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땅부자 민영휘 재산 57억 '국가귀속' 결정

친일재산조사위, 2차 국가귀속 결정 발표. 친일파 10명

지난 5월 이완용 등 친일파 재산 1차 국가귀속결정에 이어 13일 '2차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졌다. 이번에 포함된 친일파는 민영휘, 민병석, 민상호, 박중양, 윤덕영, 이근상, 이근호, 이재곤, 임선준, 한창수 등 10명으로 국가귀속 대상 재산은 257억 원 상당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친일재산조사위)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위원 9인 전원의 찬성으로 민영휘 등 10명의 토지 총 156필지, 102만60㎡(약 31만 평), 시가 257억 원(공시지가 105억 원) 상당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친일재산조사위에 따르면 이번에 귀속결정이 된 10명의 친일파 중 일제시대 땅 부자 순위를 매겨 보면 이근호(398만여㎡), 민병석(358만여㎡), 윤덕영(255만여㎡), 임선준(136만여㎡), 민영휘(128만여㎡) 등의 순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영휘는 대부분의 토지를 민대식 등 자식의 명의로 했기 때문에 이를 자식들 명의의 토지를 모두 합하면 약 7600만여㎡로 으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 토지를 1930년대 말 부터 해방 후 농지개혁을 거칠 때까지 상당부분 매각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병석과 이근호의 경우 보유 토지의 각 95%와 99%를 1930년대 말 매각했다. 특히 민병석은 사치와 방종, 자본 전환의 실패로 1935년 보유했던 토지 대부분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윤덕영과 민영휘는 생존시는 물론 후손들까지 부와 명예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재산조사위가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30~1940년대 윤덕영의 연소득은 약 11만 원으로 현시가 17억 원에 이르러 경성 자산가중 소득 기준으로 서열 11위였다.

"민영휘, 조선 고금 몇 백 년 내 처음보는 큰 부자"

윤덕영도 그러나 민영휘의 자식들에 비하면 '작은 부자'였다.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과 민규식은 각각 연소득 24만 원, 14만 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38년 <삼천리>라는 잡지는 민영휘에 대해 "조선에서 고금 몇 백 년 내에 처음 보는 큰 부자"라고 기술돼 있고, 한 때 재산 규모가 4000만 원(현 시가 약 8000억 원)까지 불어났던 것으로 전해져 온다. <삼천리>에는 민영휘의 토지에 대해 "평안도를 비롯하여 전 조선 각 도에 없는 곳이 없으며 오직 함경도가 빠졌을 뿐"이라고 기술돼 있다.

이번에 국가귀속이 결정된 민영휘 후손 명의의 토지는 청주 상당산성 일부를 포함해 31만7632㎡, 시가 57억 원 상당의 토지이다.
▲ 제2차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 개요. ⓒ친일재산조사위

이로써 1차에 귀속결정까지 합하면 총 19명의 친일파 재산 320억 원 상당의 친일재산이 국가귀속 결정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이밖에 현재 109명의 친일파 재산 979억 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들 토지에 대해서는 후손들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게 법원에 보전 처분을 마친 상태이다.

친일재산조사위의 이의가 있는 당사자는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1차 국가귀속결정 이후 친일파 조중응의 후손이 제기한 1건의 행정심판이 청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을 위한 지원금 및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우선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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