구에서 논의된 틀에는 익숙하지만, 막상 진정한 한국 사회에 절실한 사회 변혁과 (성) 평등을 위한 문제에는 너무나 둔감한 이들이 많다.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이 영역에 대한 무지 탓이라고 하지만, 실은 이 문제에 대해 알기를 꺼려하며, 자신의 또 다른 권력이라고 생각하여 폭로를 거부하며, 심지어 일부는 아예 그 구조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진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들조차 성 산업에서 자유롭지 못 함은 심각한 문제이다. 또, 존속과 폐기의 양극단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 산업과 성매매의 문제는 인류 역사의 문제이며, 도덕이나 범죄학의 영역에 불과한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일부 인자들조차 평소의 '성노동자론' 탓인지 별 말이 없다.

집에서 불과 몇 발자국만 나서면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각종 성매매 업소와 숙박업소들이 난립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많게는 150만여 명의 여성들이 얽혀 있고 GDP 중 농림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더 커진 성 산업. 이러한 직간접적 성 산업에서 벌어지는 여성 인권 유린에 대해 웬만한 남성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한국식 여성 모욕적 성매매 유흥/접대 문화와 산업을 우리네 기업들과 상인들은 다른 나라로까지 어마어마한 규모로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여느 국가에서나 마찬가지로, 필자가 머물렀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구 소련 지역에서도 역시 그러한 성 접대 문화의 만연을 넘어, 아예 성매매 유흥의 안정적 일상화를 위해 한국인들이 반불법적으로 업소와 모텔들을 직접 열어, 한국 기업들, 공관들, 출장객들, 관광객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매우 친밀하고도 공고한 동업 구조를 만들어 왔다. 과거 일본인들의 행태와 큰 차이점이 있다면, 불황의 시기에조차 관료들, 기업들, 상인들, 언론인을 막론하고 성 접대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늘 호황이라는 점일 것이다.

법과 제도가 미비한 후진국들에서 부패의 일부가 되어 성 산업을 확장시켜 온 역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들의 집단 성 접대 문화와 산업이 사회 문제가 되어 국가적 망신을 사곤 하는 뉴스는 지겹도록 반복된다. 그러나 현지 노동자 착취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현실에서 더 많은 이들이 연루되어 있는 성 산업 문제는 늘 정부가 가장 방치하고 있는, 아니 아주 방치하고 싶어 하는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수년전 러시아 한인 성매매 산업 고발 사건과 관련하여서도 당시 너무 부패 정도가 심해 감사원 조사까지 나오는 등 정부는 약간의 소란을 떨었지만, 업소들을 러시아 당국에 고발하는 조치와 같은 형식적인 조치조차 하지 않은 결과, 오히려 고발자에 대한 협박과 허위 사실 유포만 이어졌다. 거의 매일 성 접대로 흥청망청하던 유명 대한민국 기업들은 내부 메일을 통해 비아냥거리는 투로 '잠시 동안만 유흥업소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물론 그 조치는 얼마 이어지지 않았고, 이들 기업에 고용된 저임금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까지도 '새벽 3시 회식 200만 원'이라는 영수증도 그냥 넘어가는 형식적 감사를 위해서 접대비 가짜 영수증 만드는 데 동원되고 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여기지 않는 대다수의 사무직 노동자들의 유흥, 스트레스의 일방적 해소 장소인 이들 직간접적 성매매 업소들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유인되고 있으며, 상당수의 저임금 남성 노동자들 역시 스스로 룸펜화하면서 성 산업을 주도하거나 그곳에서 기생하는 조폭과 종업원 등이 되어 그 일원이 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나올 정도로 이제는 전혀 비밀도 아니지만, 바로 이러한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 그리고 폭력 범죄 집단이 서로 보호해주는 성 산업이야말로 파업 파괴자들과 노점상, 철거촌 철거 용역 깡패들의 서식지이자 자금줄이라는 것은 이번 용산 사태에서도 우리는 잘 알 수 있었다.

이른바 여성 접대부 고용 업소를 비롯한 각종 성매매 업소들에서의 회사 공식 접대비는 연 수조 원에 달한다. 부자 증세와 고소득층 탈세 방지와 더불어 이러한 공식 접대비의 전환만으로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의 재원을 거의 충당할 수 있다.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난립해 있는 러브호텔들을 지역 복지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제 기업의 공식 성 접대 문화를 철폐하고, 성산업 업소들의 업종 전환 및 지역 복지 시설로의 전환, 그리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접대부 역할을 하는 업소들의 폐쇄가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 이 나라의 사회를 변혁하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평등한 나라를 만들고 한다면, 이제 이 문제를 눈감지 말자.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일보>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그냥 묻혔을 뻔 했다. 만일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서 폭로했으면, 아마도 성의 대가로 이미 얻을 거 다 해놓고 웃긴다며 오히려 그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을 이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조선일보>의 음모론, 그리고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압력이 있었다는 기사는 한 편으로는 장자연 사건의 물타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정권의 성향과 전혀 상관없이 이 땅의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의 성 권력 구조는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건데,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의 여부가 성 산업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대가성이 있는가의 여부도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오늘도 백수십만 명의 장자연들이 남성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성노리개로 주물러지며, 성 접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건으로 거래되고 있다. 성매매는 말 할 것도 없고, 여성이 접대부로 나오는 모든 종류의 유흥 산업을 반대하자. 화폐에 의한 합법적 성폭력의 온상인 성매매 업소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성폭력 없는 사회란 없다. 진보 진영 내 성 관련 문제의 극복도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운운하기 전 우리의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평등한 사회를 위해 현실에 가장 필요한 변혁을 이제 실천하자. 이 영역의 철폐와 축소가 저들이 더 양보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기득권 구조이다. 성산업과 성 접대 문화 철폐 없는 사회 진보, 변혁 논의는 끼리끼리하는 허황된 논의이다. 룸펜을 줄이고, 여성 노동자들이 성매매 여성화되는 현상을 최소화하는 것, 건전하고 양성 평등한 노동 문화를 만드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임무이다. 북한이 붕괴되었을 때, 특히 여성들의 성매매 여성화가 대규모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일이다. 이제 진정한 우리 사회의 변혁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 발상의 대전환으로 늦어도 너무 늦은 변혁을 위한 싸움을 전개 해 나가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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