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압수하는 만화? 아니, 부러워하는 만화!

[프레시안 books]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과거 역사를 많이 알면 오늘 현실을 더 잘 볼 수 있을까? 오늘 현실에 깊이 고민하는 것이 과거 역사를 더 잘 보게 해주는 게 아닐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비아북 펴냄)를 읽다 문득 먼저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새삼스레? 모든 독서가 그렇듯 내 안의 고민이 내 밖의 책과 만나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무늬이겠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드는 자괴감, 아니 이건 좀 과잉된 제스처인 것 같고, 그냥 아이들에 대한 어떤 미안함 같은 거, 그런 게 있다. 역사, 학교 현실에서 마이너 교과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회적 목소리로는 역사의 중요성을 크게들 이야기하고 있다. (진심을 담았든, 그저 제스처이든. 그 차이가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때는, 스물 무렵에는 역사는 과학이라고, 과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변화의 이론과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또한 실천의 나침반 같은 것이라고,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해 주는 이야기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정도로도 역사는 충분히 우리 삶에, 우리 사회에 가치 있는 배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역사가 제대로 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가, 학교 안에서, 라고 물으면 참 대답이 궁해지곤 한다.

▲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김태권 지음, 비아북 펴냄). ⓒ비아북
그래서 부럽다, 이 만화가, 이 만화가가. 재미와 의미, 그 잡기 힘든 두 마리를 동시에 잡았기 때문이다. 만화가 원래 재미있게 사람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 매체이지만, 사실 제대로 재미있기가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다루는 주제가 제법 무거운 역사라면, 나름의 의미를 잡으려다가 의미는커녕 재미까지 놓쳐버리기 쉽다.

그런데 이 만화, 이 만화가는 1000년 전 십자군이라는, 제법 무거운 역사를 우리 앞에 한번 잡으면 손 놓기 힘들 재미와 함께, 또 우리가 갖고 있는 편향된 상식을 뒤엎으며 풀어놓는다. 유치한 듯 싱싱한 개그에 웃음 짓다, 처절한 인간의 역사의 진면목에 맞닥뜨리며 씁쓸한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사람들이 학교에서 그렇게 지겹게 생각하던 역사를 그래도 좋아하고 나름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역사 이야기들 덕분일 것이다.

그래도 좀 더 따져 물어야 할 것들이 더 있다. 배움의 시작은 제대로 물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 또 묻자. 왜 작가는 '십자군 이야기'를 지금 우리에게 풀어놓고 있는 걸까? 아니, 우리가 지금 굳이 1000년 전 '십자군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을 때 나왔던 1, 2권에 이어 이번에 3권, 뒤로도 6권까지 나올 예정이라는 <십자군 이야기>. 보통 1096년부터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하는 200년간 벌어졌다고 이야기하는 십자군 전쟁,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로는 많아야 서너 쪽짜리 이야기인데 그걸 그렇게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 있을까?

너무 생뚱맞은 질문인가. 그저 역사를 아는 게 재미있고, 십자군 역사가 흥미로우니까, 쓰고 싶으니까, 알고 싶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작가 김태권의 의도는? 이런 것 같다. <십자군 이야기>가 첫 선을 보였던 2003년이 미국의 '성전', 이라크 침략이 있었던 해라는 데 주목하면서, 개정판 '작가의 말'에 다시 인용하고 있는 초판의 '작가의 말'을 읽어보자.

"이렇듯 과거의 교훈을 되살리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폭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대중의 기억을 두려워한다. 폭력이 횡행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몸을 사리고 있다. (…) 그러나 기억의 불씨가 살아 있는 한, 기회가 올 때마다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일어서서 싸울 것이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폭력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살아남는다는 것 그 자체와 더불어, 폭력이 빼앗아갈 수 없는 가장 마지막 무기이다."

전쟁이라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장 규모 큰 폭력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적 가치관에 지배 엘리트들의 사적 이익에 대한 욕망이 더해져 '성전'이라는 허위의 가면으로 치장된 미국 정부의 이라크 침략, 그것이 1000년 전 '성전'인 십자군 전쟁과 겹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전쟁, 참 만만치 않은 주제이다. 오늘날 반전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고, 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전쟁의 불가피성이라는 오랜 관념을 제대로 비판하고 넘어서는 것, 결코 만만치 않다.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전쟁의 역사이다. 인간이 벌인 사건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고 커다란 인상과 영향을 남기는 것이 전쟁이기에 역사 속에서 주목을 받는다. 그렇기에 인류에게 전쟁이란, 어쩔 수 없는 것,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역사 수업에서 전쟁을 마주칠 때마다 곤혹스럽다. 아이들, 전쟁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재미없는 역사 수업 중에 전쟁은 조금만 살을 잘 갖다 붙이면 너무나 재미난 수업거리가 된다. 어떻게 싸웠고 어떤 전략, 어떤 무기를 써서 이겼고 하는 내용은 아이들의 흥미를 끈다. 교사로서 조금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재미난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걸 밀어내면서 전쟁이 가져온 엄청난 고통을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나아가 과연 이런 전쟁이 꼭 일어나야 했을까, 그 배경과 과정은 정말 불가피한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수업은 그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머리만 아플 뿐.

김태권은 오늘의 전쟁을 돌아보기 위해 1000년 전 전쟁을 꼼꼼히 돌아본다. 그 꼼꼼함은 만화를 보다가 중간 중간 작은 글씨로 풀어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매 권 뒤쪽에 정리해놓은 참고 도서들, 이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 이 만화를 쓰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동로마제국의 기록부터 최근까지의 이름 있는 어지간한 역사서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꼼꼼함은 그 자체도 미덕이지만, 결국 전쟁은 우리가 꼼꼼히 살펴볼수록 그것이 결코 합리화될 수 없는 얼마나 끔찍한 만행인가를 돌아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발한다. 그리고 전쟁을 꼼꼼히 살피고 비판적으로 돌아볼수록 전쟁에서 흥미가 아니라 넘어서야 할 과제를 떠올리게 되는 경험으로 이끈다.

그런데 지나친 딴죽 걸기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런 의문이 남는다. 정말 과거 전쟁의 역사를 알면 오늘 전쟁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는 걸까? 정말 '기억은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무기'일까?

과거의 십자군 전쟁과 오늘의 미군의 이라크 침략은 겹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오늘의 전쟁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큰 맥락에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맥락으로 내려오면 그렇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진다. 모든 '역사들'은 각기 나름의 차이, 개성을 갖는다. 그 차이에서 실체를 만나고 대응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요사이 '역사는 기억(만들기)'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목소리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나름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를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은 '기억(만들기)으로서의 역사'는 어쩌면 정반대편으로부터의 요구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기억은 실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기억이 아니다. 누군가가 심어주려고 하는 기억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이 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억을 둘러싼 전쟁'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현실을 헤쳐 나갈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늘리자는 요구는 기억을 둘러싼 힘의 각축을 없는 듯이 숨기려 한다. 그래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십자군 이야기>는, 작가는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현실로 끌어올려 기억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늘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역사에 경도된 이들에겐. 오늘의 전쟁의 현실은 한 눈에 바라보기도 쉽지 않으며 그 현장 속으로 뛰어들기에도 위험하다. 과거에 놓인 역사는 그에 비해 이리 저리 돌려 볼 수 있는, 관찰이 좀 더 용이한, 그러면서 접근도 덜 위험한 대상물이다. 그것이 역사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야기가 너무 사변적으로 흘러 버린 것 같다. 앞에서 이 만화로 된 '이야기'에 칭찬을 많이 했으니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이야기하며 정리해야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는 학교 도서관에 벌써부터 꽂혀 있다. 앞으로 더 나와 다 완결되면 몇 질을 장만해 두고 싶다. 이 '이야기'가 좀 더 오래도록 읽힐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드리는 이야기이다.

3권이 새로 나온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접하면서 여전히 첫 권, 1권이 압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배 엘리트들의 행태 묘사와 그 비판, 대책 없는 욕망에 휩싸여 장정에 나서는 군중들, 그들의 끔찍한 학살과 만행 등은 십자군 전쟁의 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한다면 2권과 3권은 1차 십자군 과정, 2차 십자군 과정을 결국 인물과 몇몇 사건으로 풀어주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바라는 바는, 웃으며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작가가 개그의 욕심을 조금 벗었으면 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적절한 흥미를 북돋는 간으로서 작가의 썰렁한 듯한 개그가 나름의 장점도 있지만, 이야기의 박진감을 죽이는 면도 있다는 인상. 그리고 이 개그라는 게 지금 당장의 독자들에게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겠지만 몇 해 흐른 뒤에 그 개그 코드를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에게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쟁을 너무 박진감 있게 그려내면 그것은 전쟁에 대한 흥미를 높여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좀 더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리고 개그 대신에 좀 더 진지한 이야기들을 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참고 도서 목록에 담겨 있는 그 시대 삶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도록 속의 장면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간간히 보여준다면 이 만화에 담긴 공력을 좀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앞으로 나오게 될 전쟁의 막바지에서 과연 우리가 오늘 이 시대에 전쟁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를 이 작가가 좀 더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1권에서 갖게 된 기대 때문에 말이다. 반전 평화의 목소리가 그 어느 시대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전쟁의 끔찍함에 대한 증언, 전쟁의 명분들의 허울에 대한 고발만으로 '역사의 불가피성'에 대한 오래 된 관념을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동시에 착해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너무나 상식 같은 편견을 어떻게 넘어서서 전쟁 없는 세계, 평화의 세계에 대한 전망과 믿음을 그려낼 수 있을까. 앞으로 근간할 이야기에 여전히 기대를 가져보는 게 작가에게 너무 지나친 부담이 되지는 않으리라 믿어 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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