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교육 비판해 온 학자와 전교조, 왜 대화 안되나"

[독자편지]한 사범대 학생이 김신일 교육부총리에게

교육당국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교육당국은 지난해 11월 연가투쟁에 참가한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유례없는 강경조치를 펴고 있다. 이에 맞서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국제노동기구(ILO) 제소, 국가인권위 진정 등을 포함한 전방위 불복종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보다 하루 앞선 30일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정 위원장의 만남이 예정돼 있었지만, 전교조 측의 요구로 갑자기 연기됐다. 만남이 연기된 공식적인 이유는 정 위원장의 건강 문제였다. 그러나 이처럼 갑작스럽게 약속이 연기된 것을 교육당국과 전교조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교육당국이 강경한 태도를 거두고 조금 더 부드러운 자세로 전교조와 대화를 시도할 것을 주문하는 글이 <프레시안>에 기고됐다. 교사가 되기를 꿈꾸며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필자 황진태 씨는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의 조카이기도 하다. 다음은 황 씨가 보내온 글 전문이다. <편집자>

얼마 전 <프레시안>에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김신일 교육부총리께 드리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평범한 사범대 학생인 저도 최 의원의 편지에 담긴 취지에 공감하며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현재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대한 징계 불복종 투쟁과 얼마 전에 있었던 통일교육과 관련한 전교조 교사에 대한 '공안탄압' 등으로 인하여 전교조와 교육부 간에 대립이 첨예한 형국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충돌은 일시적인 사건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한국 교육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 현대 교육사는 '미국 따라하기'의 역사

반세기 한국교육학의 학문적 경로에는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을 향한 사대주의가 잘 녹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과정의 변천사는 해방 직후 교과중심 교육과정(1950년대)→생활중심 교육과정(1960년대)→학문중심 교육과정(1970년대)→인간중심 교육과정(1980년대)까지 대체로 미국에서 시행되던 것을 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도입한 과정에 다름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미국 따라하기'의 역사는 결과적으로 아직까지도 한국 교육지형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라 불리는 1990년대에 시행된 제4차, 제5차 교육과정은 통합적 교육과정을 내세우며 우리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을 시도한 듯 보이지만 문교부를 '교육인적자원부'라고 개칭한 데서 드러나듯 교육에서조차 인간을 일종의 자본으로 보는 미국발(發)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도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한국교육 반세기 역사에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지식인들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교육학자 출신의 역대 장관들 중에는 한국과 미국의 사회경제적 풍토의 차이를 무시한 채 이런 미국 중심 노선을 무리하게 적용함에 따라 발생한 문제들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는커녕 장관 출신이라는 '전관예우' 떡고물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도 있었지요.

그래서 일부 교육학자들은 김 부총리께서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저 존경받는 학자로만 남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이 들렸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장관 직을 수차례 고사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정권 말기 교육부장관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저 또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정책 전반에 난맥상이 보이는 지금, 어쩌면 교육 부문에서나마 이런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 김신일 교수의 장관 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취임하신 지 얼마 안돼서 발생한 전교조와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간의 갈등을 보면서 제가 책을 통해 만났던 교육학자 김신일 교수의 모습이 많이 혼란스러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엄혹한 시절, 교육에 희망을 품게 했던 학자 김신일, 지금은 왜?

요즘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따지면 순진하다며 조롱 받는 게 당연지사처럼 되어 버렸지만 저는 아직도 교육이 희망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런 희망을 갖게 한 교육학 저서로 단연 김 부총리의 명저인 <교육사회학>을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저서에 담겨 있는 다음의 귀절은 저뿐만 아니라 김 부총리와 현재 대치하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에게도 틀림없이 학생시절에 적지 않은 감화를 주었을 겁니다.

"교육을 보편타당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금만 주의하여 관찰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현실의 교육은, 특히 제도교육은 그 사회의 지배집단 또는 주류세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교육은 대체로 파당적이고, 흔히는 위장되어 있지만 특정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이 헤게모니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이념투쟁이나 계급투쟁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을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 보편타당한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기존 지배집단의 교육을 정당화하고 변호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제가 지금, 김 부총리께 이론으로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왜 현실에서는 다르냐는 것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교육부장관이라는 '자리' 때문에 입장과 소신 사이의 갈등과 곤란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전교조와의 갈등을 낳은 교원평가제 실시 과정에서 교육부 측의 일방적인 진행이 전교조 입장에서는 연가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고 여겨집니다.

"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둘러싸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집단이 경쟁을 벌인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다투는 여러 집단의 성격과 의도,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교육의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계 내부도 들여다보면, 교육행정가, 교사, 학부모, 학생 등 여러 집단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교육을 만들어간다. 이런 교육관련 집단 간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같은 책에서 김 부총리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김 부총리께서 예리하게 지적한 '교육관련 집단 간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을 현재 교육부 측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니 상황파악은 정확히 하고 있지만 행정관료주의적 편의, 보수언론에 의해 감염된 '전교조 죽이기' 풍조로 인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다른 학자 출신의 교육부장관이었다면 이처럼 예의를 갖춘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 교육학의 학문적 풍토에서 그나마 과도한 미국 편향에서 벗어난 분야가 교육사회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갈등의 '갈' 자 조차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학계 분위기에서 가늘게나마 교육사회학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한 학자, 김신일 교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갈등에 대해 대화가 가능한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참교육'이라는 모순된 단어 속의 진실…허심탄회한 대화가 절실

얼마 전 무산된 교육부장관과 전교조 위원장 간의 만남이 과연 다시 시도되는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사로운 사실 하나만 밝히면 저에게 정 위원장은 숙모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친지의 결혼식에서 잠깐 위원장 당선에 대해 축하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본디 여장부로 듬직한 풍채였는데도 불구하고 입원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고충이 컸을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리고 저희 부친께서 김 부총리의 취임 장면을 뉴스로 보시면서 숙모의 결혼식에 김 부총리께서 주례를 하셨다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언론의 인터뷰를 보면 정 위원장은 자신의 결혼식 이후에는 김 부총리를 뵌 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사사로운 인맥과 친분에 매달리는 것은 그다지 옳지 않은 일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최근 언론보도에서 교육부의 인적조치에 대해 전교조가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하는 등 갈등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런 갈등으로 인한 피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스승과 제자 간이기도 한 두 분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부탁드리는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이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1989년 당시 창립 발기선언문에서부터 전교조 교사들이 외쳤던 '참교육'이란 단어는 사실 언어논리상으로는 맞는 말이 아닙니다.

김 부총리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교육이란 말 안에는 이미 '교육이 성립되기 위한 일반적인 조건'으로서 교육의 가치지향성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교육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지향하고 도덕적 판단에 어긋나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이 내세운 참교육이란 모순된 언어는 도리어 한국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들의 투쟁이 한 시대를 꿰뚫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거울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김 부총리께서도 과거 교육학계에 남긴 성과처럼 교육부장관으로서 또 하나의 훌륭한 결과을 남겨 향후의 교육부장관들에게 모범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건강에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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