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타령만 하니, 한국사가 죽는다!"

[프레시안 books] 전호태·홍영의의<글로벌 한국사>

2007년, 2009년, 2010년에 이어 올해 또 교육 과정을 개정한다. 지난 달 역사과 교육 과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는데, 단 몇 개월 만에 개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련된 형식적 행사였다. 그런데 이번 개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불만은 유독 한 문제만 비켜갔다. 세계사와 세계사 교육.

세계사 관계자는 이미 죽어버린 세계사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자괴감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러나 방청객의 관심은 세계사를 가볍게 비켜갔다. 공청회에 대한 언론 보도조차 한국사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상황은 한국 현장에서 세계사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학생들은 세계사를 선택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세계사를 배우지 않고 학교를 졸업한다.

반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한국사를 학생들은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교의 역사 교육은 한국사 교육이라 해도 무방하다. 동북아시아 역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역사 교육 강화'라는 구호가 맹위를 떨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 교육을 곧 역사 교육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물론 <동아시아사(史)>가 새롭게 만들어졌으나, 세계사가 무너진 상황에서 선택 과목인 <동아시아사>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국사 강화, 세계사 약화라는 경향성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걸까? 이 시점에서 세계사의 의의와 가치, 역사 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개정 교육 과정에 맞춰 한국사와 세계사를 아우른 <글로벌 한국사>(전2권, 전호태·홍영의 지음, 문사철 기획, 풀빛 펴냄)는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데 유용할 듯싶다.

<글로벌 한국사>의 새로운 한국사


▲ <글로벌 한국사>(1권, 전호태 지음, 문사철 기획, 풀빛 펴냄). ⓒ풀빛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사를 뼈대로 하면서도, 한국사를 '글로벌'한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목차에서부터 기존의 한국사와 다른 모습이다.

기존 한국사 교과서는 대개 '원시 시대와 국가의 형성', '여러 나라의 성장', '삼국 시대의 전개', '통일 신라와 발해' 등의 목차로 구성되었다. 이와 달리 <글로벌 한국사>는 '인류의 탄생과 한국사의 걸음마', '제국의 시대와 고조선', '대이동의 시대와 삼국의 발전', '두 천하의 전쟁', '세계사의 대전환과 삼국 통일' 등으로 목차를 정했다.

중국의 한(漢)과 로마를 '제국의 시대', 게르만족과 5호를 '대이동의 시대' 등으로 묶어서 세계사적 상황을 정리하고 이를 한국사와 연결한 것이다. 세계사를 파편적으로 끼워 넣은 한국사 위주의 책이 아니다. <글로벌 한국사>만으로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비중을 확대하였다. 이렇게 세계사를 끌어들여 한국사를 보는 방식은 한국사의 다른 모습을 드러나게 만든다.

이런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7세기 한반도의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이다. 당,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 북방 유목 민족 등의 여러 주체들이 참여한 7세기 한반도 상황은 당연 역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교과서에서 그런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민족의 독자적인 통일 과정을 강조하면서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의 적합성과 당위성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시 상황에 개입했던 다른 주체들의 입장과 역할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맥 빠진 역사적 서술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자면, 삼국 시대의 한 축이었던 백제의 멸망을 삼천 궁녀로 알려진 의자왕의 사치와 향락, 지배층의 내분으로 정리하는 바람에 당시 긴박했던 국제적 상황에 대한 백제의 대응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히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한반도 상황에 개입했던 일본의 역할도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면모는 결국 상대 배역이나 조연들의 활약에 따라 결정되는 법이다. 이렇게 삼국 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역할만 강조하고, 다른 주체들을 지우는 방식은 오히려 한국사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물론 한국사가 자국사인 만큼 역사의 주인공은 한국일 수밖에 없다. 이 책도 서문에서 한국사를 독자적인 영역이자 세계사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7세기 한반도 상황을 주도하며, 삼국 통일을 이끌었던 신라의 역할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사적, 동아시아적 맥락 속에서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보려고 시도한다.

7세기 세계와 한반도 상황을 '세계사의 대전환과 삼국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설정하면서 크리스천과 무슬림의 시대(프랑크왕국, 이슬람의 등장, 이슬람교의 확산), 다시 열린 실크로드(세계 제국으로 성장하는 당)를 통해 세계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것은 제국으로 성장하는 당의 면모를 구체화시키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한 당의 영향력을 더 실감나게 만든다.

즉,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당의 움직임에 대응한 한반도 국가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백제의 멸망을 국내적 요인으로 한정하지 않고,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백제, 의자왕의 잘못된 판단" 등의 측면에서 바라보며, 고구려의 경우 "연전연승 고구려, 그러나 지쳤다"라거나 "사라진 동북아의 맹주" 등으로 표현하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새로운 한국사와 역사 교육

이처럼 한국사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는 다양한 논의의 생산을 촉발한다. 다시 역사 교육의 문제를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간 7세기 한반도 상황에 대한 논의는 신라의 삼국 통일이 지닌 의의와 한계를 파악하는 데 모아졌다. 한국사 서술은 거기서 신라의 삼국 통일이 지닌 당위성만을 강조했다. 마땅히 통일이 되어야 했고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니, 다른 논의를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에 당의 성립과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라는 세계사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경우, 이에 대한 한반도와 주변 국가들의 대응 전략을 놓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해보는 게 가능하다. 국제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던 백제의 외교적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천하 의식을 지녔던 고구려는 당의 성립으로 직면한 위기에서 국가적 정체성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이렇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논의가 다양해지면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 사람들이 역사를 고정된 실체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 교육의 위기, 한국사 교육의 위기는 한국사 텍스트의 위기다. 사람들이 한국사를 멀리하는 것은 결국 한국사 텍스트와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 강화는 단순히 한국사를 필수 교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을 지닌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세계사적 관점을 끌어들여 한국사를 바라보는 방식도 다양성의 한 모습일 수 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역사적 상황을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하거나, 역사적 쟁점을 놓고 토론을 시도한다. 그러나 유독 교과서를 비롯한 텍스트는 권위적인 포즈를 취하며 변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글로벌 한국사>는 기존의 한국사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준다. 일단 역사를 구성해야할 것으로 여긴다면, 역사와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이처럼 세계사는 한국사와 역사 교육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마치 세계사를 한국사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로벌 한국사>가 한국사를 새롭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세계사를 (한국사의 보조 수단이 아닌) 독립적이고, 맥락적으로 구성해 한국사와 연결한 것에서 기인했다.

이것은 기존의 여러 시도처럼 한국사에 짧은 분량의 세계사를 단편적으로 끼워 넣은 것과 다르다. 즉, 세계사를 한국사와 같이 대등한 영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술 분량의 확대, 맥락적 흐름의 고려, 한국사와의 연결성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세계사 논의는 세계사를 한국사를 위한 수단이 아닌 역사 교육의 한 영역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앞으로 세계사와 세계사 교육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야 할 것인데, 문제는 논의의 방향이다. 한국사와 세계사 간의 연결성을 통해 의의를 파악하려는 게 중요하다. 세계사 교육을 강화하더라도 또 다시 한국사와 별개의 것처럼 놓인다면 자국사인 한국사 위주의 역사 교육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로벌 한국사>의 한계를 하나 지적하자. 7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세계사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것과 달리, 고려사 서술에서는 고려의 내적 발전과 주체성만 강조한 결과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움직였던 고려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세계사와 한국사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뜻일 테다.

<글로벌 한국사>는 세계사의 의미를 한국사 및 우리 역사 교육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또 학생과 대중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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