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PD는 이라크 전쟁 전이었던 2002년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일곱 차례 이라크에 찾아가 그 기록을 남겨 왔다. 이라크전쟁 전과 후의 이라크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위험 지역에 몸소 들어갔던 김 PD는 지난해 우리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라크에서 '끌려나온' 이후 아직까지 이라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그는 정부가 허락해주지 않아 직접 이라크에 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몇 차례 방문으로 가까워진 이라크인 친구들과의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현지 소식을 접하고 있다. 〈편집자〉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본 이라크 전쟁의 모습은 폭격과 부서진 집과 죽은 사람들, 그리고 울고 있는 미망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피해는 그뿐이 아니다.
이라크 현지에서 이라크인들에게 전쟁으로 가장 피해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한 여성은 "가정 파탄"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 폭격과 전쟁으로 남편이나 아이들을 잃었나 보죠?" 라고 물었더니 그 여성은 인상적인 대답을 했다. 그는 "아니요, 이라크에 일자리가 없어 남편들이 집안에서 빈둥대니 아내들이 힘들지요. 그러다 보면 부부 싸움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가 폭력을 당하는 아내들도 많아지고 남편들이 가출을 하기도 하니까요.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한 것뿐만 아니라 행복했던 우리 가정들을 파괴하고 있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어찌 보면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전쟁의 피해는 여성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눈에 띄게 아름다우면 안 되는 이라크 아가씨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등 우리 역사에서도 경험했듯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후 이라크 여성들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돈이나 빵보다 "안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한다.
전쟁 전 이라크 여성들은 중동에서도 서구화된 여성들로 알려져 있다. 1990년 걸프전 이전의 이라크는 높은 환율과 석유 덕에 잘사는 나라에 속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해외 유학생도 많았으며 유럽 등 해외로 신혼 여행을 다닐 정도로 부유했다.
이라크 여성들의 옛날 사진을 보면 어릴 때일수록 부티가 난다. 그러나 커갈수록 초라한 사진이다. 그래도 이라크 전쟁 전까지는 나름대로 멋 내고 다니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색색 가지 히잡(이슬람식 스카프)에 책을 끼고 다니던 바그다드 여대생들과, 우리의 압구정동 같은 거리인 알-아라사트에서는 멋쟁이 아가씨들이 제법 구경거리였다. 심지어는 모술 같은 북부의 다른 도시에서도 치아교정기를 끼고 다니는 여성들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이라크 아기씨들은 더 이상 멋을 부릴 형편이 못 된다.
이라크 지역에서 거의 유행처럼 벌어지는 납치 때문이다. 전쟁 전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무장 단체나 일부 급진 무자헤딘에 의해 외국인 납치가 많았지만 지금은 높은 실업률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실업자들이 몸값을 노리고 여성들을 많이 납치한다. 몸값도 3만 달러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가족들이 그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시리아나 요르단 등지의 사창가로 단돈 100달러에도 팔려 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라크 여성들은 집 밖 외출은 거의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학교는커녕 친척집에도 못 가고 친구들조차 만날 수가 없다. 납치를 당하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묘책도 등장했다. 간혹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예쁜 옷과 화장, 향수는 금물이다. 납치라는 것이 일단 눈에 띄는 표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가난하고 못생기고 늙어 보이게 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아바야라는 전통 복장을 하고 나간다고 한다. 또 아버지나 오빠 같은 힘센 남자들과 동행하기도 한다.
이라크에서의 정치 현실과 전쟁의 피해는 우리가 뉴스로 수십 번도 더 들은 폭탄테러와 내전만이 아니다. 그녀들의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평범한 욕구도 침해받고 있다.
필자가 바그다드를 취재할 때 가끔 통역도 해주고 여고동창처럼 밤 새워 수다도 떨던 제이납(24)은 전쟁 전 알-만수르라는 부유한 동네에 살았다. 또 그는 발전소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아버지 덕에 이라크의 최고명문인 바그다드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예쁘고 똑똑한 아가씨였다.
가끔 필자와 주고 받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그녀는 푸념한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바드다드 거리를 다녔던 것이 언제였던가 모르겠어요. 어쩌다가 나갈 기회가 있으면 엄마의 검은 아바야로 온몸을 가리고 오빠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걸요. 이라크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라크 여자들이 갑자기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다시 태어나는 걸로 볼 거예요 아프간 여자들처럼 온몸을 가리고 남자 가족들이 데리고 다니니까요. 너무 납치가 심해져서 이러는 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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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여성들의 납치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라크 경찰들의 비공식 통계로 하루 평균 20여 건이라고 한다. 그나마 신고가 되는 경우가 이 정도고 신고조차도 못하거나 돈으로 해결을 본 경우는 더 많다.
***바빠진 이라크 어머니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라크의 학교 선생님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자교사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더라도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바그다드 알-카다미아에 사는 움 아흐마드(35)는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둔 가정주부다. 그녀의 남편은 바그다드 시내 카라데라는 거리에서 전자제품 상점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다른 가정보다는 낫지만 요즘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3살 된 아이들까지 줄줄이 있다 보니 학교가 문제인 것이다. 전쟁 후 3년 동안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교육 수준이 엉망이어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글자와 숫자를 가르치는 정도이고 책을 구하기는 더 힘들다고 했다. 살림하랴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랴 하루가 너무 바빠졌다고 한다.
"일부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가정교사를 둔다는데 넉넉지 않은 대부분 가정의 아이들은 그냥 방치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부방까지 생겨서 엄마들이나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면서 그룹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걱정이다"며 움 아흐마드는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도 바로 납치에 있다. 일정한 곳을 일정한 시간에 왔다 갔다 하는 것 또한 납치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의 교육은 이미 모두가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날 마당에 떨어진 편지**
납치가 공포의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집에까지 쳐들어와서 납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친절하게 편지를 사전에 던지고 가고 그 편지에는 가족들의 이름과 나이까지 명시되어 있단다. 누가 보냈는지 몰라도 이 편지들을 받으면 가족들은 서둘러 그 집을 피신해야 한다. 미처 피하지 못하면 집에까지 쳐들어 와서 여성을 끌고 간다고 했다.
조그만 신문사에 근무하는 사라(30)의 삼촌은 바그다드의 알 도라라는 곳의 제법 큰 집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마당에 떨어져 있던 편지에는 삼촌의 이름뿐 아니라 숙모와 아이들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밤 그 집을 떠나서 지금은 그녀도 모르는 곳에서 은신 중이라는 것이다. 그 후 삼촌의 부탁을 받은 아버지가 삼촌 집을 조심스레 가보니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마 그 사람들이 납치범들의 가족들일 거라며 삼촌 가족을 걱정했다.
또 그녀는 시내 중심가에 사는 친구가 납치된 얘기도 들려 줬다. 놀랍게도 집에서 자다가 총 들고 쳐들어온 납치범들에 의해 언니 두 명과 함께 납치됐다고 한다. 이제는 친절하게(?) 집에까지 와서 납치를 해가는 것이다. 납치된 사라의 친구도 미리 편지를 받고 나서 벌어진 일이라 요즘은 마당에 조그마한 종이쪽지라도 있으면 깜짝 놀란다고 사라는 말했다.
이라크 나라 전체가 납치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치안 대책은 전무하다.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서 왔다던 미군들은 민간인 마을을 폭격하고, 정치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라크 정부는 납치에 대해 전혀 대책이 없다. 오히려 정부관리들도 본인이 납치 당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긴다.
***목숨 걸고 시장 가야 하는 이라크 주부들**
이 와중에 하루에 몇 건씩 터지는 자살 폭탄 테러는 가정 주부들이 시장도 가지 못하게 한다. 폭탄이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터지기에 감자나 계란을 사러 잠깐 시장에 들렀다가 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쇼핑도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납치와 자살 폭탄테러가 그들에게 아이들의 옷도, 저녁 찬거리도 사러 나설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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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아흐마드는 "남편이 주로 장을 본다. 이전에는 시장에 내 마음대로 사러 갔는데 이제는 못 그런다. 어쩌다가 시장에 간다면 너무 무섭다. 감자 사러 목숨 걸고 가는 엄마들이 이라크 엄마들이다. 아이들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알라신만을 믿으며 하루하루 무사하길 기도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날 당시만이 잔혹하다고 한다. 그러나 벌써 3년이 지난 후 이라크인들의 삶은 더 잔혹하다. 그래서 전쟁이 이라크 여성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납치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오늘도 그녀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이제 이라크는 국제 사회의 구호도, 관심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도 그녀들이 마음껏 멋을 내고 거리를 다닐 수 있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쇼핑을 하고 학교에 선생님들이 돌아올 수 있는 날을 같이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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