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사망ㆍ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노동자 죽음 방치하는 정부가 '산업안전올림픽' 유치?"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한가하게 기업기밀 타령이 나옵니까? 사람 목숨 앞에서도 그렇게 여유 있는 대한민국 노동부가 과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를 유치할 자격이나 있습니까? 부끄럽습니다."

'산업안전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산업안전대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일, 대회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한쪽 구석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13명의 노동자가 같은 병으로 사망 혹은 투병 중인데도 관련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기업기밀'을 방패 삼아 발뺌만 하고 있는 노동부의 태도에 분통이 터져 쏟아진 말이었다.

그 '같은 회사'는 삼성반도체. 지난해 3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가 급성골수백혈병으로 사망했고 같은 라인의 이숙영 씨도 똑같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 이후 만들어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에는 같은 병으로 투병하고 있거나 이미 숨진 사람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성반도체는 한국타이어에 이어 '제2의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며 세상의 관심을 받았다. .(☞ 관련기사: "삼성반도체 다니다 백혈병 얻어 죽었습니다", "삼성에 노조만 있었더라도 우리 딸이 그렇게…")

하지만 정부는 '폼 나는'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 서울 유치에만 정성을 들였을 뿐이었다. 정작 자국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터에서 병을 얻어 숨진 이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정부는 그저 버티기만 했다.

대책위와 유족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산업안전 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을 찾았다. 삼성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1차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다.

"조사 과정에서도 삼성에 미리 다 알려주더니 조사 결과는 공개 못해?"

지난해 실시된 13개 반도체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노동부가 한 줄도 공개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가 누출될 우려가 있고 국제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조사 방법과 조사 결과, 사용된 화학물질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책위 측은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어 노동부가 공개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까지 보내고 있다. 박순남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우리에게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역학조사 팀이 회사에 들어오자 삼성반도체 측은 작업자들에게 몇몇 화학물질을 치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며 "그런 식으로 조사가 진행됐다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고(故) 황유미 씨에 대한 산업재해 판단 여부를 놓고 진행 중인 산업안전공단의 추가 역학조사 과정에도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9월 황 씨가 일하던 라인만을 조사한 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대책위 측이 2만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일하는 기흥공장 전체를 검사해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현재 추가적인 역학 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책위는 조사 결과 공개와 더불어 역학 조사의 신뢰도를 위해 "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의 역학조사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안전 올림픽'이 열리는 그 현장에서 삼성반도체 문제의 1차 조사결과 공개와 더불어 제대로 된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 대회를 유치한 대한민국 정부의 산업안전에 대한 천박한 인식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프레시안

"당신에게는 삼성이 '희망'을 연상시키는 기업입니까?"

자기 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같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당사자인 삼성의 태도는 노동부보다 더 심각하다. 삼성은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반인의 백혈병 발병률보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발병률이 더 낮다"며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책위 측은 "삼성은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에게 개인적인 질환일 뿐이라며 퇴사를 종용하고 금전으로 회유하여 산재신청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3년 전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민웅 씨의 아내 정예정 씨는 "위로금, 퇴직금만 던져주고 모든 고통을 유가족에게 떠넘긴 채 '너희가 산재 입증을 해볼테면 해봐라'며 뒷짐지는 것이 삼성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 "아직도 삼성엔 안 터진 고름이…")

그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삼성이 '희망'을 연상시키는 기업일지 모르지만 삼성은 국민기업이라는 간판을 달고 실제로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는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자기들이 만든 '서울선언' 수준이라도 지키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

2일 폐막한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는 '서울선언'이 채택됐다.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며 세계화는 반드시 이를 보장하기 위한 예방대책과 함께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서울선언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수도의 이름을 선언문에 올려 놓은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화려한 국제대회 한켠에서 "자기네들이 만든 '서울선언' 수준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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