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킨 백만 꿈꾸다간, 다 같이 망한다!

[김성희의 '뒤적뒤적'] 척 콜린스의 <왜 세계는 불평등한가>

최근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 딴죽을 거는 내용이었다. '토끼와 거북이'는 성실과 근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예화로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지만 그 해석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럿 접했다. 거북이가 낮잠 자는 토끼를 깨워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에서, '그래 거북이가 경주에 이겼다고 급한 전갈을 거북이에게 맡기겠냐'는 자포자기론까지. 이번엔 거북이 비판론이었다. 거북이는 왜 수영 시합을 하자고 했어야지 질 줄 뻔히 알면서 달리기 경주를 했느냐는 요지였다.

'아, 그렇지'하는 감탄이 나오면서도 과연 거북이가 머리가 나빠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황이 달리기 시합밖에 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 <왜 세계는 불평등한가>(척 콜린스 지음, 이상규 옮김, 이상 펴냄). ⓒ이상
이런 시답잖은 생각이 현대 사회의 불평등을 진단하고, 처방한 이 책 <왜 세계는 불평등한가>(척 콜린스 지음, 이상규 옮김, 이상 펴냄)를 보며 떠올랐다.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무엇보다 판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다.

지은이는 학자라기보다 행동가로 분류될 만하다. 미국 정책연구소(IPS)의 수석연구원으로 불평등과 경제 위기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지만 그렇다. 공정성과 공동번영에 관심 있는 이들을 묶는 전국적 조직인 '공공의 선을 위한 부'를 공동 설립하고, 빌 게이츠의 아버지와 함께 상속세 강화를 골자로 한 '부와 공공복지'를 쓰는 등 적극적 실천 노력이 그 같은 인상을 뒷받침한다.

그러니 이 책은 재미있지 않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대신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의 실상을 보여주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과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그러니 학술서라기보다 시민 행동을 위한 팸플릿에 가깝다. 원제 <99퍼센트 대 1퍼센트(99 TO 1)>가 시사하듯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한 것이 아니어서 번역판의 제목은 초점에서 벗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장점이 적지 않다. 원인과 현상을 짚고 대안을 제시해 불평등의 전모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 그렇고, 불평등이 단지 경제적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나 환경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큰 안목을 제공한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1퍼센트의 부유층과 나머지 99퍼센트를 비교하는 초반부는 오로지 미국 사례이기에 실감이 덜 하다. 1983년부터 2009년 사이에 미국 전체 자산 증가분의 82퍼센트가 가장 부유한 5퍼센트에게 돌아가고 하위 60퍼센트의 자산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했단다. 상위 1퍼센트가 전체 개인 자산의 35.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하위 95퍼센트의 자산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단다. 2010년 미국 500대 기업의 CEO 평균 임금은 1080만 달러(한화 약 130억 원)로 노동자 평균 임금의 325배에 이른단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100만 원 짜리 도시락이 등장했다는 몇 년 전 기사나, 몇 백만 원 한다는 에르메스 버킨 백을 2년이나 기다려 사는 이가 있다는 소식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이것도 그 때뿐이다. '한 쪽에선 굶어죽는 이가 있는데…'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

그것이 불평등에 관한 논의가 뜨겁게 일지 않는 이유인지 모른다. 지은이는 이런 대중의 심리가 '아메리칸 드림'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언젠가는 나도 상류층에 들 수 있다'는 생각에 불평등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눈감고 부자 증세에 소극적이며 부유층에 의한 정치 왜곡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의 경우 취업난, 사교육비 걱정 등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에 치여, 보다 근원적이되 막연한 불평등 문제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불평등은 만악의 근본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 의료 불평등, 환경 악화 등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불평등은 경제 성장을 가로막기도 한다. 지은이는 대공황 직전인 1929년과 세계적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은 불평등이 가장 심했던 시기임을 지적하며, "평등 정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금융 위기와 정치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 조너선 오스트리의 발언을 소개한다.

1퍼센트의 부유층이 세금을 도둑질하고,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해서인데 책에는 이들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다섯 가지 방식이 정리돼 있다. 으뜸이 정치적 영향력 발휘다. 선거 기부금과 선출직 공무원들과의 인적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다. 2010년 다수당의 연방 관리직 후보들에 대한 상위 1퍼센트의 기부금이 전체의 약 3분의 2에 달했다. 또 보통 사람보다 '1퍼센트'가 국회의원과 접촉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는데 시카고 지역 부자들을 조사한 결과 750만 달러 이상이란 중간급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의 절반이 의원이나 다른 고위급 정부 관리들과 접촉한 적이 있었다. 이러니 정치가들이 조직화된 상위 1퍼센트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도 이들의 무기다. 1983년 약 50개 미디어 재벌이 국가 전체 미디어의 절반 이상을 통제했다. 오늘날에는 6개의 다국적 미디어 재벌 그룹이 미국 대중매체 환경을 장악하고 있다. 사회 정의에 관한 공개적 담론이 제한되고 경시되는 한 이유다.

이렇게 해서 미국 정부는 자산 관련 소득세 완화(1979년 39퍼센트에서 2011년 15퍼센트로), 연방 상속세 철폐, 최고소득세율 인하(1980년 이후 50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하락) 등 상위 1퍼센트를 '배려'하는 정책을 취했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지갑에서 나오는 셈이다. 미국보다 훨씬 작고,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히 얽힌, 이른바 '상류층'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상상하는 것보다 더한, 슈퍼 리치를 위한 정치적 왜곡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닐까.

다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자면 판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성공에 함몰되어 공동체적 가치를 망각했던 행태를 바꾸는 '가치 전환', 무기력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시민 활동과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99퍼센트가 힘을 발휘하는 '권력 이동' 그리고 '게임의 규칙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저 임금이 곧 생활 임금이 되도록 하고, 모두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해 최하위 계층의 바닥을 높이는 것, 공적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정치권에 1퍼센트의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해 공정 경쟁의 장을 만들 것 등을 제안한다.

글쎄,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지는 의문스럽다. 바라기는 세월이 흐른 뒤 옛 이야기의 소재로나 등장했으면 한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라. 빨리 할수록 좋다' '따라잡지 못하면 불행해질 것이다' '자격과 노력에 따라 경제적 사다리에서의 위치가 달라진다' 같은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누구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시장을 섬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혼자서는 못 한다'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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