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으로 세워진 나라, '반이민법'으로 시끌시끌

잇단 '반이민법 반대' 시위…정치인들 '어느 편에 서나' 고심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이 불법 이민자들을 단속하려는 시도로 시끌시끌하다.

미 하원에서 통과된 반이민법이 내주 상원에서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미국 곳곳에서는 반이민법에 대한 반대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내주 반이민법 상원 심사 앞두고 잇따른 반대 시위**

지난해 12월 미 하원이 불법체류자를 중범죄자로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이민법을 통과시킨데 이어 내주엔 상원이 관련 법안 심사에 들어간다.

이 법안은 불법 체류자들에 대해 5년 이내에 고국으로 되돌아가 임시 근로자 또는 영주 희망자로 재신청을 하도록 하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고용주는 중죄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또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320km에 이르는 담을 건설해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것을 막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불법 이민자수가 지난 2000년 840만 명에서 12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미국 내 실업 문제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민자들의 수를 제한하기 위한 법안을 입법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을 둘러싸고 미국 곳곳에서 저항이 거세다. 이 법안의 상원 심사 일정에 맞춰 미국 주요 도시 곳곳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 최근 몇 주 동안 12개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비롯해 수천 명의 시위대가 연일 반이민법에 반대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진 1,2 : 시위 사진 2개 연달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노동자, 종교 단체, 시민 단체 등을 비롯해 일반 이민자들까지 경찰 추산으로만 50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이는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규모를 뛰어넘는 이 지역 역대 최대 규모였다.

시위대는 미국으로 이민온 지 오래된 '고참' 이민자들에서부터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제 막 미국으로 건너온 '신참' 이민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미국 국기를 흔들며 "그래, 우리는 할 수 있어!(Yes we can!)"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행진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내에서도 24일 2만 여명의 이민자들이 '차별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반이민법 반대 시위'에는 고등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AP〉에 따르면 최소 8개 도시에서 2700여 명의 중고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 대열에 참가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고등학생 500여 명도 24일 거리로 나와 미국 국기와 멕시코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새 이민법은 이민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 멕시코 국기 든 사람>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도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다"**

20년 전 엘살바도르에서 불법 이민 온 알베리카 라조(40)는 매년 7000달러의 세금을 내는 어엿한 미국 시민이다. 꼬박꼬박 세금까지 내면서 2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지만, 이민법이 통과되면 5년 이내에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

4개월 전에 일자리를 찾아 아내와 다섯 아이들을 과테말라에 남겨 두고 미국으로 건너 온 조세 알버토 살바도르(33)는 그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고작 하루 10달러에 불과한 허드렛일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미국 국기와 과테말라 국기를 양손에 쥐고 흔들며 "이 나라는 우리가 고국에서 얻지 못하는 기회들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산타 클라리타에서 온 프란시스코 플로레스(27)는 "우리는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다"며 "그래서 세금도 내고 내 조국에 도움도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고 〈AP〉가 전했다.

살바도르 헤르난데즈(43)는 14년 전 엘살바도르에서 건너와 트럭 운전사, 일용직 노동자, 페인트 칠하기 등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는 "저들은 우리가 범죄자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고 반이민법을 비판했다.

<사진 3 : 어린 아이 안고 있는 남자 사진>

***중간선거 앞두고 '어느 편에 서는 게 이득일까'…부시도 모호한 입장**

다음주 법안 심사를 앞두고 상원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은 지난 22일 "하원이 처리한 새 이민법안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힐러리 의원은 "새 법안은 문자 그대로 선량한 사마리아인은 물론 심지어 예수님조차 범죄인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는 성경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빌 프리스트 의원은 멕시코 국경 경계를 강화는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존 메케인 의원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초청 근로자' 프로그램을 통해 합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어 상원 의원들도 올해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각기 무엇이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저울질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조지 부시 대통령은 25일 미국민들은 이민자들이 경제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불법 체류자들을 사면할 수는 없다고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자 법치국가"라며 "미국은 이민자를 환영하는 것과 법치를 지키는 것,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두 가지 모두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불법 체류자들은 사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초청 근로자' 프로그램의 정당성은 재차 강조하면서도 "이들을 사면하는 것은 시민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제치고 이들을 앞줄에 서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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