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은 있고, 유색인은 없는 이상한 SF!

[親Book] 낸시 파머의 <전갈의 아이>

많은 과학 소설(SF)은 미국적인 백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우주가 배경이라도 등장인물은 마일즈니 해링턴이니 하는 영어권 이름을 갖고 있고, 원서 표지의 주인공도 대개는 백인이다. SF가 시작부터 미국적인 장르였고 미국 내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재의 소비가 가능한 중산층 백인의 것이었음을 감안해도, 그것의 인종주의는 과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아시아의 유색인종으로 사는 독자의 착각이 아니다. SF는 젠더나 장애와 같은 소수자 이슈에 관해서는 무척 진보적이었지만, 인종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초기 SF 중에 흑인이 등장하거나 인종 문제를 간접적으로라도 다룬 작품은 극히 드물다. 흑인 일꾼들이 낡은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떠나가는 이야기인 래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나 흑인이 등장하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정영목 옮김, 시공사 펴냄) 정도가 그나마 유색인종을 언급한 소설로 꼽힌다.

이렇게 된 데에는 흑인 작가가 더 적었던 탓도 있겠으나, 편집과 출판 과정에도 인종주의적인 장벽이 분명히 존재했다. 흑인이자 동성애자라는 이중의 소수성을 갖고 활발히 활동해 온 작가 새뮤얼 딜레이니는 "SF계에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차별이 있다고 답하기 위해서는 차별받는 집단이 어느 정도 가시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SF계 내의 유색인종 비율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쿨'하게 답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SF계의 가장 중요한 편집자였던 존 캠밸 주니어와 딜레이니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는 어째서 인종주의가 문제조차 되지 못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네뷸러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큰 주목을 받고 있던 딜레이니는 장편 소설 <노바(NOVA)>를 완성한 후 캠밸에게 보냈다. 그러나 캠밸은 "독자들이 흑인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노바>의 연재를 거절했다. 캠밸은 공포 소설 작가인 딘 쿤츠에게 "흑인의 고도 기술 문명은 사회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불가능하다"는 거절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제 캠밸처럼 당당하게 인종차별적인 이유를 대는 편집자는 없겠지만, SF가 소설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만화 같은 영상물이나 이미지를 통해 전파되면서 백인을 정상성으로 받아들이는 장르의 편견은 더 악화되었다. 로버트 샌더스는 '왜 흑인들은 과학소설을 읽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새로운 독자들은 글보다 드라마나 영화로 장르를 먼저 접하는데, SF 드라마나 영화에 백인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유색인종 독자들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전갈의 아이>(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비룡소 펴냄). ⓒ비룡소

<스타워즈> 같이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백인인 고전 SF 영화는 물론이고, 21세기에 만들어지는 SF 영화에서도 유색인종은 '주인공의 조력자 2' 정도일 뿐이다. 미국인이지만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살았던 낸시 파머가 쓴 청소년 SF <전갈의 아이>(백영미 옮김, 비룡소 펴냄)가 미국적이지 않은 지명과 인명이 많이 쓰인 작품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았을 만큼(<전갈의 아이>는 남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SF는 아직까지 인종 차별 문제에 관해 미성숙하다.

시간 여행으로 노예제 시대 미국에 떨어진 현대 여성의 사투를 다룬 과학소설 <킨드레드>의 저자 옥타비아 버틀러 또한 SF에 등장하는 유색인종이 여전히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흑인 등장인물은 주인공처럼 주체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특정한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나 저자가 인종 차별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쓰인다. SF의 흑인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대상화된 '타자'인 것이다.

인간과 다른 '외계인'에 대해 그토록 말해 온 SF가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다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은 채 현실의 차별을 답습해 왔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SF 쓰고 있는 '유색인종' 입장에서 이 침묵은 안타까움 정도가 아닌 현실적인 거대한 장벽이다. 우주나 미래 배경에 한국인의 이름이 나오기만 해도 독자가 느끼는 어색함이 작가를 얼마나 고민하게 하는지!

차별은 언제나 잘 벼린 칼처럼 특정한 대상을 겨냥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은 가해자의 선의나 악의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체계이다. 인종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읽는 모든 SF는 이미 이 체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체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돌아보고, 이 차별을 어떻게 넘어설지 생각해 보는 일은 독자나 작가나 출판인들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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