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Iron Man."(나는 아이언맨이다.)
단 네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문장은 단번에 기존의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들로부터 아이언맨을 차별화시킨다. 이 간단한 말로 인해 아이언맨은 고전적 영웅들의 금기로부터 간단하게 벗어난다. 그는 자신의 성과를 떳떳하게, 씩씩하게, 혹은 뻔뻔하게 온 세상에 드러내는, 전략적인 미디어 플레이어인 것이다. 냉전시대 이후 감히 그 어떤 슈퍼히어로가 자신의 정체를 공론화하고 업적을 공언했던가. 프라이버시의 전성시대에 그 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기자들과의 공적인 자리에서 영웅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했던가!
슈퍼맨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했고, 배트맨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지하에 숨어 살았다. 스파이더맨은 극히 극소수의 지인에게만 자신의 정체를 알렸다. 그것도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 말이다. 가면이 벗겨질세라, 안경이 벗겨질세라, 변장이 탄로될세라, 은둔처가 발각될세라, 그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얼굴이나 본명은 부끄러운 치부보다도 더 치열하게 은폐되었다. 쾌걸 조로가 그러했듯, 영웅의 유전자에는 자기 은폐의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의) 규범적 교훈으로 더욱 겹겹이 위장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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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에선 소심과 조심, 노심초사 그리고 우아한 겸손은 모두 가고, '깡'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비밀은 없고, 자부심은 충만하다. 과묵한 정의감에는 당당한 자기 선언이 따른다. 자기만의 보람 대신 자기홍보가 있다. 전통 슈퍼히어로들의 분열적 이중생활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대범함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심히 소심하게 보일 형편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는 다른 슈퍼히어로들도 은밀한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아니, 이제는 은밀함을 포기할 기회를 영구히 잃었을지 모른다. 클락 켄트가 이제 와서 기자들에게 다짜고짜 "내가 슈퍼맨이오"라고 선언한다면, 이 창의성 없는 소심남의 모방행동에 그 어떤 관객이 귀를 기울이겠는가.
스타크의 폭탄 같은 자기선언은 여러모로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강철' 같은 의지를 나타낸다. '아이언맨'이라는 이름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순간은 영화가 거의 끝나기 직전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웅의 활약상을 보도하는 신문의 머리기사에서이다. 스타크가 이에 대해 보여주는 반응은 조롱이 섞인 탄식이다. 첨단 재질로 만들어진 최신 병기를 두고 고작 '철'이라니!
네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단어는 단연 'Iron'이다. '철(iron)'은 자연의 구성 원소이다. 가공되지도 않은 상태의 광물이다. 차라리 시민과 기자들이 '강철(steel)'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그 나마의 미세한 정확성을 지향하진 않았을까. (물론 '강철맨(Man of Steel)'은 슈퍼맨의 별명이었으니 그럴 수는 없었겠지만.) '철'은 '강'보다 원초적인 원형이다. 인간의 조작 이전에 존재하는 문명 밖의 거친 재료이다. 스타크가 이루어낸 최첨단 과학기술의 성과를 일컬어 고작 '철' 운운하는 것은 무지로 인한 오인이자 과소평가이다. '아이언'이라는 물질도 거칠지만, 이 첨단 갑옷을 '아이언'이라 칭하는 대범한 무지야말로 거칠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거침 속에 아이언의 '아이언다운 성질', 그러니까 말 그대로의 '아이어니(irony)'가 숨어 있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지기만 하는 '아이언'의 '아이러니'는 곧 이 영화의 숨은 내성이 아닌가. 물론 어원적으로는 두 단어는 무관하지만 말이다.) 토니 스타크는 대중의 무지에 경악을 하면서도 결국 그에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의 딱딱한 수사에 담긴 묘한 매력을 예리하게 발굴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거칠디거친 수사에 분명 묘하게 거친 매력이 있다. 딱딱한 말 속에 견고한 마력이 있다. 이젠 대중을 보호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감각을 발굴해내고 그를 세련됨으로 승화시켜 대중과 공유하는 자가 영웅이다.
영웅의 간단한 발화로 말미암아, 이제 대중과 영웅은, 그리고 관객은, 묵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과학적 상상이 허락하는 그 어떤 화려한 단어로 '영웅'을 지칭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아이언'이 확보하는 거칠고 풍성한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할리우드가 상상하는 과학의 수준이 물리적 상식을 벗어나는 높은 수준에 오른다 할지라도, 결국 '영웅'을 이루는 요소로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탄소섬유맨'이라던가 '리퀴드메탈맨' 따위는 패러디영화에나 나올 법하다. 영웅의 하드바디는 단순하고 즉물적일 수록 좋다는 것이 할리우드가 '강화'하는 가치관이며, 아이언맨의 발화로 말미암아 관객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무정형적으로 변신하는 최첨단 병기보다 물리적으로 제한된 하드바디가 더 쉽게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원리를 따르지 않는가.
대중과 영웅의 공감이 담금질되고 나면, '철'의 매력은 무한히 뻗는다. '철'은 인간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개입된 가장 오래된 광물 중 하나이다. 철의 매력은 그만큼 원초적이다. 그러면서도 철의 상징적 의미는 물질적 강인함과 더불어 정치적, 경제적 강인함까지 무난히 포함한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철을 제강하는 능력은 곧 국력과 맞물렸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곧 철강 산업의 융성과 결을 같이 했다. 19세기 후반기에 영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이래,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미국의 철강 산업은 국가의 보호무역 정책 아래 미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견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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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언맨'의 아이러닉한 매력은 미국 철강 산업의 쇠퇴를 근원으로 삼는다. 2차 대전을 계기로 국제적인 입지를 확보할 바로 그 무렵에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철강 산업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의 막강한 정부지원과 최신설비에 밀려 불황을 겪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대의 철강 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언맨'이라는 코믹북 캐릭터가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가 바로 미국의 철강 산업이 불황을 맞은 시점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1963년 코믹북 <서스펜스 이야기(Tales of Suspense)>를 통해서였다. 베이비부머의 유복함이 1960년대의 격정으로 전환될 무렵, 아이언맨은 하나의 소박한 바람을 안고 탄생한 것이다. 쇄약의 기미를 보이는 아메리칸드림의 이상에 새롭게 상징적인 원동력을 제공하겠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의 기세 속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소외된 영웅의 왜소한 바람이 되었다.
할리우드가 슈퍼히어로의 붐을 타고 냉전시대의 영웅을 부활시킨 시점이 중국, 러시아, 브라질, 동구유럽 등의 신흥경제국들의 철강 산업의 강세로 인해 더욱 힘들어진 시기라는 사실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결국 대중의 퇴행적인 수사 속에서 지능 높은 토니 스타크는 읽어냈으리라. 철강 산업의 융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성기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가 녹아 있음을. 국제 질서를 통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적 야망이 단순하고 거친 '철'의 야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탐미적 환상과 은밀하게 결탁하고 있음을.
하지만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미국이 가진 '아이언'의 이상과 야망은 강철 같지만은 않다. 아이언맨이 설칠수록 미국의 철강산업은 약화되는 것이 그가 짊어진 운명적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결국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결핍'을 발화한 셈이다. 혐오했던 이름을 자신의 입에 담아 스스로를 호명했다. 그리고 미국이 상실한 산업적 기반을 기표화했다. 상실과 결핍을 지시하는 언술을 행하는 순간, 주체는 절대적인 미끄러짐 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영화 <아이언맨>의 숨은 교훈이다. 언어는 불가능을 지시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끄러짐과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언어가 소통해주는 아이러니이다. 이러한 언어에 의존하는 인간은 아이언 맨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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