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만약 당신이 커피를 연상하는 순간 조건 반사적으로 '창업'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면, '다 때려치우고 카페나 할까' 하는 생각을 달고 산다면, 이 책은 꽤 효과적인 지침서다. 또 전 세계 54개국 1만6000여 개 매장에서 매주 6000만 명 이상의 손님이 찾는 카페의 속사정이 궁금한 이도 커피 대신 이 책을 선택해봄직 하다. (심지어 이 책을 가지고 매장에 가면 같은 음료를 하나 더 준다니!)
왜냐고? 이 책 <온워드>(안진환·장세현 옮김, 8.0 펴냄)의 지은이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하워드 슐츠, 이 양반이 하는 카페가 바로 스타벅스다.
| ▲ <온워드>(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8.0 펴냄). ⓒ8.0 |
전 지구를 무대로 하는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내가 카페를 차렸던 곳 역시 골목 규모의 '혁신과 도전'은 필요했던 곳이었다. 슐츠가 "근사한 공간에서 나누는 커피 한 잔이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라고 확신"하고 스타벅스를 만들었다면, 나는 "구청 앞 공간이라면 반드시 누군가와 커피 한 잔 할 장소가 필요할 거라고 확신"하며 작은 카페를 창업했다.
당시, 내가 카페를 차렸던 곳은 10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근무하는 서울의 어느 구청 정문에서 불과 5미터(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내가 카페 문을 열기 전까지 그 곳에는 왠지 재떨이를 몇 번 갈면서 온 종일 앉아 있어야 본전을 뽑을 것 같던, 커피 맥주 모두 맛이 없던 지하 다방뿐이었다.
슐츠는 "예상 밖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자부심을 느꼈다" 이렇게 다소 난감한 자기 자랑을 하는데, 사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흡사 면소재지 버스터미널 옆과 같았던 서울 변두리 구청 앞에 카페 인테리어를 시작하자, 동네 사장들은 "이거 강남 스타일이구먼" 하고 탄성을 질렀다. 카페에 조금 식견이 있는 한 사장은 "스타벅스 같은 거구먼" 하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슐츠가 유럽의 소규모 에스프레소 바에서 영감을 얻어 전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냈다면, 지금 한국의 많은 카페 사장은 스타벅스에서 영감을 얻어 스타벅스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스타벅스 맛을 재현하고자 불철주야 혁신 또 혁신 중이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카페 담당자는 스타벅스 디자인, 스타벅스 수준, 스타벅스 납품 등을 강조한다.
사실, 스타벅스의 커피가 찬사를 들어 마땅할 정도로 맛있는지 하는 질문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최소한 한국의) 거의 모든 카페가 스타벅스를 모델로 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할 도리는 없다. 이렇게 스타벅스는 지금 가장 강력한 세계 표준 명사다.
지금 스타벅스와 견줄 수 있는 브랜드는 맥도날드 정도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한 때, 전 지구의 미국화를 상징하던 '빅맥 지수'가 얼마 전부터는 보다 고상한 '카페라떼 지수'로 진화한 것도 바야흐로 스타벅스의, 스타벅스에 의한, 스타벅스를 위한 변화였다. 만약, 지구인의 카페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면 그 책임의 8할쯤은 스타벅스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스타벅스가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 2008년 2월 26일 오후 5시 30분을 기해 미국 전역의 스타벅스가 경영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품질 개선을 모토로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희가 지금 매장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하는 짧은 고지와 함께 일제히 문을 닫았다. (맙소사. 나는 그 무렵부터 카페야말로 세상에 둘 도 없는 '블루오션'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는데!)
경영자로서 쉽지 않았을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감수했던" 그 순간을 슐츠는 이렇게 짧게 정리했다.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스타벅스 정신'의 본질을 위해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맙소사. 나는 겨우 수십만 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에 몸이 떨려 설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곤 1년 365일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
이 책은 시애틀의 작은 매장에서 카페를 시작했던 슐츠가 40년 만에 지금의 스타벅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본인이 기록한 것이다. 특히 2008년에 스타벅스가 위기를 겪고 그 위기를 극복한 과정에 대한 슐츠의 자기 고백서 성격이 짙다. '전진, 앞으로'란 뜻의 이 책 제목 "Onward"는 슐츠가 직원들에게 썼던 첫 편지의 끝인사였다.
커피의 역사는 곧 인스턴트커피의 역사였던 한국에서 봉지 커피가 아저씨 입맛으로 비하되기 시작한 건 불과 최근의 일이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불모지에서 카페를 열었던 나는 이 과정을 짧고 굵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 여직원은 테이크아웃을 꺼렸다. 남성들 특히, 나이가 좀 지긋한 상사들이 구내식당 밥값만큼 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을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 아저씨들의 입맛을 길들이는데 대략 1년쯤의 시간이 걸렸다. 다방 커피처럼, 봉지 커피처럼 단 커피를 좋아하던 구청 직원, 특히 아저씨들의 입맛이 씁쓸한 아메리카노로 바뀌는데도 역시 그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변화의 맨 앞에 스타벅스가 서 있었던 사실을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이 책은 스타벅스의 흥성쇠(興盛衰)를 다룬다. 당연하다. 아직 망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궁금증이 든다. 그럼, 망은 없을까? 세상사에 그럴 리가 있겠는가. 스타벅스가 제 아무리 '착한 마케팅'을 한들 달라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 스타벅스가 경제 위기를 딛고,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며 독특한 사회적 포지션을 유지한들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제3세계의 커피 생산 노동자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소비할 여력이 있는 세계 시민의 기호를 맞추고자 평생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노동자들이 커피를 생산하지 않고 자신과 이웃이 먹을 작물을 재배한다면 어떨까? 오늘도 슐츠의 스타벅스 제국에 꼬박꼬박 납세한 대가로 커피를 들고 있는 당신 역시 이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건 스타벅스가 책임질 일은 아니겠지만, 스타벅스가 파는 꿈을 좇아 지금 이 시간에도 카페지기의 꿈을 갖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카페는 가장 손쉬운 창업 아이템이고 그럴싸한 자영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같이 자본의 지배력이 강한 기업에 맞서 개인이 소규모로 카페를 운영하고 또 성공하기란 개천에서 용 날 확률만큼 어렵다.
스타벅스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소비자의 욕망을 동네 카페를 근근이 운영하는 개인 사업자가 채워주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스타벅스 신드롬 이후, 강남엔 한 건물 건너마다 카페가 생겨나고 있고 국내의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는 논두렁에도 매장을 열 기세로 무한 확장하고 있다. 이런 세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슐츠의 무용담으로 가득한 이 책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아니 만약, 내가 카페를 차릴 때 단 한 명의 컨설턴트라도 "저, 바다 건너 스타벅스조차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지 말입니다" 이런 얘기를 해줬더라면…. 그 때 대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을 조금 더 심사숙고했을 것 같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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