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유가족 측 전문가들은 10일 오후 서울 종로 참여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학적 작업 환경 요인을 찾을 수 없었을 뿐 아직 조사가 충분치 않다"며 "마치 노동자 사망 원인이 공장의 작업요인과 관련 없다는 결론이 난 것처럼 사회 여론이 형성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대책위 자문의사단 노상철 교수(단국대 산업의학)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중간 발표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 "심장병 사망률이 일반 국민에 비해 5.6배에 이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심장병 사망률 5.6배? 일반적으로 직장 사망률은 더 낮아"
노 교수는 "보통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건강 검진 등 건강관리를 받고 안정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 비해 건강이 양호한 집단에 해당한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심장질환 사망률이 5.6배에 이르고 협심증 유병률이 2.6배에 달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치"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건강관리를 받고 병이 생겼을 때 퇴직하는 관행을 생각하면 현직자의 건강은 일반인들보다 좋아 사망률 등이 0.7~0.8 정도로 나타난다. 이를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건강한 노동자들이 공장에 취업하게 되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이직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공장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 조사를 하면 이들이 일반 인구 집단보다 더 건강한 것으로 왜곡돼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하지만 한국타이어는 거꾸로인 것은 물론 그 수치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에 노 교수는 "이번 조사는 현직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퇴직자까지 조사 대상을 넓히면 사망률 등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아직 조사되지 않은 '직무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 교수는 "직무 스트레스가 심장질환 발병에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직무 스트레스 조사에는 유족 측 전문가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또 "이번 조사에는 2006~2007년 사망 사례만 포함돼 있는데, 조사 범위를 지난 10년간 사망 사례에 대해 현직자는 물론 퇴직자까지 모두 추적해 조사해야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한국타이어 규모의 작업장이라면 적어도 1년 정도는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암 발생률도 주목해야
지금까지 관심의 초점은 주로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에 의한 돌연사에 집중되는 동안 암 발생률 조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중간 결과 발표에는 심장질환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만 포함됐는데, 암 환자 발생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도 "일반적으로 암은 발암물질에 노출된 이후 적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이 경과한 후 발생하는 것으로, 한국타이어 노동자 암 발생이 작업환경과 관련돼 있다면 그 작업 환경은 과거 10~30년 전의 작업환경"이라며 "그런데도 사건이 불거진 이후 깨끗이 청소된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로는 발암 물질 노출 여부를 결론 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중 지금까지 암에 걸린 사람은 몇 명이고 그 중 사망한 이들은 몇 명인지, 그리고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높은지, 과거 작업환경 중 암 발생을 초래할 요인은 무엇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조사를 실시해야만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결론은 유족 측의 전문가들을 조사에 참여시킨 뒤, 조사 대상을 현직자는 물론 과거 사망자 및 퇴직자까지 늘리고 심장질환은 물론 암 발생 원인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수적 해석·미숙한 발표"
이상윤 정책국장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팀은 '짧은 시간'과 '부족한 권한' 때문에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고, 이 점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통해 얻어낸 자료를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정책국장은 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청소된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을 찾을 수 없었을 뿐인데도, 언론에는 작업환경과 돌연사 사이에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린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며 "이런 보도가 나오게 된 데는 산업안전연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 결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해석을 생략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책국장은 "다 결론 내려진 것처럼 보도될 걸 모르고 연구원이 발표를 했다면 순진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 것이라면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참여연대, 유족대책위 자문의사단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유족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정한 역학조사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며 "대통령 당선자의 사돈 기업이라는 것 때문에 문제를 서둘러 덮으려 한다면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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