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없는' 생지옥을 산다는 것은…

[프레시안 books]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장기 비상시대>

세계 자본주의의 금융 심장부인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이른바 '점령' 시위가 바야흐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분노하라! 그리고 점령하라! 탐욕과 부패로 찌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신자유주의 사회질서의 야만적인 횡포에 짓눌려온 '99퍼센트'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저항의 함성이다. 이 시위의 물결이 어디로 얼마만큼 확산될지, 얼마나 지속되고 고양될지,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점령 시위가 현 단계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극도의 양극화와 불평등, 민주주의와 삶의 전면적 파괴를 이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한 투쟁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상위 극소수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반면에 나머지 절대 다수 사람들은 빈곤과 실업, 차별과 소외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불안과 공포와 굴욕의 삶을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화 시스템은 이제 끝나야 한다는 것.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장기 비상시대>(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2011)에 따르면, 목하 이러한 세상은 급속하게 끝나가고 있다. 불의와 불평등을 혐오하고 인간의 참된 존엄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기뻐하고 반길 일이다. 한데 과연 그렇기만 한 걸까?

세계화 경제와 석유 시대의 동시 종말

▲ <장기 비상시대>(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이 책은 이렇게 주장한다. 세계화 경제는 석유 시대의 산물이자 석유 신화의 논리적·현실적 절정이다.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전제로 굴러가는 이 시스템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고,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체제이다. 또 권력만 휘두를 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기업들이 사업 활동의 비용은 사회화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는 체제이다.

이런 세계화 경제를 가능케 한 가장 핵심적인 토대는 값싼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 요컨대 석유 문명의 종말과 그것의 필연적인 귀결인 세계화 경제의 붕괴가 서로 겹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도대체 석유가 무엇이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가. 석유가 부리는 갖가지 신묘한 '마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열쇳말이 바로 석유인 만큼 여기서 잠깐 확인하고 넘어가자.

단순하게 말하면 석유란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이자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석유는 실로 놀라운 물질이다. 무게와 부피에 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고, 운반과 저장도 쉽다. 플라스틱, 페인트, 의약품, 옷감, 농약, 윤활유 등을 비롯해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수많은 생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군다나 제법 오랫동안 값도 싸고 양도 많았다. 그리하여 석유는 석유 시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거의 신에 가까운 능력을 인류에게 선사해주었다.

그렇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우리가 하늘을 맘껏 날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편리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어둠이 지배하는 밤의 절대적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었고, 추위와 더위를 손쉽게 이길 수 있게 해주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럼으로써 화석연료는 산업화 시대를 사는 사람 한 명에게 100명의 노예를 마음대로 계속 부리는 것과 맞먹는 능력을 제공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현대 생활이라 부르는 조건의 특징이라 할 만한 모든 것은, 우리가 값싼 화석연료를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얼핏 석유와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농업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세계 곡물 생산량을 250퍼센트나 증가시켰다는 '녹색 혁명'을 보라.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각종 농기계와 관개와 수송에 값싼 석유를 막대하게 쏟아 붓지 못한다면, 석유를 원료로 하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없다면, 천연가스로 만든 화학비료가 없다면, '녹색 혁명'은 애당초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 농업은 석유 농업이고,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석유를 소비하는 것과 같은 행위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석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이 책은 "세계는 불타는 집을 막 나서서 몽유병 환자처럼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그 "벼랑 너머에 지금껏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적·정치적 혼란의 심연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다가오는 이 전례 없는 고난과 혼돈의 시기가 바로 책의 제목인 '장기 비상시대'(Long Emergency)이다. 그러니까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 지나 석유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비상하고 긴급한 사태가 오랫동안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석유가 부족해지고 바닥나는 비상사태가 오히려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되는 시기가 곧 장기 비상시대라는 것이다.

앞에서 자본주의 세계화 경제가 끝나가는 것이 마냥 기뻐하고 반길 일이기만 한가, 라고 약간의 토를 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의하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체제와 질서가 물러가는 것 자체는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장기 비상시대로 이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석유 없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으로, 석유 문명의 다채로운 역사와 함의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사실 자원 고갈이나 석유 문명의 종말을 다룬 책들은 이미 숱하게 나와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상당 부분도 에너지 문제나 생태 위기에 어지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인상 깊은 것은 크게 세 가지 대목에서다. 첫 번째는 특이하고 기발하게도, 석유 정점 이후 펼쳐질 장기 비상시대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머릿속 공상이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한 전망을 펼쳐 보이고 있다. 두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석유의 대체재이자 에너지 위기의 대안으로 여기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한계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지역과 농업의 중요성을 각별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 비상시대'를 산다는 것

먼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장기 비상시대를 한번 들여다보자. 장기 비상시대는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을 지나면서 시작되는데, 원서가 2005년에 출판된 이 책은 석유 생산 정점의 시기를 2000년에서 2008년 사이로 본다. 실제로 저자는 남은 석유의 총량은 앞으로 37년(2005년 기준) 사용치에 불과하다고 추정하면서 "장기 비상시대는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석유 생산 정점이란 이 세상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시점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이 절반은 가장 취하기 쉬웠던 절반,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절반, 가장 질 좋고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절반이라는 점이다. 이제 남아 있는 석유는 북극이나 바다 밑 깊숙한 곳과 같이 추출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드는 곳에 묻혀 있다. 미국과 이슬람의 관계에서 보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보유한 곳"에 묻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격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리고 현대 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자 토대였던 석유가 사라지면서 기존의 모든 사회·경제·정치 시스템과 생활방식이 붕괴하리라는 것 또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이 책이 전망하는 이러한 장기 비상시대의 실제 모습은 어떠할까? 책은 산업 성장의 중단과 생활수준의 급격한 저하, 편의와 안락의 상실, 수명 단축, 식량 생산과 인구의 감소, 정치적 혼란, 군사 분쟁 등을 장기 비상시대의 주요 양상으로 꼽는다. 이는 곧, 포만감 대신에 배고픔이, 따뜻함 대신에 추위가, 여가 대신에 고역이, 건강 대신에 아픔이, 평화 대신에 폭력이 기승을 부리게 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들이 팽창하고 성장해야만 지속될 수 있는 현대 산업문명에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위기가 들이닥침으로써 생존 자체가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압도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책은 이런 전망을 경제, 상업, 도시, 교통, 주거,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과 분야별로 세분해 다시금 상술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에너지 공급이 줄어듦으로써 생활이 갈수록 지역화되고 그 규모가 축소될 것이며, 식량 생산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할 것이다. 특히 화석연료 고갈이 기후 변화와 겹침으로써 세계 식량 공급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며, 그 결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그 중 다수는 죽게 될 것이다. 거대 글로벌 독점 기업과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 등은 시들시들해지다 사라질 것이며, 일반 사람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수많은 상품들 없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 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생활이 중심이 될 것이며, 기존의 자동차 및 고속도로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 비상시대는 고통과 불편과 결핍만이 지배하는 '지옥'이 될 것인가. 이 책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크나큰 재난과 어둠의 터널을 통과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가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새로운 문명의 창조로 나아갈 가능성의 문을 완전히 닫을 필요는 없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지역'과 '농업'이다. 장기 비상시대에는 사회 경제와 일상적 삶 전반이 '지역'과 '농업' 중심으로 재편되리라는 것이 이 책의 예측이거니와,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석유가 없다면 장거리 수송이나 무역이나 이동에 토대를 두고 있던 기존의 시스템과 생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니, 사람들은 지역 중심의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또한 그간 인류를 먹여 살렸던 석유 농업이 몰락하고 생존 자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될 것이니,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이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활동이 될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희망과 재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예를 들어, 기존의 석유 농업을 대신하는 농업 재편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농사일의 상당 부분이 협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보다 작은 규모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석유와 기계가 아닌 인간의 노동으로 농업이 재구성되리라는 것이다. 그리 된다면 이웃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나 전통적 문화를 부활시킬 바탕, 곧 우정과 연대와 호혜의 사회적 연결망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사태의 향방이 이런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간다면 "공동체적인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 친근하게 어울려 일하게 될 것이며, 정말 중요한 일에 동참하게 되고, 주어지는 오락거리를 수동적으로 즐기기보다는 의미 있는 사회 행사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인류는 장기 비상시대라는 사상 초유의 고난을 겪고서야 비로소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때에야 비로소 '인간'과 '자연'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하면서 참된 자유와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석유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산업 문명이 퍼뜨려온 '무한 성장은 가능하다', '행복의 척도는 소유와 소비다',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다' 등과 같은 갖가지 미망과 환상들 또한 이런 과정 속에서 사멸해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독백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천 년 쯤 뒤에는 (…) 새롭고 신나는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분명 하느님도 스스로를 축복하사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란 신비 그 자체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서 이리로 왔는지는 알 수 있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얘기를 돌리자. 앞서도 잠깐 말했듯이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포함한 대체 에너지에 대한 입장이다. 저자의 입장은 꽤 단호하다. 수소, 태양광, 풍력, 에탄올 등과 같은 "대체 에너지는 어떤 식의 조합으로도 지금 우리가 석유 체제 하에서 익숙해진 생활방식을 유지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대부분이 '화석연료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들어 수소 경제에 대한 환상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수소는 연료라기보다는 에너지 '운반체'(carrier)이다. 더구나 수소 자체가 생산해내는 에너지보다 수소를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가 더 많다. 저장과 수송도 매우 어렵다. 태양광은 어떤가? 태양광이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배터리, 전지판, 전자장치, 배선, 플라스틱 같은 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모두 광물 채굴과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산업적 생산 활동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풍력은? 풍력 터빈 또한 전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하지만 터빈 부품을 생산하려면 화석연료 사용이 불가피하고, 발전소 터를 닦고 장비를 옮겨 오고 설비를 갖추는 데에도 석유로 움직이는 중장비를 동원해야 한다. 석유와 천연가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산업농업 시스템 하에서 만들어지는 에탄올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들 대체 에너지들은 화석연료 경제의 부속물 정도이거나, 화석연료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대체물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체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여 석유를 대신하자는 것은 순진한 환상이거나 어리석은 공상일 뿐이다. 이처럼 구조적인 체제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고서 '석유 이후'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 책의 경고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덮어놓고 구세주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경고가 되고 있다.

달콤한 석유 문명의 중독에서 깨어나야

이 책은 그다지 새롭지 않은 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물론 여러 대목에서 기존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책들과 내용이 겹치기는 한다. 그러나 '장기 비상시대'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석유 시대 이후'의 인류와 이 세상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소상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심각한 위기가 머지않아 닥치리라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뭐, 어떻게 되겠지',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등과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고통스럽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부닥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거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드리우는 편안한 그늘 아래 누워 어리석은 백일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달콤한 석유 문명에 뼛속깊이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을 흔들어 깨우기에 맞춤할 듯싶다.

사족 같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 두어 가지만 지적해두자. 하나는 책 내용 전반이 미국 사례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약간 실감으로 와 닿지 않는 대목들이 더러 눈에 띈다. 물론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본질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은 문제와 성격을 공유하고 있기에 이 책의 논의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리고 이건 이 책이 번역서인 이상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컨대 이런 궁금증이 인다. 우리나라가 경험할 장기 비상시대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우리의 경우는 석유 문명 일반의 문제와 함께 좁은 국토와 인구 과밀, 수도권 일극 집중, 대외 종속적인 경제 구조, 에너지의 극단적인 해외 의존과 지나치게 높은 원자력 발전 비중, 북한의 존재, 열강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 등과 같은 여러 특수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장기 비상시대를 다루는 책은 국내 저자에 의해서 씌어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전망에 따른 해법에 대한 논의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이 책이 논하는 장기 비상시대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귀결로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고통과 희생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장기 비상시대에 가능한 한 '연착륙'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책은 별다른 논의를 펼치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까지 이 책이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책이 내놓는 장기 비상시대의 전망에 대해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건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설사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의 주장을 비관론에 사로잡힌 종말론자의 상투적인 '예언'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닐 듯하다.

위기를 제대로 그리고 온전히 알아차리는 건 그 위기가 지나서일 때가 많고, 각별히 석유 고갈과 석유 시대의 운명은 더욱 그러하다(이것을 책에서는 '백미러 효과'라 부르는데, 이는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난 후에 뒤를 돌아보아야 그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종말, 멸종, 재앙 따위의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석유문명이 앞으로도 영원히 흥청망청 번창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전망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더라도, 석유 문명과 '석유 너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대비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책의 '예언'이 과장되었다거나 빗나갈지도 모른다거나 등과 같은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이 책처럼 '자극'과 '경고'를 보내는 신호음이 끊임없이 울리는 덕분에 우리는 상황을 더욱 깊이 성찰하게 되고, 위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며, 파국에 앞서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법이다. 무엇보다, 만약에 아무런 성찰도 대응도 노력도 없이 태평하게 살다가 '예언'이 진짜로 현실이 된다면 그때 가서 후회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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