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들은 28일 중국 베이징 시위엔(西苑)호텔에서 열린 제8차 회의를 통해 "두음법칙 절충안은 안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남북 언어규범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양보나 협상안이 아니라 합당한 원칙을 찾아보자는 견해다.
절충안이 아니라면 남북 편찬위원회는 '역사-력사', '이유-리유', '여자-녀자', '유대-뉴대'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 사전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60년 간 다른 규범을 따라 온 남북한의 언어생활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남한은 분단 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에 따라 두음법칙을 철저히 적용해 왔다.
반면 북한은 광복 후 '조선어신철자법'(1946)과 '조선어철자법'(1954)을 통해 두음법칙을 쓰지 않고 한자 원음대로 표기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양측이 두음법칙에 달리 접근하는 것은 서울과 평양 지역의 실제 발음 및 언어생활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두음법칙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발음과 표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편찬위원들이 10만 개의 새 어휘를 공동으로 싣는 작업과 함께 두음법칙 적용 문제를 가장 어려운 대상으로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은 일단 "민감한 문제이지만 절충안을 낼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고 앞으로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남측의 단일 어문규범위원회장인 권재일 서울대 교수는 이날 회의에서 "(남북 편찬위원회는) 두음법칙과 관련한 절충안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했다"면서도 "한 방향으로 결정이 나면 어느 한 쪽에 낯선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현실적으로 큰 문제가 있지만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측 편찬위원장인 문영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 역시 "두음법칙 문제가 사회에 주는 부담과 충격이 크다"면서 "겨레말큰사전이 나왔다고 할 때 먼저 '그것(두음법칙)을 어떻게 했대'라고 물어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측 편찬위원회는 또 준비한 자료에서 "두음법칙과 관련해서 그 어떤 절충안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며 "하나의 같은 현상을 한 가지로 처리하지 않고 절충하게 되면 겨레 앞에 큰 죄를 짓게 되고 북남 지식인들과 겨레에 큰 실망을 주게 된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현재 두음법칙 '적용-불가' 입장을 확인한 수준이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남측 편찬위원장인 홍윤표 연세대 교수는 "양측이 허심탄회하게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꾸준히 협의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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