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짝짓기', 그 불꽃 같은 순간!

[프레시안 books] 한윤정의 <명작을 읽을 권리>

책이나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가장 재미있는 방식은, 유사한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는 것이다. 혹시 나만 재미있는 건가 잠깐 고민했는데, 광고나 홍보에서도 이런 방법을 많이 쓰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가령 에이전시 신간 소개에서도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디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보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에 버금가는 책"이라고 하면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한 비교 대상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고독할 정도로 막막한 우주가 제멋대로 생긴 게 아니라 어떤 존재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는 가설이 전하는 위로(가 주는 만족감)에 맞먹는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텍스트를 이리 엮고 저리 엮은 한윤정의 <명작을 읽을 권리>(어바웃어북 펴냄)는 구조 자체부터 나 같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제목에서는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도 제목 덕에 더 대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 같으니 일단 넘어가자!)

그렇다면, 적절한 비교 대상은 어떻게 찾을까? 소재, 주제나 문제의식, 배경이나 맥락의 친연성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테다. 그런 평범한 기준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기준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관람 포인트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원작 소설과 영화라는 단순 명확한 관계를 근거로 <댈러웨이 부인>(버지니아 울프 지음)과 <디아워스>(마이크 커닝햄 지음 / 스티븐 달드리 감독)를 같이 읽고, 내용보다는 제목이나 원작자의 의도에서 연관성이 뚜렷한 <1984>(조지 오웰 지음)와 <1Q8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를 비교한다. 또 이청준의 작품을 영화화했다는 명확한 공통점과 둘 다 '용서'의 다른 방식을 다룬다는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근거로 <서편제>(임권택 감독)와 <밀양>(이창동 감독)을 같이 읽는다. (기계적인 비교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원작자의 창작 배경을 들으니 은근히 설득력 있다.)

"두 영화가 나온 시기는 14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원작 소설은 비슷한 기간에 쓰였다. 이청준은 유신 말기에 모든 비판적 발언이 막혀 있는 정치 상황을 경험하면서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같은 게 있다는 생각으로 <서편제>를 썼다. 스스로도 정서가 너무 메말라 정의 씨앗자루를 남기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또 제5공화국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에 발표된 <벌레 이야기>는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절망감을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현실을 곧바로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58쪽)

▲ <명작을 읽을 권리>(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펴냄). ⓒ어바웃어북
그 외에도 '수도자와 소년'을 다룬 작품으로 <오세암>(정채봉 지음), <마르셀리노의 기적>(라디슬라호 바흐다 감독), <봄, 여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을, 소멸하는 계급인 농민을 그린 작품으로 <워낭소리>(이충렬 감독)와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존 버거 지음)를 나란히 놓는다. 또 '강남 형성사'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강내희의 문화 비평서 <압구정동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하의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와 이를 영화화한 <말죽거리 잔혹사>, <낭만적 사랑과 사회>(정이현 지음), <강남몽>(황석영 지음)까지를 줄줄이 엮어낸다.

'자이니치'를 다룬 텍스트,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다룬 텍스트 등 책이 호출하는 소재, 주제, 배경들은 차례 상만큼이나 풍성하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목차다. 본문은 그 목차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일 뿐이니까.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고 효과적이었던 비교는 <중국인 거리>(오정희 지음)와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를 연결한 첫 번째 꼭지였다. (나도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유년기 몇 년을 그 근방에서 보냈기에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이 발산하는 빛깔과 냄새, 감정들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인천의 불안한 소녀들'이라는 소재와 배경이 두 작품을 이어준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잊어버린 탓도 있지만 영화 혼자서는 충분히 각인시키지 못했던 것 같은 배경 '인천'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환기되었다. 그러자 영화의 장면들이 더 생생히 이해되고 <중국인 거리>와의 연결도 한층 긴밀하게 읽혔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심층에 <중국인 거리>라는 한 겹이 깔리면서 이 영화는 확실히 더 깊고 입체적인 텍스트로 발전한다.

"일제의 수탈 정책에 따라 항구이자 공단으로 개발된 인천은 중국과 가까워서 일찌감치 차이나타운이 형성됐고, 공산화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건너오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이곳은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온 뜨내기와 이방인들의 땅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교차한다. 항구와 신공항이 자리 잡은 인천은 미지의 장소로 떠나는 출발지이자 여러 민족과 문화가 맞부딪치는 경계지대인 것이다." (26쪽)

"분명한 사실은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경계 지대로서 인천의 아우라가 오정희의 조숙한 소녀, 정재은의 고양이 같은 숙녀들을 탄생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그녀들이 여전히 복닥거리며 살아간다. 도시는 급격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소외된 채 불안해한다. 그녀들이 맡긴 길고양이 또한." (30쪽)

다양한 작가들이 왜 같은 소재와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그것들을 각각 어떻게 다르게 해석 내지 소화하고 있는지, 그중 어떤 것이 가장 그럴듯한지. 이런 지점에 주목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라쇼몽>을 보는 듯한 즐거움도 따른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다. 명료한 줄거리 요약이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비해 정작 본격적인 비교는 너무 짧아 서운한 경우가 있었다. 또 이 책의 저자 자신은 비교를 통해 어떤 통찰에 도달했는지가 좀더 드러났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독자들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비교 항들을 보완해 보고 싶고(가령 성장 소설을 다룬 장에 <완득이>(김려령 지음)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지음)을 추가할 수도 있고), 아예 자기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나도 몇 개 만들어봤는데 역시 재미있다! 제목에 '모터사이클'이 들어간다는 누가 뭐래도 당당한 유사성 외에도 현대인의 소외된 경제 행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담긴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매튜 크로포드 지음)를 같이 읽는다든가(실제로 나는 두 책과 리처드 세넷의 <장인>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아니면 '노년'의 불안과 우울을 직시하거나 위로하는,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과 데이비드 실즈의 에세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같이 읽는다든가(시몬 드 보봐르의 <노년> 등도 추가할 수 있겠다).

리스트는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여러 텍스트를 엮어내 그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애쓰는 사이, 저 방대한 텍스트의 우주가 한층 정겹고 친근한 장소가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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