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쌀비준 반대 60%'가 언론 탓이라구요?"

〈기고〉"쌀비준이 쪽문? 무슨 쪽문이 대문만큼 큰가"

노무현 대통령이 쌀협상 비준안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쌀 협상 비준 반대가 60% 가량으로 압도적으로 높다"며 "비준을 안 했을 때 어떻게 된다는 데 대한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또 "쌀비준은 쪽문"이라며 "쪽문을 열지 않으면 대문을 다 열어야 된다"고 쌀 비준안 통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민들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대통령의 친절(?)에 답글이라도 보내는 약간의 정성이라도 표시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 펜을 들었다.

***"노대통령 발언에 주류 언론들 억울할 것"**

대통령의 이 발언에 정부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정도를 넘어 무조건 쌀비준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쳤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참으로 억울할 것이다. 정부-열린우리당-한나라당이 '살농(殺農) 대연정'을 통해 쌀비준을 밀어붙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지대하게 공헌했던 노고에 대해 칭찬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의 입에서 질책과 투정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쌀비준 관련 언론보도를 모니터링해 결과를 발표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신문보도모니터결과(11월 11일)나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의 분석결과(12월 4일자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더라도 시민단체는 한결같이 "언론이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농민들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했다"고 평가했다. 오죽하면 지난 12월 2일 민언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주최한 '농업.농민 관련 언론보도 문제 많다' 토론회에서 "언론에 농민은 없다. 농민은 국민이 아니다"는 결론이 내려졌을까.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주류 언론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농민들은 대통령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대통령 스스로 '나는 농민들을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농민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눈도 감고 귀도 막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친절을 베풀었으니 말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본인 스스로 농민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쌀비준이 쪽문? 쪽문이 대문만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소수를 제외한다면 절대 다수의 우리 농민들이나 국민들은 쌀시장의 대문을 열자고 주장한 적도 없거니와 대문이 열리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문제는 쪽문이 대문만큼 크다는 것이다. 농민이나 국민 심지어 국회조차도 모르게 정부가 밀실에서 흥정한 결과가 대문인지 쪽문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문을 크게 열어 놓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7.96%의 의무수입물량은 정부 스스로 동등성분석을 통해 관세화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얘기했고, 여기에 미국의 협박에 못이겨 WTO규정 위반까지 감수하면서 국가별 쿼터를 배정해 미국쌀의 시장점유율을 보장해 주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중국, 아르헨티나, 인도, 이집트에 대해 사과, 배, 쇠고기, 닭고기, 식량원조용 쌀 등 양보하지도 않아도 될 것까지 다 내줬다.

정부는 그러면서 '쪽문'을 만들어 왔으니까 무조건 승인해 달라고 국회에 강요했고, 농민과 국민들에게는 '쪽문이냐 대문이냐'는 식으로 협박조로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쪽문이 대문보다 큰지 작은지 여유를 갖고 꼼꼼히 따져보자며, 지난 6월부터 근본적인 농업회생대책을 먼저 마련할 것을 주장하면서 10대 농정개혁요구를 제시했다. 또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국회-농민의 3자 대표 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지난 9월부터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강요만 하더니 급기야 지난 11월 23일 '살농 대연정'을 통해 쌀비준을 강행처리해 버렸다.

***"반대 여론은 농민들의 피맺힌 절규에 대한 반응"**

정말이지 대통령은 왜 국민들의 60%가 쌀비준에 반대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언론이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쌀비준을 다그치는 언론의 '과잉충성'이 차고 넘쳤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오히려 언론은 농민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농민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 쌀비준 강행처리에만 몰두하는 정부의 행태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故 정용품 농민, 故 오추옥 농민, 故 하신호 농민 등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던져가며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는 것에 국민들이 반응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정부 관료들의 말만 들을 게 아니라 농민들의 목소리, 또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들어 정부 입장을 한번쯤은 재검토해 보는 게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언론 탓'만 했다.

많은 농민들이 목숨을 던지고, 수만 명의 농민들이 논과 밭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상경해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도 대통령은 농민 쪽을 향해서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는다는 게 이번 발언으로 확인된 셈이다.

***"APEC 정상회담의 '15억 만찬'에 암행어사 이몽룡 시 떠올라"**

대통령은 휘황찬란한 APEC 정상회담장에서 15억 짜리 술과 음식을 즐기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돼 있을 때, 故 전용철 농민은 경찰의 살인적으로 폭력진압으로 쓰러졌다. 고인이 사망한 지 벌써 14일째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정부의 사과 한 마디 없다. 이쯤 되면 이몽룡의 유명한 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농민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제 농민들도 대통령과 정부를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농민들로 하여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완전히 접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농민들을 각성시켜 준 친절한 대통령이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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