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교육은 학교 공동체 운영 및 학생 생활의 원리와 관련하여 민주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 나아가,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적 학교 생활은 학생들이 미래의 민주 시민으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도적 주체로서 소양을 키우는 일입니다."(37쪽)
"중앙 정부는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지방 교육 자치의 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규제와 개입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지역의 교육 자치를 지원하는 체제로 그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야할 것입니다."(43쪽)
| ▲ <김상곤의 교육 편지>(김상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
언어의 오용이 내게 가져다준 아픈 생채기라고나 할까? 다행히도 반전의 순간이 왔다. 죽은 언어에 생명을 부여해온 것이 그동안 저자가 해온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의 일이었다. 교육감인 저자가 한 교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가짜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진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생님의 사연이 담긴 기사를 읽어보았답니다.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 보다가 "주눅 들어 서류를 내밀던 아이들의 눈빛이 떠올랐고, '상처를 더 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대목에서 잠시 멈춥니다. 인쇄된 문자에서 선생님의 눈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서류를 낸 아이, 그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짧은 순간이겠지만, 말 없는 대화가 여러 번 오가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아이는 "선생님, 여기요" 라고, 선생님께서는 '미안하다'고 눈빛으로 이야기했겠지요. 얼마나 난처하셨을지…."(77쪽)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상 급식을 둘러싼 복지 논쟁이 한창이던 때, 저자는 단식 중이던 최은숙 교사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당시 이 학교는 예산 부족으로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 신청을 한 106명 중 75명만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최 교사는 "차라리 내가 한 끼 굶고 밥값을 내주고 싶다"며 점심 단식에 돌입한 것이다. 그 후 부산 교육청은 추가 예산을 확보해 누락된 6000명을 모두 구제하기로 결정한다. 저자는 '진심어린 교사 한 분이 세상을 움직인 사건'이라고 이 일을 회고한다.
이 책에는 '무상 급식 주민 투표'를 발의한 오세훈 서울 시장에게 저자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보낸 공개 편지도 소개된다. "이 편지는 공개되자마자 언론과 SNS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투표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그 후 오세훈 시장의 사퇴에 이은 박원순 시장의 등장과, 그 와중에 안철수 원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급부상한 것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다.
이 책은 무상 급식을 발화점으로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 복지 국가 만들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은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미래형 복지 국가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시한 데 있다 하겠다. 그는 교육과 복지를 소모성 지출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복지는 경제를 선순환시킵니다. 2000년대에 교육 보건 복지 사업의 경제 성장 기여율이 8.2퍼센트였던 반면에, 건설업의 기여율은 4퍼센트에 그쳤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보편적 방식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 사회 안전망 확충으로 사회적 통합력을 강화합니다. 보편적 복지 확대가 지금의 경제난을 헤쳐 나가는 실질적인 대안인 것이지요."(94쪽)
경기도 학생 인권조례 제정으로 인해 '인권 교육감'으로도 통하는 저자는 '인권은 곧 교육'이며, '우리가 제일 먼저 넘어야할 가장 높은 벽은, 잘못된 관행 속에서 화석화된 선입견과 편견'이라고 말한다. 지금 학교 사회는 어떤 교육 이상이나 정당한 주장보다도 "다른 학교도 다 그렇게 하는데…"라는 식의 저급한 현실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강제 자율학습'이라는 형용 모순의 용어가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당연한 노력들이 오히려 계면쩍게 느껴지는 것도 결국은 자기 성찰의 능력을 상실한 화석화된 이 시대의 산물들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저자가 교육의 본연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오랫동안 천착해온 '혁신 교육'을 시작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제언'까지 총 여덟 개의 이야기로 짜여 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소개한 '교육 복지'와 '학생 인권' 외에도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내용들이 많다. 학교 폭력과 왕따, 일제고사 등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주목을 요한다. 저자가 혁신 학교에서 명예 교감으로 보낸 하루 이야기도 퍽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꿈꾸어 달라며 구체적인 교육 사례를 들어가며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도 그렇거니와, 특히 '교육감의 직무'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알다시피, 그는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의결 요구를 사법부 판결이 날 때까지 유보한 것이 교육감으로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기소된 바 있다. 그가 항소심 재판에서 한 최후의 진술에는 이런 내용도 눈에 띈다.
"또한, 이 직무의 내용에는 마땅히 수행하여야 할 일 뿐만 아니라 마땅히 수행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며, 이의 기준 또한 헌법적 가치와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직무를 '유기'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교육감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82~184쪽)
그가 생각하는 교육감으로서 마땅히 수행하지 말아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 일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이 물음을 나 자신에게도 던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완전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이다. 선생(先生)이란 아이들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물론 이때의 경험은 단편적인 지식이나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온전한 경험을 의미한다.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고마운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동으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 소중한 경험이야말로 존엄한 인격을 향한 가장 큰 디딤돌입니다." (116쪽)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