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원짜리 토스터, 직접 만들면 200만 원?!

[김성희의 '뒤적뒤적']토머스 트웨이츠의 <토스터 프로젝트>

논픽션은 재미있다. 물론 알콩달콩하거나 몸이 오그라드는 그런 일반적인 재미를 말하는 건 아니다. 비상한 일이어야 기사가 되는 것처럼 논픽션은 대체로 극한 상황이나 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논픽션의 재미는 숨겨진 또는 잘 알려진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 있다.

그런 논픽션 중에 갈수록 인기를 모으는 장르가 체험기다. 전지적 관점에서 쓰기 때문에 그만큼 더 생생한 것이 이런 형태의 논픽션이 갖는 미덕이다. 또 하나 개인의 체험이란 것이 반드시 비상할 수는 없으니 소재가 비교적 자유롭고 그만큼 부담이 덜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독파한다든지, 중국 제품 없이 생활한다든지 하는 한시적 프로젝트의 전말을 고백하는 형태가 그런 책들이다.

그래선지 이런 체험기의 대부분은 웃음에 기운다. 기발한 기획을 능청스레 서술하는 것이다. 아마 그게 독서 시장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유리해서이지 싶다. 최근에 읽은, 미국 패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기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나무의철학 펴냄)를 빼고는 썩 진지한 체험기를 만나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 짐작한다.

<토스터 프로젝트>(토머스 트웨이츠 지음, 황성원 옮김, 뜨인돌 펴냄) 역시 그런 체험기의 하나다. 왕립 예술 학교 석사 과정을 다니던 영국의 젊은 디자이너가 졸업 작품 전시회에 손수 제작한 토스터를 출품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 없다. 그런데 빵 굽는 기계의 외관을 디자인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 정도라면 책으로 쓸 것도 없었겠다.) 직접 재료를 만들어 이 전자 제품을 조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 외장과 열판, 전선 등을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립 자체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플라스틱이며 열판 등을 집에서 만들자니 그 과정이 간단할 리 없다. 책은 지은이가 9개월 간 무려 3000킬로미터가 넘도록 발품을 팔아 토스터를 만들기까지의 좌충우돌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다.
▲ <토스터 프로젝트>(토머스 트웨이츠 지음, 황성원 옮김, 뜨인돌 펴냄). ⓒ뜨인돌

해서 일정 부분 웃음을 보장한다. 지은이의 능청스러운 문체 덕이 크다. 어렵사리 철광석을 구해 사제 용광로를 만들어 철을 뽑아냈는데 이게 망치로 두드려 철판을 만들 수 있는 연철이나 강철이 아니라 선철이다. 이를 두고 "목탄과 적절한 지식, 기술만 있으면 선철을 거치지 않고 연철과 강철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무생물을 다룰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열정뿐이었다"고 난감해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지은이가 토스터를 손수 만들기로 결정한 이유에서 책의 주제를 엿볼 수 있다.

"갖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갖고 있기도 쉬워서 하나 샀다가 고장 나거나 더러워지거나 낡으면 쉽게 내버리는, 그런 물건들의 대표"이기에 토스터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또 '대참사' 후 살아남은 현대인들이 과연 이전에 쓰던 가전제품을 하나라도 만들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손수' 만들어 보기로 했단다. 이쯤 되면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웃자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과 기술 문명에 대한 야유임이 짐작될 것이다. 더욱이 책을 읽다 보면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각 없는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환경 보호를 촉구하는, 제법 진지한 생각을 담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지은이는 우리 돈으로 1만 원이 채 안 되는 토스터를 골라 재료를 파악하기 위해 뜯어놓고 보니 부품이 157개, 여기 든 재료가 최소 서른여덟 가지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금속 열일곱 가지, 플라스틱 열여덟 가지 등등.

지은이는 여기서 "토스터스러움의 정수가 살아있는 토스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으로 재료를 압축해 강철, 운모, 플라스틱, 구리, 니켈만 쓰기로 한다. 니켈과 크롬으로 된 열판을 니켈과 구리로 만드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또 빵 양면을 구울 수 있고 구워지면 빵이 튀어나오는 등 전자 대리점에서 파는 것과 유사해야 하고, 모든 부품을 맨손으로 만들고,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다"는 등의 원칙을 정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쉬울 리 없다. 강철을 만들기 위해 관광지로만 명맥을 잇는 영국 오지의 폐광을 찾아가 철광석을 얻어 오지만 철을 제련할 수가 없다. 현대식 기술을 담은 야금 책은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낙엽 청소기 등을 이용한 사제 용광로로는 두들기면 부서지는 선철이나 간신히 만들었을 따름이다. 결국 부엌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철광석을 녹여 강철을 얻는다.

단열재로 쓰이는 운모를 구하기 위해 헤매고, 플라스틱 원료인 원유를 구하기 위해 석유 회사에 협조를 요청하는가 하면 전선 피복을 만들 요량으로 고무나무를 키우는 왕립 식물원에 문의했다가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는 등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읽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석유 회사에게서 거절당한 뒤 사탕수수를 발효시킨 젖산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에 착안해서는 "운동을 하고 난 뒤 근육통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젖산이다. 격하게 에어로빅을 하고 난 뒤 내 근육에서 젖산을 추출하는 다소 오싹한 생각"을 하는 등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러나 지은이가 단순한 괴짜는 아니다. 은근히 비판적인 색다른 사실을 귀띔하기도 한다. 가전제품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낮에는 줄었다가 밤이면 늘어나는, 불안정한 전기 수요로 어려움을 겪던 초기의 전력 회사가 낮 시간에 전기 수요를 늘릴 해법으로 찾아낸 것이 전열기 개발 및 보급이었단다. 1909년 전력회사 AEG가 만든 전기주전자가 최초의 가전제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약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요구에 의해 인류는 안락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연의 능력이 갖가지 방식으로 왜곡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삶은 다른 모든 이와는 물론 자연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비용을 모두 계산할 경우 토스터를 치즈 한 덩어리 값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지은이가 사제 토스터를 만드는 데 순수비용만 우리 돈으로 200만 원 가까이 들었으니 토스터의 시장 가격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럼 지은이의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일까. 비효율적인데 무엇보다 빵을 굽지 못하니 그렇다고 하겠지만 의도는 성공했다.

"내가 손에 놓은 토스터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세계 도처의 거대한 광산에 널린 암석과 슬러지였다. 그것을 정교하게 가공하고 변형하여 끌어 모은 뒤, 많은 사람들이 조립하고 포장하고 상자에 담아 가게까지 운반한 것이다."

이런 구절을 보면 자본주의의 기적을 기리는 듯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 이르면 지은이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했지 싶다.

"우리가 아담 스미스와 그의 보이지 않는 손에 길들여지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물건을 구입해야 할 필요와 환경을 더 살리기 위해 더 적게 소비해야 할 필요는 상충된다는 사실이다. (…) 제품의 실제 비용은 감춰져 있다. 철과 플라스틱을 만들 때 발생하는 오염이 우리의 뒷마당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제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어느 갤러리에서 가진 초청 시연회에서 고무 외피를 입히지 못한 구리선이 과열되는 바람에 토스트를 만들지 못하고 스스로 토스트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결말이 주는 웃음보다, 공산품에 사용 설명서와 재활용 설명서를 같이 넣도록 하자는 제안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남성 퇴화 보고서>(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와 더불어 현대 문명과 현대인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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