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엄마들을 아동학대범으로 만들었나?

[특별 기고] 어린이날에 물음표를 던진다

어느 연말 모 학교 교무실에서 여교사 8명이 '남녀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오해'에 대해 길고 깊은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밤에 학원이나 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기 힘들어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이어졌다. 추운 겨울밤 버스 두어 정거장 거리를 걷는 것이 안쓰럽다. 엄마 입장에서는 '픽업'하거나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고 싶은데 애비라는 이들이 꼭 반대한다. 남자들은 어찌 이리 매정하게 생겨먹은 것인가? 여교사들은 모성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공분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 남교사 한 명이 있었고 그들은 그에게 해명이나 비슷한 걸 청하였다. 자녀가 아직 어린 그는 나름 솔직하고도 외교적으로 답했다.

다 큰 친구들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춥고 바람 부는 겨울밤에 캄캄한 길거리를 헤매는 작은 초등학생들과 그 애들이 매고 있는 그 크고 무거운 책가방은 분명 문제가 있다. 구미(歐美)기준으로 분명한 아동학대다. 그러자 네 명이 콧방귀나 감탄사로 노골적인 반감을 표했다. 자애롭고 모성 넘치는 엄마에서 졸지에 과거의 아동학대범이 되버린 셈이다. 험악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 혹은 아동학대범 혐의를 벗으려, 나머지 여교사들은 한국인 특유의 한국적 논리를 구사했다. 다른 나라는 그 나라의 사정이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사정이 있다. 그럼 남들 다하는 데 어쩔 것인가… 몇 시간 화기애애했던 대화가 그렇게 냉랭하게 끝났다.

그 남교사는 한국의 평균적인 어머니들을 아동학대범으로 비하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한국 여성들이 아동학대범 내지는 잠재적 아동학대범일 리도 없다. 이 일화는 보통의 여성이 가지는 모성이 곧장 아동학대라는 결과를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어떤 지옥의 사정을 드러낸다. 그 지옥에서는 아이들을 학대할 때 반드시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혹시나 엄마들이 문제라고 쉽게 단정 짓는 남성들이 없기를 바란다. 이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엄마라는 존재가 되었다면 학원과 학습지 '돌림빵'이라는 풍습 말고 자녀를 위해 다른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핀란드나 독일같이 한국과 전혀 분위기가 다른 나라에 가서도 선행학습이라는 한국적 풍속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이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사람이 오히려 변태에 가까울 것이다.

과연 그러면, 중간고사 잘 보면 어린이날 에버랜드가고 보통이면 서울랜드 가고 시험 못 보면 동네 공원 갈 거라고 천연덕스레 말하는 우리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설마. 대체 어린이날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명절 며칠 빼고는 공휴일과 주말에는 체험학습, 평일에는 교과학습 등등 '학습할 자유'만 누릴 뿐 다른 자유에 대해 상상할 시간조차 못 내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우린 어린이날 하루라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어른들이라고 자부하기 위해서이다. 상업화된 어린이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대로 내수를 진작시키는 훌륭한 성과를 이루지 않는가? 선물을 사주거나 놀러 다닐 자금이 없는 빈곤계층 아이들은 하루 종일 어린이날 특별 방송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날은 원래 이렇게 아름답고 조화로운 날이었을까?

▲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날에만 어린이에게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사진은 본 칼럼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어린이날이 선포되고 최초의 행사가 있었던 곳은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이었으며, 날짜는 5월 1일 즉, 메이데이였다. 어린이날의 시초가 이러했으니 소파 방정환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저 마음이 따스한 아저씨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일제 시대에 그는 불순분자라는 말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존재였다. 1937년부터 어린이날이 당국에 본격적인 탄압을 당하면서 몇 년간 폐지되었던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 종교에 노동절, 좌파 우파 진보 보수가 어울렁더울렁 한 1920년대 어린이날의 사연이 90년이 지난 지금도 변주되고 있다. 그 애비 애미가 좌파건 우파건, 진보건 보수건 무관하게 아이들은 공부할 권리밖에 없는 유례없이 멋진 신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신세계의 미성년들이 보통으로 겪는 학업 노역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아 명백한 아동학대임을 말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코리안스 아 크레이지'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이들에게 초등학생 때 경쟁을 많이 하고 시험을 많이 봐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한국적 진리를 말해보았자 입만 아프다. 한국 아이들도 어린이날 하루는 큰소리도 치곤 한다는 걸로는 약하다. 그들에게 자랑할 만한 걸 만들어 보자. 예를 들어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는 시민단체를 만드는 거다.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모두 가지는 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어떻게 어른들이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린이 놀이 헌장>같은 걸 영국처럼 만드는 거다. 그리고 11월 20일 아동인권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거다. 어린이달까지는 곤란해도 싱가포르와 그리스처럼 어린이 주간을 정하면 어린이날 대목이 7일이 되니 자유시장과 자본 권력을 위한 쾌거라고 볼 수 있다. 선거 연령을 대폭 내리고 어린이들과 관련된 정책은 어린이 의회에서 결정하게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린이(청소년) 의회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정책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장관급까지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 한국은 세계 최초로 어린이를 국정의 주체로 인정한 나라가 된다.

이것저것 곤란하면 매달 하루를 '어린이 자유의 날'이나 '놀이의 날'로 정해서 학교를 가건 말건 자유로이 놀도록 하는 거다. 한 달에 하루는 좀 쩨쩨하니까 계절마다 어린이 주간을 만들어 학원이라도 강제적으로 쉬게끔 하자. 이러면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멀쩡해 보일까? 생각만 해도 자랑스러울 대한민국이다.

▲ 지난해 경기도 수원시에서 개최된 어린이날 행사에서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은 본 칼럼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이 글은 '아이들의 놀 자유와 놀고 싶은 마음'을 현실화하기 위한 1인 조직 '놀이네트(www.playkorea.net)'의 조원식 대표가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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