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자본주의, 어디로 가야 하나?

[인터뷰] <왜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는가>의 저자 김운회 교수

지난해 7월부터 24회에 걸쳐 <프레시안>에 연재됐던 김운회 동양대 교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가 최근 책 <왜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는가>(알렙출판사 펴냄)으로 출간됐다. 저자인 김운회 교수는 본래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프레시안> 초창기부터 '삼국지 바로 읽기', '대쥬신을 찾아서',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 등 주로 고대사 관련 연재를 해왔다. 그랬던 그가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세계 경제 위기 속에 극심한 좌우 대립을 극복하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로 이 책을 쓰게 됐다는 김 교수를 만나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프레시안 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고대사 전문가로 알려졌던 그가 경제 패러다임을 성찰한 이유는?

프레시안: 그동안 '삼국지 바로 읽기' '대쥬신을 찾아서' 등을 연재하며 <프레시안> 독자들에게는 고대사 전문가로 알려졌던 김 교수가 이번에 <왜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는가>라는 제목의 경제학 책을 내면서 본래 전공(경제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김운회: 지난 15년 동안 고대사 연구를 해왔지만, 원래 저는 이데올로기(ideology)나 패러다임(paradigm) 전문가입니다. 고대사 연구는 동북공정 논쟁이 시작될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했죠. 몽골, 알타이 문제 등이 일부 미완성으로 남아있습니다만, 어느 정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봅니다. 물론 제 고대사 연구는 한국 고대사의 패러다임을 많이 변화시켰다고 봅니다. 각종 미디어도 이를 반영하고 있고, 대중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죠. 제가 처음 그런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때보다 '미친 소리'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자본주의나 미래의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는 제 삶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남은 인생의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미뤄두고 있었지요. 준비도 충분치 않았고, 핑계 같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또다시 위기에 접어들었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에서는 극심한 좌우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이에요. 이제 더 이상 패러다임 연구를 미룰 수 없어 다른 일을 제쳐놓고 일단 서둘러 발표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현 상황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김운회: 한국은 특이한 나라입니다. 컬트 왕국을 머리에 이고서도 극심한 좌우 대립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서로가 큰 나무 그늘에 누워 즐기면서 입씨름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큰 나무가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 위에서 서로 입씨름을 하는 것이죠.

우파는 기회주의적이고 공동체의 생존을 외면합니다. 좌파는 국제 경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은 없는 상태로 상식 이하의 논리를 가지고 대중을 협박하고 호도합니다. 제가 보기엔, 좌파가 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쩌다 진보라는 것이 부정적인 논리가 되었습니까? 컬트 왕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진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다 보니 이제 아이들도 '진보'를 나쁜 말인 양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의 과제는 '진보'나 '발전'이라는 말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에 대해 제대로 된 성찰을 해야 하죠. 바로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라고 하겠지요.

▲ 김운회 동양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자본주의 4.0은 말장난! 지식 독점의 결과다

프레시안: 이번 저서와 관련해 가장 궁금했던 것은, 크게 두세 가지입니다. 책을 통해서, 김 교수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김운회: 네. 그런 의미를 좀 정확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제목을 '섹시'하게 뽑았는데, 원래는 "위기의 자본주의, 어디로 가야 하나?"가 정확한 주제입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쨌든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거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본주의 자체는 지켜야 할 뚜렷한 가치 같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으니까 아무 데나 적응하잖아요? 문제는, 자본주의가 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결국 중심부 자본주의가 전체 패러다임을 조종할 거란 점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중심부 자본주의 밖의 나라들은 반드시 피해를 보게 돼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자본주의화라는 것은 세계화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긴 한데, 세계화가 완성된 시기라고 하면, 비교적 최근이지요. 2000년대 들어서 완성되었는데요. 자본주의 초기와 비교해 보면, 잘 사는 나라와 최빈국 사이의 빈부격차가 최대 80배까지 벌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 현상이 보편화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비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에겐 반드시 타격이 옵니다. 이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어쨌든 중심부 국가는 반드시 적응을 해요.

프레시안: 보다 더 '공평한' 자본주의를 만들어 가자는 설명인가요?

김운회: 공평한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자기들(자본주의 중심부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나, 중심부 자본주의의 성장을 위해 주변 다른 국가들에 자꾸 봉사와 희생을 강요하지는 말자는 거예요. 그들은 그게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이 대목에서 해럴드 이니스(Harold Adams Innis, 1894∼1952)의 이론이 중요합니다. 이니스는 어떤 사회가 다른 단계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키(key)는, 커뮤니케이션 양식 변화에 있다고 주장했죠.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같은 생산이나 소유관계의 변화라기보다는요. 서유럽 문명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 한 사회는 특정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요. 어떤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것은 주로 미디어에 의해서라는 거예요.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고 '자본주의 4.0'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주장들 자체가 자본주의 역사를 충분히 검토해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고, 미디어가 조장한다는 것이죠. 이 패러다임이 현대의 이슈를 해결하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거기에 수많은 학자들이 동원되고 이것을 옹호하는 논리들이 개발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후진국은 이런 데에 대해서 개념도 없는데다가, '선진화'니까, '미국에서 발달한 학문'이니까, 그러면서 그것이 보다 발전된 학문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작용이 계속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과정이란, 미디어들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부단히 주체적으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또 이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억압하고, 이론적으로 조종하기도 하죠. 아예 새 패러다임이 나오지도 않게끔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볼 때에, 이런 패러다임의 일방적 확산을 중지해야 한다는 거죠.

프레시안: '자본주의 4.0'을 말장난이나 허구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런 주장들이 다 의미가 없다는 얘기인가요?

김운회: 이니스는 한 문명의 흥망은 미디어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 매체를 통해 재편된 지식의 독점(monopoly of knowledge)에 따른 결과라고 했습니다. 난해한 얘기지만 무서운 얘기기도 합니다.

대중들이나 각종 정보 매체들은 현재에만 집착하죠. 이것을 언론들이 부채질합니다. 그래야만 언론이 먹고 삽니다. 현대의 언론이라는 것은, 철저히 기득권 유지에 봉사한 대가를 가지죠. 아니면 가장 현실적인 이슈만 골라서 대중에게 팔아야 하는 환경입니다. 결국, 정보 전달의 시간성, 역사성을 가지면서 진정으로 인간의 미래를 고민하는 언론들이 드뭅니다. 설혹 그렇다 한들 그것을 봐줄 독자도 극히 일부입니다. 그 언론에 경제적 지원을 해줄 만한 기업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가 합리적으로 발전해 갈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을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경제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려고 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런데도 현실 정치가들은 일단 권력을 잡아야 하니 당장에 효과가 있는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현대 사회는 각종 포퓰리스트(Populist)들의 세상이 되고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되는 것입니다. 이니스가 말하는 식으로 한다면, 공간적(횡적) 커뮤니케이션이 과도하게 발달해 있다는 말입니다.

이니스는 '편향(bias)'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미디어가 가진 매체적인 특성입니다. 그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 시점에서 많은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게 되는 형태를 말하죠. 이니스는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보다도 그 기술과 그 사회의 '인간'이 변증법의 주체로서 하는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한 사회의 미디어(media)가 그 사회의 관심을 특정한 사안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또 그것이 이 미디어가 가진 역량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정보(information)들을 지식(knowledge)으로 신속히 전환해, 그 사안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편향으로 형성되게 하는 것이죠.

결국 이니스는 기술과 인간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미디어가 한 사회 또는 문명의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패러다임이라는 것도 결국 이들 미디어가 편향적으로 확산시킨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그것에 의해 온 세상을 해석하려고 들죠. 이 과정에서 다른 생각이나 패러다임 또는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분쇄합니다. 또 신자유주의의 경우처럼, 근본적인 내용도 모르면서 서로 기나긴 투쟁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자본주의 4.0'입니다. 사람들은 덩달아 영문도 모르고 '자본주의 4.0'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떠드니 한국의 언론들도 앞을 다투어 떠들어 댑니다.

현대 세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이나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단지 현실적인 경제 현상에 대한 임시방편을 위해 대충 채택한 아이디어를 마치 거대한 이데올로기인 듯이 떠들어 댑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이것이 소위 현대의 경제학이요 사회과학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이론들을 자꾸 기워서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왜 부도덕하고 효용성마저 상실한 패러다임을 끝까지 지키려 안달합니까? 그래서 제가 현재 세계 전반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본주의 4.0'을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한 것입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패러다임을 아예 새롭게 정립해 가야 합니다. 이제 자본주의를 제대로 성찰하자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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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그러니까 지금까지 말씀은, 자본주의 생존을 위한 패러다임이 결국은 중심부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것으로 끝나 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돼선 안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지금 말씀 중에, 한국의 개발 모델 즉 박정희식 개발 독재라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요한 한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운회: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도 초기에 경제 성장을 많이 이룬 이유 중에, 하나는 포디즘(Fordism), 다시 말해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의 경영 방식을 도입한 것도 있고, 또 하나는 개발 독재 때문이에요. 사회주의 경제를 보면, 초창기에 굉장히 성장을 많이 하거든요. 이것이 나중에 계속 정체가 됩니다.

박정희식 개발 모델의 개념을 따지자면, 그것을 지금은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하는데, 사실은 서울 컨센서스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이 그런 모델을 가장 먼저 추진해 왔으니까요. 그 후에 중국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필리핀은 아키노가 죽는 바람에 수용하지 못했죠.

한국형 개발 모델은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에 후진국들의 개발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기존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의 통합을 통한 개발 전략이 있죠. 여기에는 자원 개발을 통한 수출 전략, 수입 대체형 공업화 전략,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 등이 있습니다. 둘째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의 단절을 통한 개발 전략 즉 사회주의형 개발 모델이 있습니다. 셋째는, 양 체제를 혼합한 개발 전략(유고, 인도 등)이 있죠. 그러나 이러한 개발 전략들은 하나같이 실패합니다. 그 이론의 선구자들이 예견한 바대로 돼가지 못했죠. 오히려 경제를 더욱 파행적으로 몰고 갔습니다.

한국도 1960년 이전에는 수입 대체형 공업화 전략이 대세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외국에서 수입하던 재화를 관세 또는 비관세장벽(NTB)으로 차단하고 이를 대신하여 국내에서 생산·공급함으로써 외환 절약을 통한 국제수지의 개선과 수입 대체 공업화를 통한 자립 경제의 구축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죠.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상당 기간 '교수 정치'를 합니다. 교수들의 이야기들을 적극 청취했죠. 잘 아시다시피, 박 대통령이나 군부 실세들도 처음에는 수입 대체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죠.

즉 내수 진작을 통해 자립 경제를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미국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이른바 미국의 본원적 이익(일본, 유럽)을 방어하기 위한 유도된 이익을 가진 국가로, 그 역할만 충실하기를 바란 것이죠. 일본 경제에 도전할 수도 없었겠지만, 일본처럼 강해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습니다. 나중에 한국이 포항 종합제철이나 울산 공단을 조성하려고 하니까, 미국은 한국에 그런 큰 공장이 필요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죠. 미국이 자금 지원을 거부하자, 일본으로 간 거죠. 가서, 청구권 자금 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그다음에 경제 관료나 기업인의 건의로 수출 지향으로 선회합니다. 민족주의적인 교수들이나 군부의 이론가들은 반대했죠. 다시 말해, 일본의 산업화를 모델로 삼은 경제 관료와 기업인들의 건의를 박 대통령이 적극 수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해외에서 활동하던 기업인들은 선진국에서 노동 집약적인 제품들이 가격이 매우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부분이 실업자인 한국에서 그것은 새로운 눈을 열게 해준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발과 의류 산업입니다.

다시 말해,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는 주로 의류와 가발, 합판 등을 내다 팔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행운아였죠. 세계 시장에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당시 만약 인디아가 지금 중국처럼 저임금으로 세계 시장을 몰아붙였다면 한국의 성공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때 동독이나 체코 같은 동유럽의 많은 공업국들은 아마도 일본보다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들이 세계 시장에 없고 자본주의는 최대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금리도 낮았으니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기 시작한 거죠.

수출 지향 공업화가 정립된 후 박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졌죠. 이것이 한국의 성공에 직결된 것입니다.

개발 독재는 누구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후진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한 요소입니다. 물론 누구도 이를 자신 있게 옹호할 수 있는 이론가는 없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도 초기에 성과가 크게 나는 이유가, 사실은 개발 독재였기 때문입니다. 세계 근대사를 다 둘러봐도 최빈국이었던 후진 국가가 개발 독재 없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경제 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봐야죠. 빈곤(poverty)의 탈출은 '개발 독재'에서 비롯되었던 거 아닙니까? 대표적인 예가 타이완, 싱가포르, 한국, 중국입니다. 이들을 제외하고 저개발 상황을 탈피한 예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빈약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 시장에 대한 경험도 없기 때문에 국가 주도로 엘리트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물론 제가 드리는 말씀은 개발의 명분으로 독재를 옹호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암울한 후진국, 디버전스를 극복하려면?

프레시안: 그렇다면 한국형 자본주의 개발 모델을 미개발 국가 혹은 저개발 국가의 경제 개발 정책에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김운회: 물론입니다. 그동안 반자본주의적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정신없이 "안 되는 이론 개발"에 몰두하지 않고, 차라리 한국형 모델을 각 국가의 자원이나 요소 부존도에 맞게 개발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만시지탄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한국형 모델의 요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철저한 토지 개혁(봉건 유제 타파)이었죠. 둘째는 신중상주의적 모델(국내 산업 보호와 자본 축적), 셋째는 리스트의 유치산업 보호론(경쟁 가능 산업 육성), 넷째는 수출 지향 정책(노동 집약에서 시작하여 자본 집약적으로 확장) 등이고, 또 다른 점도 있습니다. 이것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후진국들의 경제 개발 모델을 만들고 선진국들의 자본 침탈이나 경제 침략에 대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경제 체제가 있으면, 이것을 지탱하는 커다란 원리 즉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이 원리대로 움직여가면서 하나의 국제적인 질서를 형성하다는 그런 개념인데, 그런데 어쨌든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빈부격차가 아주 심해졌다는 거죠. 후발국들은 굉장히 부담이 크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산업화에서 나타나는 디버전스[Divergence, 하버드대학 프리챗 교수의 용어로, 하나는 부자의 길로 하나는 가난의 길로 들어서서, 다시는 돌아와 만날 수 없는 큰 강을 건너는 커다란 분기점(分岐點)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뒤처져 있어서 따라잡기 힘들단 말이죠. 그런데 이제 또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디지털 기반 기술에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도 인터넷 통신망이 우리나라보다 낫진 않잖아요? 열악한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이런 종류의 디지털 디버전스 즉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들을 둘 다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죠. 그래서 제가 볼 때는 후진국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암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일단은 한국형 경제 개발 모델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고려를 해봐야 합니다. 국가가 갖고 있는 요소 부존도를 파악한다든가, 국제 경제 현실에서 생존하는 전략이 각 나라별로 다를 수 있어요. 세계적으로 보면 베이징 컨센서스처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거든요. 이게 적용되는 과정이 문제인데, 예를 들면, 옛날에 사회주의였던 국가들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토지 문제가 없고, 봉건 유제들이 많이 소멸한 상태이죠.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해서 협동조합화한다든가, 그래서 사기업을 많이 만들고 생산력을 높일 수 있잖아요? 그러고 난 뒤에 수출 드라이브라든가, 여러 가지 방법과 전략들을 구사할 수 있는데, 한국이 살아왔던 길을 충분히 많이 참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슬람 국가들을 보면요. 이 나라들은 서구의 침탈이 가장 극심했던 곳인데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안전도가 높아요. 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민주주의라든가 분배 정의 면에서 보자면, 분명 봉건성이 있지만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많이 서구화되어서 개별 호수가 늘어났죠? 개별 호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경제 주체인 가계가 늘어났다는 거예요. 그만큼 경제 불안 요소나 시스템 엔트로피가 늘어난 거죠. 그런데 이슬람 국가처럼 대가족 사회에서는 경제 문제가 많이 터지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프레시안: 상호부조로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말씀이신 거군요.

김운회 그렇죠. 예전에 한국이 세계에서 최빈국이었을 때, 한 집에 모두 모여 살았었죠. 고모, 삼촌 할 것 없이. 그래서 주거 문제도 해결했죠. 어쨌든, 이슬람 경제권 자체는 서구의 침탈을 받았는데도 아직 멀쩡합니다. 그래서 이런 국가들도 어느 정도 독자적인 패러다임으로 생존해 갈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입니다. 이 나라들은 대책이 없는 상태예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아직도 브라질은 토지 개혁을 못 한다. 한국은 60년 전에 끝낸 일을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했죠.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를 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신자유주의니 (신)현실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중남미에는 해로운 정책들입니다.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경제 구조는 열악한 농업 플랜테이션(plantation)과 왜곡된 산업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죠. 신자유주의를 한들 (신)현실주의를 한들 그들의 경제가 나아질 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농산물의 가격은 공산품 가격에 비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그나마도 토지 소유가 극소수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은 나빠질 수밖에 없지요. 왜곡된 산업 구조 하에서는 실업이 만연하고, 상품들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낮아서 교역 조건은 매우 악화해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에는 토지 개혁이나, 더 심하게는 어떤 형태든 사회 혁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되다 보니까, 이런 나라들에서 마약이라든지 납치라든지 인신매매가 산업화되어 버렸죠. 이 나라들이 가장 문제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프레시안: 한국형 개발 모델, 박정희식 개발 독재가 굉장히 유효하고 유용하다고 말씀하시는군요. 경제 상황이 비슷했던 이웃 국가, 예를 들면 타이완의 개발 모델하고 비교하면 어떤가요?

김운회: 한국은,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지난 30년간 경제 개발사를 보자면 선진국 경제에 진입한 거의 유일한 나라예요. 타이완과 한국이 어떤 차이가 있었냐 하면, 타이완의 경우 대륙에서 사람들이 옮겨올 때, 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죠. 그다음에 타이완의 독재는 한국하고 비교할 수 없어요. 그들은 가족 전체를 죽인다든지, 50년 가까이 일당독재였잖아요? 그리고 타이완은 나라가 작고, 중화권의 일부이고, 그리고 장개석이라는 거물이 와서 자기가 본토에서 실패한 것을 거울삼아서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그런 형태입니다.

그에 비하자면, 한국은 소프트한 거죠. 적어도 유신 체제 전까지는 소프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 틈새를 아주 잘 파고들어서 세계 무역 8대 대국이 됐죠. 그런데 좌파 중에 일부는 "누가 해도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 같은 소리예요. 경제 자체의 개념이 없는 거예요.

경제에는 일정한 형태의 철저한 효율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죠. 경제 자체에는 혁명이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본 그때 당시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일천했으니까, 그 뒤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를 못 보았겠죠. 그런데 경제에는 혁명이 없어요. 왜냐하면 제품 하나를 생산하더라도 그에 따른 기술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발전이 돼야 합니다. 물건을 팔더라도 마케팅 노하우라든지 여러 가지 통상 전략들이 수립돼야지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회적 인프라도 중요합니다.

북한 경제를 보세요. 북한에서 제품을 개발해도 물건을 선적할 항구조차 변변하게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이게 시간이 굉장히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처박으면 되겠지, 아니면 정치 혁명을 통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굉장히 위험합니다.

복지 국가, 비전 있습니까?

프레시안: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으로 사민주의 내지 스웨덴식 복지 국가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비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운회: 우선 제가 복지 자체를 많이 연구해 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몇 가지 일반적인 얘기를 해보면요. 일단 복지 제도가 제대로 돼 있는 나라 자체는 국가 규모가 작습니다. 핀란드의 인구는 500만 명 정도 되고, 스웨덴 인구도 900만 명 정도이죠. 이 나라들은 사실 1,2차 세계대전도 피해 갔었고, 1차 대전이 났을 때에는 장사를 충분히 잘한 나라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 나라들은 국가 청렴도가 높아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리스, 스페인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국가 청렴도가 유럽에서 맨 꼴찌 수준입니다. 한국은 사실 스페인만도 못합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국가들의 국가 청렴도가 90점이라면, 한국은 54점 즉 거의 낙제점 수준입니다.

복지 제도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망한 것도 관료주의 때문이에요. 극단적인 복지 제도, 그게 바로 사회주의거든요. 사회주의가 소멸하는 과정들을 보면, 사회 전체의 주가 되는 재화가 공공재가 되었을 때 문제가 나옵니다. 공공재의 비극이죠. 주인은 없지만,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게 공무원, 즉 관료들이에요. 그런 상황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관료들의 부패가 상당히 심각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볼 때에는 한국이 북유럽식 복지 제도를 따라 할 경우에는 위험하다 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복지를 늘려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정책이 무상 의료입니다. 영국은 병원을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한 해 예산이 연간 170조 원 정도입니다. 국민 1인당 340만 원 정도죠. 그래도 영국은 공무원 부패가 우리처럼 심각하지 않습니다. 영국과 인구가 비슷한 한국은 81조 원의 의료비(개인 + 건강보험)를 부담하고 있는데, 개인과 국가가 비용을 분담하고 있죠.

영국은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05.3% 정도였어요. 무상 의료는 기본적으로 부실해질 수밖에 없지요. 무상 의료를 하게 되면 의료 수요가 폭증하게 되니 진료를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영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2005년부터 4년간 400에서 1200명의 환자가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주말에 더욱 심각했죠. 여기에다 지속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악순환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2010년 이후 간호사 600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그러니 또 그만큼 의료 공급의 차질이 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그래도 영국이니 이 정도라도 버티지, 한국 같으면 엄청난 파국이 올 것입니다.

영국은 통상적으로 적게는 전체 예산의 25%에서 많게는 절반 정도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무상 의료보험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심각합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0.3%인데, 한국은 45.1%입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부분의 노인들이 치료 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병원에 입원하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재정 분배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빈곤율(소득의 50% 이하인 가구 비율)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사전 빈곤율(정부 재정이 투입되기 전의 빈곤율)은 17.5%로 최저 수준으로 양호합니다만, 사후 빈곤율(정부 재정이 투입이 된 후 나타나는 빈곤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 > 일본 > 한국(15.2%)의 순서로 세 번째로 높습니다.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라든가 하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죠.

복지가 제대로 성공하려면 사회의 청렴도가 높아야 합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복지 지출 규모는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한데 남유럽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2년 국가별 부패 지수에서 북유럽 국가군은 가장 투명한 나라들로,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군은 유럽 최악의 부패 국가로 분류되었고, 그리스는 최악의 부패 국가였습니다.

그리스는 취업자의 10명 중 4명이 공무원일 정도로 공무원 조직이 비대했습니다. 이들은 또 업무와 관련된 개인 비즈니스를 했죠. 지하 경제는 25%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한국은 스페인(65점)과 최하위인 그리스(36)의 중간쯤인 50점대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상 의료가 시행되면 어떻게 됩니까? 너도나도 다 병원에 갑니다.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이 근근이 모아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식입니다. 돈 감당이 안 되지요. 그리고 줄줄이 새는 정부 예산은 어떻게 감시합니까? 그 인력을 보강하려면 비생산적인 공무원만 늘어나고요. 그리스 꼴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을 누가 내느냐는 거예요. 경제라는 건, 일단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원가(생산비)를 탕감하고, 내년에 쓸 것을 남겨놓아야죠. 감가상각도 해야 하고 그중에 일부를 가처분소득으로 잡습니다. 그런데 돈 벌어놓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공무원들이 늘어난다든지, 돈 쓸데만 늘어난다면, 이 경제는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다시는 이런 포퓰리즘적인 시도가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 선진국 문턱을 넘었는가?

프레시안: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한편으로 전 유한대 김영호 총장이나 장하준 교수 같은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는 한국경제가 확실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지 국가와 사민주의를 얘기하고 있는데, 김 교수는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김운회: 저는 이렇게 봐요. 서유럽 국가들의 선진화와 복지, 이런 것은 굉장히 장구한 시간이 소요됐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된 게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요소들도 참 많습니다. 노인 빈곤율이 높은 것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에서 비롯됐잖아요? 자식들에게 너무 '올인'해서 노후에 재산이 남아 있지 않죠.

서구의 흉내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일종의 덫이거든요. 지금 서구 사회에서 복지 투자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데, 결국 후손들이 다 부담해야 합니다. 그럼 결국엔 다음 세대의 경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예요. 지금 복지 국가들이 한때 잘 나간다고 해서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서구에 비해 복지 부문 투자가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무작정 서구를 따라 할 일이 아니에요. 서구 선진국들은 공무원의 수준이라든지 청렴도가 충분히 높아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년도에 있었던 국가 장학금 문제도 있었죠. 그것도 제대로 배분이 안 됐어요. 대학은 다른 단체나 회사보다는 좀 더 나은 집단인데, 그럼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아 교육 부문에도 많은 누수가 발생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선생을 가짜로 뽑아놓고 말이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기부가 굉장히 활발하잖아요? 자본주의가 선순환하려면, 자기가 살면서 충분히 돈을 벌었으면,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다시 사회에 돌려야 잘 굴러가죠. 한국의 문제는, 일단 들어간 돈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기부가 안 돼요.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중요한 요소가 못 굴러가는 거예요.

제가 볼 때에는 기초(펀더멘털)는 선진국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마이클 포터가 말하는 SPI(사회 발전 척도, Social Progress Index)를 보면, 한국이 세계 11위예요. 다른 요소들은 다 8위권에 들어가고요. 학연이라든지 지연이라든지 공무원 부패라든지를 나타내는 요소는 좀 뒤처져요. 그래서 사회 발전 척도라는 측면을 적용해 보면 한국은 11위가 돼요. 이제 GDP만으로는 사회 복지를 나타낼 수 없다고 보죠. 그리고 무역 규모는 8위이고, 여러 지표로 봐도 충분히 TOP 10 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한국이 선진국은 맞지만, 아직 정신적이거나 여러 다른 요소를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선진적이지 못하죠. 서구의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아도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나 기사도 같은 것들이 정착이 돼 있죠.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해 나갑니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우리가 아직까지 완벽한 선진국에 못 들어갔다면 해야 할 것이 뭔가요? 사회적 신뢰(트러스트), 청렴, 이런 것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지요?

김운회: 복지 국가가 해결책인 것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경제라는 것은 복지와 맞물려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루저)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할 일이에요. 다만, 서구에서 하니까, 이걸 따라가야 한다는 식은 곤란해요. 차베스가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한다고 해서, 남의 나라의 것을 수입하는 데에만 의존해서는 곧 망하고 말아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복지를 확대해야 하고, 성장을 계속해 나가면서 복지에 투자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 자체의 잠재성을 죽이면서 복지에 투자하면 위험합니다. 무상 의료가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예요. 경제가 감당할 수 있도록,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보세요. 어느 정도 복지 제도가 확충되면, 무리하게 자영업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어요. 572만 명의 자영업자가 있다고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3년 만에 절반이, 5년 만에 60~70% 망합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흔히 자영업의 대명사인 치킨 전문점의 폐업률이 1년에 18%, 3년이면 49.2%, 5년이면 62%에 달합니다. 그렇다고 남은 가게들이 안전해서 유지되는 것은 아니죠. 이들도 10년 이내는 대부분 폐업합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돼 있으면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런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숨통을 돌릴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한 거죠. 어쨌든 서구 모델을 가지고 자꾸 얘기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 실정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박근혜의 창조 경제, 경제 민주화의 실마리를 묻습니다

프레시안: 최근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사전트(Thomas J. Sargent,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겸임교수)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에 대해 '허튼소리'라고 혹평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창조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견은 무엇입니까?

김운회: 저도 창조 경제란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다, 그리고 그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 기존의 아이디어와 기술의 융복합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중소 벤처기업들의 창업이 활성화되고 중·소·대기업간 상생구조가 정착되어 일자리 창출형 성장이 선순환되는 경제라고 합니다.

좋은 말은 다 쏟아놓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공허하죠. 긍정적으로 본다면, 한류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 산업을 확장하면서 이와 관련된 산업들이 지원하는 구조이거나 바이오, IT 등 한국의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들에 대한 R&D 투자를 강화하여 신산업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청년 벤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정책들은 이미 각 부처별로, 산업별로 많이 진행되고 있죠. 특별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권이 여야 모두 이구동성으로 복지 정책을 앞 다투어 진행하기 때문에, 그만한 재원들을 어떻게 확보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경제를 잘 모르는 이들, 특히 좌파들은 복지 정책과 성장이 같이 갈 수 있다고 하죠. 이는 잘못입니다. 복지 정책은 경제 전체로 보면 사실은 마이너스지요. 분배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처럼 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인 인력이 소요됩니다. 그만큼의 임금을 또 지급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하죠.

세계 경제 전쟁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은 신흥 개발국들의 강력한 추격을 받고 있고 선진국들의 심한 견제에 시달립니다. 대통령은 임기 기간 중에 모든 일을 다 하려 해서는 안 되고 공약을 모두 실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만 말씀드리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 창출입니다. 당장에 청년실업률을 줄이려면, 차라리 과도한 경제 민주화 등을 중지하고 FDI(외국인 직접 투자)의 유입을 활성화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경제 민주화도 제대로 되려면, 폐쇄 경제(closed economy)일 때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는 철저히 개방되어 있어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직접 투자를 유치하려고 난리를 칩니다.

가령, 순환 출자는 세계적으로 대부분 큰 기업들의 행태인데 우리만 무장해제하면 어떻게 됩니까? 집안의 도둑을 쫓으려고 더 무서운 도둑을 끌어들입니까?

재벌의 매출액 규모는 스웨덴의 경우 무려 40〜50%이고, 한국의 20대 그룹의 GDP 대비 매출 규모는 대략 20% 정도라고 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보다 더 높죠. 그런데도 반기업 정서가 강합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요.

문제는 순환 출자 해소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비용을 들여서 제대로 하면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2011년 한국 무역 규모는 1조 달러 돌파, 세계 무역의 8강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GDP 대비 외국인의 직접 투자액(2011년 기준)의 비중은 세계 140개국 중에 122위로 거의 꼴찌 수준입니다. 2013년 현재 경제자유구역 10년 만에 68억 달러를 유치했습니다. 싱가포르는 1년에 640억 달러를 유치합니다.

외국인 직접 투자 가운데 한국으로 유입된 비율이 2004년 1.25%에서 2007년 0.14%로 떨어집니다. 이 기간에 한국 경제의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죠. 바로 이때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입니다. 2012년 현재는 FTA 때문에 2004년보다는 약간 높은 정도입니다(2011년 0.9%, 2012년 0.6%). 그나저나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합니다.

이런 식의 경제 민주화라면 한국 기업들은 해외 직접 투자(FDI)를 활성화하거나 또는 조세 회피 즉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를 더욱 활성화할 것입니다. 벌써 시작되었지요. 현대자동차의 국내 생산 비중은 38%까지 떨어졌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45%)보다 7%포인트 줄어들었죠. 그만큼 엄청난 고용 감소 효과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삼성도 수조 원이 드는 중국 시안(西安)의 반도체 공장,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비메모리 공장, 베트남 휴대폰 공장 확장 등을 발표했습니다. 삼성 휴대폰 메카는 구미가 아니라 하노이라고 하죠?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겠죠? 비싼 땅값과 세금, 기업에 비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누가 한국에서 기업하려고 합니까? FTA 발효 후에는 오히려 많이 나아진 편입니다.

창조 경제로 다시 돌아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그 창조 경제가 주로 IT나 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이나 콘텐츠 산업과 연계되어 있는데, 그 고용 창출 효과는 사실상 미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기업들의 인건비 비율이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른바 벤처기업들은 small is beautiful, 즉 슬림화되어야 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저 정공법을 써서 고용을 다각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이 좋을 듯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가능한가?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김운회: 제가 볼 때에는, 기존의 경제학이 좌우로 나뉘어서 일방적으로 어떤 패러다임을 강제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가장 빈곤한 지역의 격차가 2배였는데 현재의 그 비율은 20배라고 합니다. 나라별로 본다면, 부국과 빈국 간의 격차가 80여 배에 이르고 있다고 거죠. 어떤 경우라도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죠. 하버드대학의 프리쳇(Pritchett) 교수는 이것을 디버전스(Divergence)라고 부릅니다. 하나는 부자의 길로 가고 하나는 가난의 길로 가서, 다시는 돌아와 만날 수 없는 큰 강을 건너는 커다란 분기점이라는 의미입니다.

분명히 기존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으로는, 선진국들을 제외하고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선진국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모순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패러다임은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자신에 맞는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세계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선에서 상호협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성공이나 중국의 성공에서 보듯이 한 나라가 굳이 자신의 개발 논리로 무장하고 간다는 데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과거처럼 각종 구실로 군함과 총칼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죠. 이슬람 지역이나 말레이시아 등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서울 컨센서스 즉 베이징 컨센서스를 확산시키는 학문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자본주의 4.0이니 하는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고, 무엇이 내게 필요한 이론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무조건 신자유주의를 하자는 것도, 무조건 사회주의도 다 위험합니다.

프레시안: 앞으로 연구나 집필 계획은 어떤가요?

김운회: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는 <경제학원론>을 집필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토론하여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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