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미국 여론주도층 내에서 일고 있는 한국의 반미감정 문제는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불거져 나온 것이어서 적절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혹자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2002.6.13)의 무죄 평결(2002.11.22) 이후 촉발된 대규모 '촛불시위'(2002.12.7)를 통해 한국의 반미감정이 외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과연 '반미감정의 외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반미'가 감정(sentiment)의 존재인가, 이념(ideology)의 존재인가, 아니면 그냥 민족적 지각(perception)의 존재인가,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제대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 이유는 미국이 반미감정을 한국의 보편적 대중정서로 보고, 신 정부의 이념적 슬로건(Neo-Nationalism)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1일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지 50주년이 된다. 50년 한미공조체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할 수 없다면 이 또한 국가위기관리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와 반미감정은 다르다**
촛불시위는 반미감정의 대중적 외화인가? 내 대답은 '아니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놓고 '반미감정'이나 '반미시위'를 거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촛불시위는 '어린 나이에 죽은 두 아이에 대한 추모'와 '미군의 무죄평결과 부적절한 후속조치에 대한 항의'였을 뿐이다. 이런 일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느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절대다수 대중은 단순한 추모인파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중에서 대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극소수의 이념적인 반미주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내 반미감정의 실체는 없는 것인가? 지난 2월 14일, 미하원 '북핵 프로그램(North Korea Nuclear Program)' 청문회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내 '반미감정'의 원인에 대해 '세대론'으로 답변했다.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20~30대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은 이념적인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성조기를 불태운다든가, 미국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등의 이념지향의 목적의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극소수의 이념적인 '반미'는 좌파적 사회운동가 혹은 한총련-주사파 계열의 학생운동권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정도는 한국이 아닌 다른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한국 국민들의 대다수는 미국에 대해 여전히 호의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반미감정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1800년대 제너널 셔먼호 사건 이후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미국은 빛과 어둠의 존재역할을 동시에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존재역할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한국민의 계층ㆍ연령에 따라 각기 구분되는 다양한 원인과 동기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반미감정이 문제시된 것에 대해서도 그 다양한 원인과 동기를 분석해야할 것이다. '촛불시위'와 같은 돌발적인 상황, 혹은 세대적인 동기, 사회경제적 발전과정에서의 요구, 한국민족의 특성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여론주도층에게 들려줘야 할 '반미감정'의 네가지 배경**
첫번째, 촛불시위는 주한미군의 군사법정이 여중생 사망사건의 가해자인 미군에 무죄평결을 내리면서 이에 분노한 한 개인에 의해 (인터넷상에서) 우발적으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누적된 불만 -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의 쇼트트랙 금메달 사건,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오염문제 등 - 이 호응하였으며, 발달된 브로드밴드 인프라와 인터넷 미디어, 월드컵 현상, 대선기간 중 선거전술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던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 시위를 조직함에 있어 인터넷의 역할은 지대했다. 징기스칸의 '철기병'과 같은 강력한 무기수단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이런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한미관계가 지속되는 한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는 휴화산 같은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 '반미감정'의 표출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종의 미국의 불공정 게임에 의한 피해의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긍적적인 이미지와 태도 전환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반미감정이 문제시된 데에는 '세대적인 동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권위적인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독특한 인생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386 세대가 정치, 시민사회의 중심에 진출함으로써 기존 한미관계의 수직적/종속적 위치에 대한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대등하고 수평적인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적극 견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80년대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적극적 반미시위를 통해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공통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중심세력 진출이 곧 '반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미관계의 합리적 재조정을 요구함으로써 미래지향적/발전적 한미관계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해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동반자 대우의 요구이다. 과거 미국의 지지와 지원으로 정권을 창출ㆍ유지했던 군부 엘리트, 미국 유학생 출신의 정.관.재계 엘리트의 심정에도 내부적으로 반미감정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후진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을 바라보는 일종의 질시라는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월드컵을 거치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며 선진국 문턱에 접어든 지금 국민의식의 차원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입장의 변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무역/금융 부분에서의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는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초래하였다. 단적인 예로 향후 몇 년 내에 무역거래 부분에 있어서 한국과 중국의 거래규모가 미국과의 거래 규모를 상회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과거의 한국을 보던 시각을 업 그레이드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네번째,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평등주의 요구가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자존의식'이 강한 사회이다. 이러한 자존의식은 국가적 위기시에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IMF 때 전국민이 동참했던 금모으기 운동은 서양의 시각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전 인민이 다 굶어 죽어도 미국에 자존심을 굽히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불거져 나온 반미감정의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민족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살펴본 바에 의하면 소위 '반미감정'은 한국민의 보편적 정서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관계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과거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제부터 반미감정이 촉발되고, 반미주의가 지지를 받는 조건을 더 이상 제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은 국익을 위하여 전통적 한미관계를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우방 관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필자 원성묵은 '공공문제와 기업'에 대한 전략가(Strategist)이자 컬럼 기고가이다. 지금은 동북아 전략컨설팅 기업인 'CJK Strategy, Inc.(www.cjkstrategy.com)'의 상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