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운동, 그 불편한 진실

[김성희의 '뒤적뒤적'] 막사이너·미에르쉬의 <오해와 오류의 환경 신화>

출판 시장에도 음모론이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실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기득권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썩 잘 쓰인 책이 절판된 것을 볼 때면 '어떤 거대 세력-이건 권력이나 금력만 뜻하는 건 아니다-이 책의 판매를 막은 것 아냐'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이를 테면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원윤수·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 경우가 그렇다. 이는 파리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자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인 지은이가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 보도 행태를 비판한 책이다. '정말 이럴까' 싶은 사례도 적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탄탄해 현대 언론 비평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한데 2000년 나온 번역판은 인터넷 서점에서조차 품절 상태다. 책 성격으로 보아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어렵지만 스테디셀러는 되었으면 싶은데 절판이 된 듯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음모론'까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일까.

<오해와 오류의 환경 신화>(디르크 막사이너·미하엘 미에르쉬 지음, 박계수·황선애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을 뒤적이며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 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임원실 옆 책장에 굴러다니던 책을,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비서의 말에 냉큼 들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은 그간의 홀대로 뒤틀려 있었고 표지마저 바랜 상태여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책꽂이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뒤늦게 이를 펼쳐든 계기는 최근 나온 요제프 라이히홀프의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박병화 옮김, 이랑 펴냄)다. 진화론에 근거해서 인간과 동식물에 관한 51개의 질문을 풀어간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거대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개보다도 느리게 뛰었다든가, 새의 깃털은 몸속에서 형성된 황화수소 같은 유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쓰레기 배출 장치'라는 설명이 그렇다. 또 인간만이 빨간 색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 인간 두뇌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0퍼센트나 소비하기에 원활한 두뇌 활동을 위해서는 양질의 영양 보충이 필수적이었기에 육식은 인류 진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 내용보다 지은이의 독특한 환경론이 눈길을 끈다. 책에서도 "열대우림이 계속 사라진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기후 변화 때문에 멸종되는 생물은 없을 것" 등 '주류' 환경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책머리의 추천의 글에 실린 그의 이력을 보면 한층 더 나간다. 종의 다양성은 영양 과잉이 아니라 영양 결핍에서 온다, 소와 돼지가 열대우림을 갉아먹고 있다, 환경 보호론자는 진화를 거부하는 정적(靜的)인 자연관을 가졌다, 지구 온난화가 반드시 재앙은 아니다 등이 그렇다.

생물학자이자 현재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독일 의장단의 일원으로 독일의 환경 운동 주역 중 한 명인 그의 이력을 보고 있자니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과학적인 진정성과는 도저히 일치할 수 없는 자연 및 환경 보호의 이데올로기화"라며 녹색 세계관이 종교가 되었다고 비판한다니 더 그랬다. 그러다가 추천 글을 쓴 이가 <생태학 오류 사전>을 내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구절을 접하고는 그 번역판인 <오해와 오류의 환경 신화>를 펼쳤다.

▲ <오해와 오류의 환경 신화>(디르크 막사이너·미하엘 미에르쉬 지음, 박계수·황선애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랜덤하우스코리아
독일의 과학저널리스트들이 쓴 이 책은 과학 연구나 실증 조사를 다룬 자료와 기사를 폭넓게 인용해 제목 그대로 환경 운동의 허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에너지, 유전공학, 기후는 물론 인구와 경제까지 15개 부문으로 나눠 각각의 관심 사항을 풀이하는데 내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한 구성이다.

예를 들어 10장 '운송 수단'에는 '전기 자동차가 더 환경 친화적이다'란 항목을 보자. 발전을 위해 배출되는 가스까지 고려한다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지역의 오염도만 고려하면 전기 자동차 운행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지만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짧은 거리를 자주 주행할 경우에만 전기 자동차에 이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보편적인 '믿음'을 깨뜨리는 설명이 수두룩하다.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서 백혈병이 집단으로 발병한다'도 근거가 없는 믿음의 하나다. 지은이들은 1989년 이후 독일 엘베 강가의 크뤼멜 핵발전소 인근의 저지대에서 보고된 열한 건의 백혈병 사례 조사 결과를 이렇게 전한다.

"백혈병 환자의 지역적 집중, 이른바 '군집'은 특별한 것이 아니며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일어난다." "핵발전소에 비판적인 생태 연구소의 공식 조사 결과 '인과관계를 유추해 낼 수 없었다." "자연 환경을 통한 방사능 오염은 핵발전소의 일반적 가동으로 인한 방사능 노출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유전 공학적으로 변형된 식품이 건강을 위협한다'는 어떤가. 지은이들은 유전 물질의 섭취에 특별한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스테이크의 모든 세포와 함께 우리는 소의 유전 물질을 맛있게 먹으며, 인간들은 식사 때마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 물질을 먹는다는 것이다. 매일 대략 1그램 정도의 디옥시리보핵산을 섭취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유전 물질에 소, 비둘기, 대황의 유전자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인간의 소화 기관에서 분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환경의 가장 큰 적이다'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들은 구 소련과 루마니아, 동독의 사례를 들며 최악의 환경 재난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사유지에 속한 자연 보호 구역의 실상을 보여주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환경보호 실패 사례가 많지만 길이 잘 든 자본주의는 환경 관심사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핵발전소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 농업에서 살충제와 화학 비료 사용 금지를 요구하면서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유전 공학을 금기시하는 것 등은 모순이다. 또 자원 고갈, 인구 폭발, 지구 온난화 등 '종말론'의 시나리오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학자가 '문제'를 발견하면, 언론이 이를 단순화해 부풀리고, 환경 보호론자들이 등장해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려내면 관료들이 대책 회의를 연다. 다시 회의론자들이 나타나 논란이 시작되어 최초의 진술이 검증되면 사람들은 조용히, 주제와 결별하지만 곧이어 새로운 '종말론'이 등장하는 식이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은이들은 "자신이 진보적이고 박해받는 소수에 속한다는 믿음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들이 환경 운동에만 날을 세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술처럼 믿고 있는 환경과 생태에 관한 오해도 함께 분석해 진정한 환경 보호를 위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참고로 이 책은 독일에서 1998년 출간됐다. 라이히홀프와 더불어 이 책의 지은이들은 독일에서 한때 환경 운동의 과녁이 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에르시는 지금도 언론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나름 설득력과 진정성이 있다는 방증 아닐까. 맹목적 환경 지상주의, 낭만적 녹색 세계관에 젖은 이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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