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임무, '돈벌이'와 '신분 세탁'!

[김성희의 '뒤적뒤적'] <이 그림은 왜 비쌀까>

수많은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저축은행 비리를 다룬 기사 중 눈길 끄는 부분이 있었다. 모 저축은행 회장이 그림 12점에 94억 원을 쏟아 부었다는 이야기였다. 1억 달러 이상에 팔린 그림 소식도 종종 들어선지 '그림 한 점에 평균 7억 원을 쓴 정도야'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얼른 떠오른 것이 이 책이다.

"과장광고! 예술과 돈(Hype! Kunst und Geld)"인 책의 원제가 다소 선정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미술 시장의 허상을 제대로 파헤쳤기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다. 법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 자문가로 활동 중인 지은이는 그림 가격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 화랑에 걸린 채 고객을 기다리는 그림은 시간이 흘러도 왜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지, 그림의 가치와 그림 값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림 값이 올라 미술가들은 과연 행복해졌는지 등을 흥미롭게 파헤쳤다.

▲ <이 그림은 왜 비쌀까>(피로시카 도시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춤추는 그림 값을 두고 지은이는 예술의 가치관과 시장의 논리가 야합한 덕분이며 투기, 호황, 그리고 과대 포장이란 미술 시장의 근본 원리가 우리 시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1960년대 중반 소더비를 세계적 경매 회사로 이끈 피터 윌슨은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을 '쓸데없는 헛소리'로 간주했고, 예술은 무엇보다 돈과 계급을 만들어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단다.

중세 이탈리아의 '명문'인 메디치 가(家)가 예술 후원자로 나선 것은 고리대금업으로 쌓은 부와 영향력을 치장하기 위해, 즉 '신분 세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수입이 6억 달러가 넘는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언이 포름알데히드에 담긴 데미언 허스트의 배암상어를 800만 달러에 구입한 목적은 당연히 돈이겠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광고인 찰스 사치를 비롯한 '21세기 미다스'들은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집중 구입한다. 현대 미술품의 경우 가격 변동 폭이 일정한 옛 거장의 작품과 달리, 가격이 상당한 폭으로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제대로 평가할 눈도, 그 눈을 입증해줄 안정적인 가격 구조도 없는 탓이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지스 지수'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미술 작품 가격은 연평균 10.5퍼센트 올라 주식 투자 수익률을 웃돌았으니 이들의 투자도 나름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앞을 거의 보지 못하면서도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몇 점의 그림에 기록적 가격을 낸 라스베이거스이 도박장 부호 스티브 윈이나 앞서 이야기한 저축은행장의 행태는, 이것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지은이는 메이모지스 지수엔 허구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경매에서 팔린 미술 작품들만 대상으로 했기에 구매자를 찾지 못하거나 실현된 가치가 0에 가까운 작품들은 통계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지수를 만든 메이젠핑과 마이클 모지스가 125년 동안의 미술 작품 수익률을 조사한 2002년 연구에 따르면, 가장 높은 가격의 그림들이 평균 이하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걸작품'이 중간 가격대 이하의 작품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은 일반적 착각이란 설명이다.

어쨌거나 수집가들이 단지 돈만으로 미술 시장을 출렁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평의회 위원인 찰스 사치는 1983년 이 갤러리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트의 전시회를 열기 직전 그의 작품 12점을 구입했다. 유명 미술관의 전시회 이후 그림 값이 뛰는 것을 노린 일종의 내부자 거래였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비평가들이 끼어드는 화가에 대한 '신화 만들기'도 그림 값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미치고, 사랑에 실패하고 화가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반 고흐는 진정한 예술가와 순교자의 이미지를 가졌다. 그를 현대 회화의 그리스도로 만든 전기 작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는 "그는 광란하는 기질을 화폭에 담았다"며 고흐의 그림을 고통의 기호로 해석했다. 그 결과 고갱이 프로방스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고흐의 '해바라기'는 기쁨의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흐 신화'에 힘입어 엄청난 가격 폭발을 일으켰다. 1987년 일본의 야스다에, 당시 세계 최고가인 3990만 달러에 팔렸다. 몇 년 안 돼 가격이 폭락하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명화로 꼽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그런 신화 만들기의 산물이다. 적어도 지은이에 따르면 그렇다. 19세기 말 루브르 미술관 공식 카탈로그에서 재고 번호 300번이었던 이 그림은 라파엘의 '성가족'의 6분의 1, 다빈치의 다른 그림 '동굴의 마돈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의 시장 가격이 매겨졌다. 이에 비밀스런 미소란 신화를 부여한 것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테오필 고티에. 팜므 파탈에 일종의 편집증을 보였던 고티에는 그 때까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해 "현명하고, 심오하고, 우단 같고,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 죄 많은 굴곡을 이룬 입. (…) 관람자를 감미로움, 우아함과 우월감을 지닌 채 조롱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 군주 앞에 서 있는 어린 학생처럼 수줍음을 느낀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미술가의 이름과 그림의 가격을 모른 채 순위를 매겨 객관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그림이 얼마나 될까? 지은이는 오늘날 시장에서 찬사를 받는 모든 미술 작품의 내부에는 돈이 번쩍거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그림 가격의 양극화, 중간 가격대의 소멸과 소수의 승자로 시장이 집중화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현미경을 통해 보듯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미술 시장은 "미술의 깊은 차원을 재는 음향 수심 측정기가 아니고 판매 가능성을 나타내는 기압계"라는 것이 지은이의 결론이다.

이야기는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미국의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가 전원적인 강가의 풍경 속에서 구강 성교를 하는 자신을 담은 '마네' 등을 베를린 막스 헤츨러 화랑에서 전시했을 때, 평론가들은 작품의 명백한 내용을 무시하고 위대한 미술의 은유로 해석했다. 과연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 통속적인과 미술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미술 시장의 거품에 주목해 '분화구 위에서 춤추는 것 같다'고 경계했지만, 오히려 미술 시장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일반 민중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우리 미술가들은 우리가 똥 같은 물건을 만드는지 황금을 만들어내는지 알지 못한다"는 미국의 미술가 제이슨 로즈가 솔직하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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