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3대 세습, 이게 다 OO 때문?

[프레시안 books] 히라이 히사시의 <김정은 체제>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것은 국가보안법과 같은 제도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북한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이러저러한 책을 보면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어떻게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김정은'이라는 인물을 이처럼 '잘' 알고 있을까? 혹은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취득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물론 과거와 달리 북한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졌고,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관련 정보가 취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와 비교해 북한의 이모저모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손쉽게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고 기밀(?)에 속하는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정보가 이처럼 신속하고, 방대한 분량으로 전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폐쇄된 국가'의 어딘가에서 틈이 벌어지고, 그 틈을 통해 정보가 줄줄이 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정은에 대한 정보 역시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아무튼,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의 등장은 싫든 좋든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북한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은 게을리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1974년 후계자로 선정되어 약 37년간 북한을 지배했던 김정일 시대가 끝났고, 이제 막 후계자로 선정되어 2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김정은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이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김정은 시대'를 예측해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의 북한은 어디로 갈까?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은 과연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선군 정치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현재의 북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어떤 이는 북한이 김정은을 '북한의 덩샤오핑'으로 만들려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김정은의 노선과 방향 그리고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김정일의 선군 정치를 유지하고 계승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선군'과 '인민 생활 향상'이라는 김정일 시대의 노선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아직도 김정일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김정은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예측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모든 악의 근원으로 김정일을 지목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 대상을 김정은으로 바꾸고 있고, 김정은의 사생활을 비롯한 출생과 성장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주위를 떠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이 김정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책자로 발간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책자들의 대부분이 그간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출처 불명의 정보에 기초하여 과도한 추론을 앞세우고 있다.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김정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3대 세습으로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김정은의 이미지가 차례로 형성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한때 일본의 북한 연구가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료의 확보와 제도적인 제약이 적었던 일본의 학자들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자료에 바탕을 두고 북한 연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와다 하루키, 스즈키 마사유키, 다사이 다카시, 히로이와 순지, 오코노기 마사오 등은 한국의 학자들도 즐겨보았던 북한 연구의 선구자들이었고, 많은 한국의 학자들이 북한 연구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였다.

나 역시 대학원에서 북한 연구를 시작할 무렵 잘 모르는 일본어를 해석하기 위해 사전을 옆에 끼고 이들의 논문을 끙끙거리면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북한 연구자들이 일본어를 말하지는 못하면서도, 해석은 기가 막히게 잘했던 것 역시 이들의 논문과 일본어 서적을 보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일본을 통해 북한 관련 자료를 구하고, 해석해야 했던 시대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단지 북한 연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랬던 일본의 북한 연구가 어느 순간부터 시들해졌고, 뛰어난 연구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이른바 '황색 저널리즘'에 의해 북한이 포장되고, 연구가 선정적인 기사로 대체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일본에는 뛰어난 북한 연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참조할 만한 북한 연구 성과가 없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평가이다. 거꾸로 한국의 북한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단한 발전을 거듭했지만, 최근에 들어와 지나치게 '공학적' 연구–구조 분석과 학술적 평가가 아닌 현안에 대한 정책 지향적인 연구를 지칭한다–가 압도하고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김정은 체제>(히라이 히사시 지음, 백계문·이용빈 옮김, 한울 펴냄). ⓒ한울
일본의 북한 연구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 한국의 민주화 등에 연관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기자로서 북한 관련 정보를 오랫동안 축적하고 나름대로의 시각을 정리하면서 전문가로 성장해 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정은 체제>(백계문·이용빈 옮김, 한울 펴냄)를 쓴 히라이 히사시 역시 이런 유에 속하는 북한 전문가이자 동시에 한반도 전문 기자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만 약 14년간 근무했고, 베이징 특파원으로 4년을 근무하면서 한국, 중국, 북한에 대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이번 책은 북한에 대한 시각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예측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시기적으로 딱 어울리는 책이다.

김정일의 죽음과 거의 동시에 출간된 그의 책이 이렇게 빨리 번역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김정일의 사망 충격과 김정은의 때 이른 등판이라는 급격한 정세의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이와나미쇼텐에서 2011년 출간되었고, 원제는 "북조선의 지도 체제와 후계 :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北朝鮮の指導体制と後繼 : 金正日から金正恩へ)"이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김정일 체제의 분석에 더욱 가깝다. 그리고 2010년 등장한 김정은을 둘러싼 북한의 권력 엘리트의 동향과 북한이 안고 있는 내부적, 외부적 문제와 과제 등을 지적하고, 앞으로의 바람 등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13개 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북한 관련 정보 특히, 북한 엘리트의 변동에 대해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에서 김정은 시대로 넘어오면서 주목되는 권력 엘리트에 대해서 서열과 주요 직위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의 축적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로서 오랫동안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또 여타의 김정은 관련 서적과 달리 김정은의 사생활과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북한의 권력 구조와 역사적인 변천의 과정을 자신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의 연장선에서 김정은 체제의 등장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은에 대해 '뭔가'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김정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김정일은 형식적으로는 세습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권력 탈취'로, 그리고 김정은은 아무런 업적과 성과도 없는 '세습'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 탈취'는 김영주와의 권력 투쟁, 김성애 등의 소위 '곁가지 제거하기' 등의 권력 투쟁의 결과물로서 해석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 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여전히 '권력 중심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의 후계자로의 부상을 권력 탈취의 결과로 보는 것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고, 일부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그와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것임이 논증되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 투쟁'이라는 낡은 도식으로 김정은 후계 체제의 형성과 비교하는 것은 북한의 후계 체제의 역사에 대한 너무나 단순한 분석이거나 해석의 오류일 것이다.

이러한 권력 투쟁의 과정으로써 북한의 후계 체제 형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권력을 운영한 것 역시 아버지 김일성이 중앙군사위원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방위원회를 활용했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권력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객관적 상황, '선군 정치'가 등장하게 된 배경 이 모든 것이 권력의 공고화라는 한 가지로만 설명되어야 하고, 그 목적을 위해 탄생한 것이 된다.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곳곳에서 보이는 권력 중심적 접근은 음모와 무자비함 혹은 계책을 통해 권력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방식과 유사하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 혹은 음모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갔는가? 그렇다면 김정은은?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김정일이 끝까지 자신의 직책과 권력을 김정은에게 이양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흔히 말하는 '권력 누수'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설명된다. 후계자로 선정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양하지 않았다? 논리적 모순 아닌가? 김정은은 김정일처럼 권력 투쟁 끝에 획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인 독재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선을 제시하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는 다른 노선을 제시할 수 있었는가? 노선과 정책은 시대적 환경과 해결해야 할 과제, 대내외적 정세 속에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또 북한의 역사는 그러한 변화의 역사이기도 했다. 문제는 끝까지 '주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북한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이념과 노선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틀 안에서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지금의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의 노선을 계승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을 것이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과 노선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 투쟁의 결과로 획득한 권력이 아니기에 노선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은 결국 북한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해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북한이 안고 있는 과제의 해결과 '선군에서 선민으로'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논리적 모순일 수밖에 없다. 노선의 변화 없이 과제의 해결과 변화를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이 책은 북한이 지향하고 있는 강성 대국 건설, 김일성-김정일의 통치 스타일, 그의 주변 엘리트, 정세, 북한 체제의 메커니즘 등 여러 내용들이 김정은 후계 체제와 관련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김정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혹은 북한의 권력 이야기로만 일관하고 있는 여타의 책들과는 구분된다. 충실한 자료의 수집과 활용 그리고 지은이의 개인적 바람까지 합쳐져서 소박하면서도 성실한 분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김정은 연구서라기보다는 김일성에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권력의 속성과 연결 지어 해석하고, 지나친 권력 이야기로만 되돌아가는 모습은 지극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북한 사회를 분석, 평가,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지은이가 마지막에 북한과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우리로서는 좋은 이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할 우리 공동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조그만 사건에 대한 기자의 예리한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 2010년의 당 대표자회 연기의 배경이라든가, 우리에게 프룬제 사건으로 알려진 군부 쿠데타 음모라든가 등등의 이야기는 기자의 관찰과 조사 그리고 분석으로써 흥미롭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을 던져준다. 나 역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의 권력 중심적 접근에 대해 비판했지만 바로 지금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권력'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제는 권력인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 앞으로 북한 사회를 결정짓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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