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끝, 이젠 빙하기"? '찌라시'에 속지 말자!

[프레시안 books] 오코우치 나오히코의 <얼음의 나이>

얼마 전 빙하기 논쟁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북극의 얼음이 지난해보다 60퍼센트 더 늘어났다는 영국의 타블로이드판 외신 기사가 그 시작이었다. 곧바로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역행하는 듯 보이는 이 현상에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고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미 항공우주국에서 촬영한 북극의 얼음 사진까지 곁들여져 기사의 신뢰도는 높아졌고 다시 빙하기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반응까지 나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관심이 많았거나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소동이 자극적인 제목 뽑기에만 열중하는 일부 언론이 벌인 쇼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여름에는 이례적으로 한반도에 4개의 태풍이 상륙하는 등 모두 5개의 태풍이 영향을 줬다. 지구온난화로 바다의 수온이 높아지면 태풍의 내습이 잦아진다는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올여름은 태풍 발생이 잠잠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해 태풍이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으로 비껴갔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올여름 태풍 발생 기록은 0개로 언뜻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 년 규모의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단기 변동과 수십 년에서 수백 년, 길게는 수십만 년 규모로 일어나는 장기 변동에 대해 알아야 한다. 지난해 사상 최대로 녹았던 북극의 얼음이 올해는 그만큼 녹지 않고 남아있다는 현상에서 미니 빙하기 논쟁이 불거져 나온 것은 바로 물결이 출렁이듯 변화하는 단기간의 변동을 장기 변동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벌어진 에피소드다.

기후 변화는 수많은 주기의 단기 변동이 모여 장기적인 추세를 이룰 때 나타난다. 북극의 얼음이 매년 늘었다 줄었다하지만 10년 평균이나 20년, 30년 평균을 봤을 때 감소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우리는 북극에서 얼음의 감소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전달은 생략된 채 빙하기, 간빙기 등의 용어만 난무하기 때문에 대중은 쉽게 현혹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장면처럼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쳐 얼음으로 덮인 세상이 될 것만 같은 불안을 자극한다.

자연에서 찾는 기후 변화의 증거들

▲ <얼음의 나이>(오코우치 나오히코 지음, 윤혜원 옮김, 홍성민 감수, 계단 펴냄). ⓒ계단
1년에 적어도 두세 차례는 터져 나오는 기후 변화 스캔들에 현혹되지 않고 비판적으로 해독하고 싶다면 나만의 지식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증거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정리해줄 친절한 입문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너무 어렵지 않고 적당히 학술적이며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얼음의 나이>(오코우치 나오히코 지음, 윤혜원 옮김, 홍성민 감수, 계단 펴냄)가 출간됐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밀려온 것은 바로 이런 시기적 적절함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이 서점에 진열돼 독자를 만나는 시기는 IPCC(정부간 기후 변화 협의체)의 5차 기후 변화 보고서가 발표되는 시점과 때를 같이했다.

책의 제목은 <얼음의 나이>로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제목만 봐도 북극과 남극의 대륙 빙하를 시추하는 장면과 과거 빙하기와 간빙기의 반복적인 주기를 나타내는 그래프들이 겹쳐진다. 책의 저자는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에서 해저퇴적물로 고기후를 복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첫 장을 바다에서 시작한다. 해저 밑바닥부터 켜켜이 쌓여있는 진흙을 시추해 분석하면 1억 년이 넘는 과거의 기후를 해독할 수 있다. 진흙에 섞여있는 플랑크톤 사체나 조개껍데기 같은 다양한 물질을 분석하면 수온이나 강수량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동위원소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동위원소 분석으로 과거 유물의 연대기를 추측하거나 하는 작업이 일상이 되었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동위원소 분석에 필요한 개념식이나 장비 등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더구나 기후 변화 연구에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발상의 전환도 어려웠다.

<얼음의 나이>는 우선 기후 변화 연구에 동위원소 분석법이 적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지구의 고기후를 복원하는 데 눈부신 역할을 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온난화에 대한 논쟁만을 다룬 책에서라면 결코 접해볼 수 없는 과학적인 지식을 먼저 풀어 가겠다는 저자의 의도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지구 역사 속에 진행된 기후 변화가 완만한 사인 곡선이 아니라 톱니 모양의 패턴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빙하기와 간빙기의 구체적인 시점까지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이후에는 기후 변화를 해독할 수 있는 암호를 그린란드와 남극의 대륙 빙하에서 찾게 되는데, 남극 보스토크 빙하는 과거 16만 년 동안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복원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대륙에 눈이 쌓여 얼음 결정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공기는 기포로 갇히게 된다. 따라서 해저 진흙과 마찬가지로 대륙의 빙하를 시추해 공기 방울을 분석하면 과거의 기후를 연대별로 추측할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동위원소 비를 이용한 분석법이 활용된다.

그린란드 대륙에서 처음 시작된 빙하 시추 작업은 미국의 군사적인 목적으로 수행됐다.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주둔하면서 얼음의 지하 구조를 파악하고 무기를 운반하거나 저장하기 위해 빙하를 깊숙이 뚫어나갔다. 그런데 혼자서 얼음 시료를 구하기 어려워 연구를 접을 뻔했던 한 기후학자가 이 소식을 듣고 빙하 샘플을 얻으러 달려왔다. '대기의 화석'이라고 부르는 얼음 속 공기는 이렇게 처음 분석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뿐만 아니라 히말라야나 알래스카 등지에서도 빙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더 오래된 기후의 역사를 끄집어내기 위해 더 깊은 곳에서 빙하를 시추하는 경쟁도 뜨겁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의 남극 빙하 시추 작업은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한 돔 C에서 유럽 11개국이 연합해 진행하는 '에피카 프로젝트'다. 이미 3270미터 깊이의 빙하를 시추해 80만 년 전까지의 기후 기록을 확보했다. 일본 역시 1995년에 남극의 대륙 기지에서 깊이 3035미터까지 빙하를 뚫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남극 반도의 킹 조지 섬에 있는 세종기지에 이어 장보고 기지를 2014년 남극 대륙에 준공할 계획이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시추기를 활용해 100미터 깊이 이상의 대륙 빙하를 뚫어 나갈 거라고 하니 독자적인 기후 변화 연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 2013년 8월 28일, 북극해 동시베리아 해역에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연구원들이 멀티코어 장비로 시추한 해저퇴적물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가 바뀌는 데 수십 년이면 충분하다?

자연에서 과거 기후 변화의 다양한 증거들을 확보했다면 이제 남는 것은 한 가지 질문이다. 앞으로 계속 더워질 것인가, 아니면 추워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후 방정식이 등장하게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대기 중의 온실가스 증가 추세가 뚜렷하기 때문에 미래의 기후를 지금보다 더워지는 방향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서서히 진행될지, 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책에서는 지금까지의 기후 변화가 대체적으로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왔지만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단기 변화도 존재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7세기 중세의 소빙하기를 떠올려보면 된다. 영국의 얼어붙은 템스 강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탔고 마을 근처까지 거대한 빙하가 밀려왔다. 당시 급격한 기후 변화의 원인은 화산 폭발에 의한 대기 중 먼지 증가로 태양 복사 에너지가 감소했거나 태양 표면의 흑점 감소 등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상적인 주기에 의한 기후 변화보다는 단기적으로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속성을 지닌다.

소빙하기에 접어들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고 전염병이 유행하여 인류는 큰 변화와 적응에 직면하게 됐다. 방향은 정 반대지만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 어떤 모습일까. 해수면이 상승하면 뉴욕이나 상하이 등 해안가 대부분이 물에 잠기며 대 이주가 시작될 것이다. 폭우와 가뭄, 폭염과 혹한 같은 상반된 기상이변이 지구촌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전염병과 식수 부족에 시달리며 생존을 위해 엄청난 적응 방법을 마련해야할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기후 변화의 주기대로라면 지금 인류는 간빙기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 같은 시기는 앞으로 1만 년 정도 더 지속될 것이고 다음 빙하기에 대한 걱정은 아직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인간 활동이 기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에만 성립하는 얘기다.

최근 발표된 IPCC 5차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현재의 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유발됐다는 과학적 근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지난 133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85도, 해수면은 1900년 이후 19센티미터 높아졌다. 이는 지구 자전축이나 공전 궤도의 변화, 태양과 화산 활동 등의 자연적 요인이 아닌 인간에 의한 외부 요인이 초래한 결과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온난화를 불러오는 온실가스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1988년 IPCC가 설립됐다. 당시는 기후가 수십 년만에도 변화할 수 있다는 국제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의미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IPCC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5차례의 기후 변화 보고서를 내며 지금처럼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특히 21세기 말 지구의 평균 기온은 과거와 비교해 최대 4.8도 상승하고 해수면은 최대 82센티미터 높아질 거라는 예측을 최근 발표했다.

기후 방정식(f(x))의 변수는 인류

인류는 얼음 속에 묻혀있던 기후 변화의 화석들을 캐내어 과거를 소상히 알게 됐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보건대 앞으로 닥쳐올 기후 변화를 예상해 그 속도를 가능한 늦추고 대비하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IPCC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는 늘 전제 조건이 따라 붙는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적극 감축하는 최선의 경우에서 시작해 현재 추세대로 배출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하는데, 시나리오에 따라 100년 뒤의 기온 변화는 최대 2.7도, 그리고 해수면 상승폭은 23센티미터라는 극적인 차이를 불러온다. 미래를 속단할 수 없는 현재의 기후 방정식, f(x)에서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소를 타듯 출렁거리는 단기 변동의 흐름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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