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정보의 주인은 입양 기관이 아니다

[해외 입양인, 말 걸기] <44> 입양특례법 개정 그 후 <3>

나는 지난 글에서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로 가지고 있는 중앙입양원이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에 반드시 필요한 기록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사설 입양 기관에 그 자료를 구걸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현재 수준에서 중앙입양원은 가족 찾기에 있어서 전문성이 현저하게 결핍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앙입양원은 아플 것이다. 그러나 공론이 형성되면 오히려 중앙입양원이 강화되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도 중앙입양원의 약한 고리들과 변명들에 대해서 입양인의 입장에서 몇 가지를 더 지적하고자 한다.

무늬만 준국가기관…거듭되는 행정 실패와 인권 감수성 결핍

내 해외 입양인 친구 앨리사는 홀트와 중앙입양원의 전신인 중앙입양정보원에 가족 찾기를 신청했다. 아무런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그녀는,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새롭게 개편된 중앙입양원에 가서 가족 찾기를 다시 시도했다. 그러자 중앙입양원은 과거 중앙입양정보원 시절 앨리사의 친생 가족을 찾았으나 앨리사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행정상의 실수를 알려주었다. 행정상의 실수! 찾을 길이 열린 것은 다행히 아니라고 할 수 없으나, 혹여나 하고 어렵게 어렵게 한국 체류를 연장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무심한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의 내면의 혼란과 거듭되는 좌절, 그리고 중장기적 삶의 계획이 흐트러지는 일을 대가로 치르고 나서야 찾아온 좋은 소식이었다. 지금 그녀는 중앙입양원이 보낸 '전보'에 친모가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은 사설 입양 기관에서는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입양인은 친생 부모를 찾기 위해 종종 입양 기관을 방문해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 혹은 이메일 주소를 남기고, 친생 부모가 찾아오면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정작 친생 가족이 입양 기관을 방문했을 때, 가족은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식의 답변을 받곤 한다. 이런 일들은 보통 '재회'가 성사되고 나서야 밝혀진다. 이 반대의 일도 종종 일어난다. 아이를 입양으로 잃은 친생 가족들 중에는 이사도 안 가고 전화번호도 안 바꾸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혹여 주소가 바뀌거나 전화번호가 바뀌면, 때마다 입양 기관에 찾아가 변경 사실을 남기기도 한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친자식을 제 손으로 키우지 못한 부모로서 깊은 모멸을 이기고 입양 기관 앞을 수도 없이 왔다가 돌아서기를 반복한 끝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이별한 아이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친엄마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어떤 입양인들은 입양 기관들이 번번이 다른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어떤 입양인들은 20년 이상 친부모를 찾으며 매번 입양 기관들로부터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입양 기관 직원은 계속 바뀌고, 입양인들은 그때마다 그 입양 기관 직원이 알려주는 새 정보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때로는 기관 직원이 편의상 거짓 정보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에 오면 '문서'를 볼 수 있을 것(입양 파일 리뷰)이라는 이야기를 입양 기관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왜 해외 입양인들이 그 문서를 보기 위해 150만 원이 훌쩍 넘는 항공료와 여행 경비를 지불하고 직장 휴가를 무리하게 사용해야 하는가? 입양인들은 그만한 돈이 없을 수도 있다. 오직 부유한 해외 입양인들만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왜 그 문서를 복사해서 우편으로 보내줄 수는 없는 건가?

또 다른 문제는 해외 입양인들은 항상 입양 기관들로부터 부분적 정보만을 듣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한국을 처음 여행했을 때, 충분하고 남김없이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요구가 거듭될 때마다 찔끔찔끔 정보를 주는 경우들이 있다. 입양인들이 남김없이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정보가 제공된다면, 친부모를 찾는 데 있어서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예 찾지 않기로 결단을 하더라도 뒤끝이 남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중앙입양원은 입양인들이 이런 상황에 내몰린다는 사실을 책임 있는 당국으로서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입양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나설 아무런 권위도, 의식도 아직은 찾아보기 어려운, 무늬만 준국가기관일 뿐이다.

중앙입양원은 입양인의 가족 찾기 요청에 15일 이내 응답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15일 이내에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의무'는 아니다. 이것은 중앙입양정보원 시절부터 내려오는 정책이다. 그들은 가족 찾기 기간을 연장할 뿐이다. 내 해외 입양인 친구 앨리사의 경우는 중앙입양원의 전신인 중앙입양정보원에 가족 찾기를 신청했으나 1년이 지난 후에야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가족 찾기 담당 직원이 바뀌어 두 명의 손을 거쳐야 했다.

입양 정보의 주인은 입양 기관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입양 기관들이 입양인들의 정보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중앙입양원에 정보를 주거나 이관할 수 없다고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 왜 입양 기관들은 입양 관련 기록을 복사기로 복사해서 주면 안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입양 기관들의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주민등록에 관한 정보나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정보는 민간 기관이 관리하지 않는다. 입양인들에게 입양 기록은 그 자체로 가족 관계에 관한 사안이 담긴 기록물이자 출생의 진실을 알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시민권적 정보가 담긴 기록물이다.

입양 기관들은 이 기록물의 생산 주체이기 때문에 이 기록물을 중앙입양원에 넘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정보의 진정한 주인은 입양 기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자 시민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입양인들과 그 친생 가족들이다. 물론 거기에는 입양 가족에 관한 기록도 담겨 있다.

또 입양 기관들은 이 기록물들이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담긴 상담 기록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기록물을 준정부기관에 넘길 수 없다고 말한다. 사생활 정보와 상담 기록의 유지와 보안을 위해서는 더 권위 있는 국가 기관에 이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항구적이지 않은가? 사설 기관은 언제나 존폐가 가능한 기관이다. 누가 더 잘 유지·보관할 수 있는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입양 기관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혹여 입양 상담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적 관행들이 기록 이관과 더불어 드러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 불법적 관행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앙입양원은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이 기록물의 이관을 관계 당국과 협의해서 착착 진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 다른 한 가지. 그럼에도 입양 기관들이 가족 찾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폐업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양은 입양인의 복리에 관한 것이어야지 입양으로 돈을 버는 입양 산업에 관한 것이어선 안 된다. 다른 이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입양인들이 끊임없이 불공정하고 나쁘게 대우받으며 착취당해서야 되겠는가.

국제 협약을 비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마술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재작년 입양특례법이 비준되었을 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중앙입양원은 돈이 없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해외 입양인들은 입양특례법 개정 운동을 이끌면서 중압입양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나는 중앙입양원에 묻고 싶다. 시민·사회나 해외 입양인들의 역할에 중앙입양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한국 정부에 재정적 지원을 하라고 구걸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인가.

중앙입양원은 '우리는 신설 조직이다'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앙입양원은 이전에는 중앙입양정보원이었고, 그전에는 입양정보센터였다. 문패를 바꿨다고 새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원 대부분이 이전 조직부터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 기관은 사실상 10년 이상 된 조직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입양 사후 서비스를 어떻게 하는지 모를 수가 있을까? 중앙입양원은 입양 기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총체적인 문제는, 입양 기관들은 항상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해외 입양인들이 나서서 입양특례법에 앞장서야 했고, 입양 기관들은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공론화해야 했으며, 입양 기관이 아닌 입양인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유쾌하지 않은 주장을 거듭해야 했다. 왜 입양 기관들이 중앙입양원의 상관처럼 행동하는가. 누가 누구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다.

친생모의 비밀 보장은 아동 유기 범죄를 돕는 일

중앙입양원과 입양 기관들은 아이를 입양을 의뢰한 친생 부모가 누구에게도 자신들에 관한 정보를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관련 정보가 공개되면 친부모들이 어떻게 느끼겠냐고 해외 입양인들에게 반문한다. 그러나 중앙입양원은 입양인 원가족 모임의 조직인 '민들레회'에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사실, 민들레회는 중앙입양원을 찾아가서 가족 찾기를 위한 편지 쓰기 캠페인을 벌이자며, 이에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중앙입양원은 다음 회의에서 의논하자고 한 말을 뒤로하고 나서지 않았고, 결국 캠페인은 무산되었다.

또한 친부모가 언제 가족 찾기에 전혀 응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적이 있었나? 그리고 설혹 있었다면 그것이 법적 동의 사항인가? 그렇지 않다. 해외입양인들이 찾은 부모들은 아동을 양도할 당시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남긴 것은 장래에 아이와 재회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만약 부모들이 재회를 원하지 않았다면, 그런 정보를 안 남겨 놓았을 것이다.

중앙입양원은 미혼모의 사생활은 인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외 입양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 '사생활'은 익명으로 아동을 유기하는 성인의 권리를 좋게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만 한다면 익명으로 유기된 아동들을 더 이상 입양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아동 유기는 어떤 국제협약도 결코 '권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아동 유기는 극단적인 가정 폭력의 하나이고 한국 민법에서 규정한 엄연한 범죄 행위다.

따라서 아동 유기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미혼모 지원, 자동출생등록제도의 도입을 하루빨리 시행하는 것이다. 친모와 아동을 분리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누구도 이런 범죄 행위를 지원하거나, '권리'를 운운하며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중앙입양원이나 입양 기관들의 해외 입양인 친부모 찾기 관련 변명으로 이용되어선 결코 안 된다.

(번역 함석헌 연구가 김성수 박사/ 4회 연재 중 3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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