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의 아시아 위기와 2008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는 한국의 일반 대중이 세계 경제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우리 머리 위로 유럽, 미국, 중국, 일본의 이해관계가 때로는 적대적으로 때로는 협조적으로 충돌하고 조율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IMF, 제2의 브레턴우즈 체제 혹은 G7, G2, G20 그리고 글로벌 불균형이니 화폐 전쟁이니 하는 말들이 경제 전문가나 주식 투자가의 영역을 벗어나 일상의 대화에까지 등장했다.
현재 세계 경제의 격렬한 변화 가운데 가장 앞에 드러나 있는 것이 국제 금융 시스템과 통화 체제의 변화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는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목전에 진행 중인 국제 금융 시스템의 위기에 관한 책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것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최근 출간된 배리 아이켄그린의 <글로벌라이징 캐피털>(강명세 옮김, 미지북스 펴냄)은 이러한 목적에 상당 정도 부합한다.
배리 아이켄그린의 연구 영역은 주로 국제 통화 체제의 역사이다. 대표적인 연구로 1992년에 씌어진 <금족쇄 :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Golden Fetters : The Gold Standard and the Great Depression, 1919-1939)>이 있고, 국내에 번역된 것으로는 2006년에 출간된 <글로벌 불균형 :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턴우즈의 교훈(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박복영 옮김, 미지북스 펴냄)이 알려져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가 대공황에 관한 연구에서 아이켄그린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 ▲ <글로벌라이징 캐피털>(강명세 옮김,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
저자가 가리키는 국제 통화 체제란 외환 시장에 질서와 안정성을 부여하고, 국제 수지 문제의 해소를 촉진하며, 위기나 충격이 발생했을 경우 국제적 신용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국제 체제를 의미한다. 1800년대 중반부터 다루고 있으니 대체로 150여 년의 역사이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국제 금융 거래에 대한 통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 자본 통제가 광범위하게 부여되고 국제 자본의 이동이 감소했던 전간기(interwar),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0여 년 동안 자본 통제가 점차 완화되면서 국제 자본 이동이 서서히 증가하는 시기, 그리고 다시 매우 높은 자본 이동의 시대가 열린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가 포함된다. 이 시기 분류에서도 이미 암시되었듯이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국제적 자본 이동의 문제이다. 결국 "환율 변동의 확대는 국제적 자본 이동의 증가가 낳는 불가피한 결과"(328쪽)라고 보는 것이다.
역사학자답게 그에게는 150여 년의 세월이 "짧은"(13쪽) 세월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국제 통화 체제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했던 전체 역사가 이것이 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짧다고 해도 우리가 미래를 보기 위해 참조할 수 있는 과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기 역사 속에는 한국이 겪어 온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 중국이 미국과 부딪치는 환율 갈등 그리고 유럽의 재정 위기 등 현재의 문제가 국가들의 이름만 달리한 채 거듭 등장하고 있다.
한 가지 대표적 예를 들면 1950~60년대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만성적 흑자를 보고 외환 준비금을 축적했던 후발 경제는 유럽과 일본이었다. 지금의 후발 경제는 중국과 기타 아시아 국가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이 때문에 제2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말이 등장했다. 외환 준비금을 공급하고 특혜를 누리는 것은 두 시기 모두 여전히 미국이다. 당시 프랑스가 기축 통화국인 미국의 특권에 대해 가졌던 불만은 이제 중국의 입을 통해 반복된다.
물론 저자의 역사학자적 신중성은 역사의 동일한 반복에 대해 믿지 말 것을 독자에게 경고하지만, 독자는 얼마든지 프랑스의 입과 논리를 통해 중국의 논리를 구성해 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나아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부터 제2 브레턴우즈 체제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는 것도 독자의 특권이다. 일독하고 나면 최소한 국제 통화 체제와 관련된 주요 용어나 개념에 대해서는 대부분 빠뜨리지 않고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본 이동의 확대와 변동환율제를 극성스레 옹호하거나, 그 반대로 팔 걷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냥 자료에 보이는 대로 문헌이 밝히는 대로 각 시기의 체제적 모순과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정책가의 결정, 국가별 이해관계의 충돌과 조정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살았던 시대는 특별히 변덕스럽고 유난하게 느껴진다"(267쪽)는 그의 언술은 현시대의 불확실성에 떨고 있는 독자에게는 냉정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가 이 책에 담고자 했던 주제의 하나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홍기빈 옮김, 길 펴냄)에서 담고자 했던 주제 즉,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화 간의 충돌이라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환율 정책에 대해 각국 정부가 받는 사회적 압력은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와 내용에 따라 상이하다. 이 문제의식이 <글로벌라이징 캐피털>을 여느 국제경제학 교과서의 관점과 뚜렷이 차이 나게 만든다. 자유방임 시장에 대한 믿음을 역사적 경험에 귀 기울지 않는 교조적인 망상이라고 평가했던 케인스를 크게 인용해 놓은 것도 역사의 대가답다.
출판 시기상의 문제로 보이기는 하지만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모습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점은 많이 아쉽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