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는 왜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나?

[이종훈의 멘붕 스포츠]<5> 퍼기와 다른 무리뉴의 성공…"힘들면 놓아라"

데이비드 모예스 에버턴 감독이 조제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제치고 퍼거슨 감독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무리뉴 같은 스타 감독이 아니라 다소 조용하고 덜 알려진 모예스에게 6년 계약을 선물했다는 뉴스는 퍼거슨 감독의 은퇴 발표 못지않게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지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들은 "무리뉴는 왜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는가?"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무리뉴가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감독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 팀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맨유의 데이비드 길 사장 역시 "맨유의 감독은 단순히 1군 운영에 그치지 않고, 유스팀(youth team)부터 1군 팀까지 클럽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충성심이 필요하다"는 말로 에버턴에서 11년을 재직한 모예스가 무리뉴를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프리미어리그, 세리에 A, 프리메라리가, 세계 3대 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감독이자 유일한 감독'이라는 무리뉴만이 갖고 있는 빛나는 업적과 경력이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 셈이다.

▲ 맨유 감독인 퍼거슨과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뮤리뉴는 지난 2월 13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맞붙었다. 이날 경기는 1 대 1, 무승부로 끝났다. 사진 왼쪽이 퍼거슨 감독, 오른쪽이 뮤리뉴 감독. ⓒ연합뉴스


확실히 무리뉴는 한 팀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타입의 감독이 아니다. 무리뉴가 한 팀에서 감독으로 재직한 최장 기간은 38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우연이라기보다는 포기가 빠른 그의 천성과 프로팀 감독 무리뉴의 첫 번째 팀이었던 벤피카에서의 경험이 결합되면서 비롯된 산물이다.

2000년 9월 3일 벤피카와 보아비스타의 경기에서 무리뉴는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벤피카는 보아비스타에게 0-1로 패했다. 그것도 경기 시작 60초만에 골을 내주면서 말이다. 덕분에 '스페셜 원'이라고 불리며 세계 축구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무리뉴는 감독 커리어의 시작을 패배로, 그것도 가장 빨리 골을 먹고 패한 감독이라는 오명으로 장식하게 됐다.

여기에 무리뉴가 감독 데뷔전을 치른 뒤, 정확히 53일이 지난 2000년 10월 27일에 열린 벤키파 회장 선거에서 무리뉴 영입을 공공연히 비난해왔던 마누엘 빌라리뇨 후보가 승리하자 초보 감독 무리뉴의 입지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부터 무리뉴는 제 발로 이 팀을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새로운 회장에게 "1년 재계약을 해주든가, 아니면 떠나겠다"는 오만한 선언을 했다. 그리고 2000년 12월 5일 그는 벤피카 감독이 된 지 여덟 경기 만에, 기간으로는 3개월 만에 벤피카를 떠나야만 했다.

당시 무리뉴의 에이전트와 지인들은 팀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팀을 떠나겠다고 말한 그의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무리뉴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인 <Jose Mourinho - Made in Portugal>(Luis Lourenco, Dewi Lewis Media, 2004)에서 오히려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자존심이 나를 벤피카에 머무르도록 했다. 난 내가 잘한다는 것을 보이기 전까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내가 머무른 것은 실수였다. 내 나이와 경험부족에서 나온 실수였다. 당시의 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어린애였고, 그게 내가 머무른 이유다."

이후 무리뉴는 "안 되는 일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며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빨리 포기하고 떠나는 게 맞다"는 일종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무리뉴의 신념은 스스로를 평가함에 있어서 퍼거슨 감독처럼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흔히들 "성공하려면 자신의 꿈을 마음속에 명확히 새기고, 실패를 거듭해도 굴하지 말고 참고, 또 참으며 그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라고 말하며, '포기 = 실패'로 규정하고 포기를 일종의 루저들의 선택으로 간주한다. 정말로 그럴까? 무리뉴를 보면 현실은 정반대다.

무리뉴의 삶을 되돌아보면, 무리뉴의 삶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더불어 포기는 그를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무리뉴는 포르투갈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었던 팀들에서조차도 만년 후보였을 정도로 실패한 축구선수였다. 20대 초반, 그는 자신에게는 축구선수로서의 재능이 없고,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대학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할 것을 권하고, 그는 그런 어머니의 뜻에 따라 경제학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이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만다. 이후 그는 리스본 기술대학에 진학해 스포츠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체육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스코틀랜드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무리뉴는 체육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고향의 유소년 축구팀 감독으로 일하게 된다. 1992년 잉글랜드 출신의 레전드 바비 롭슨 감독이 지역 출신의 통역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는 유소년 축구 감독직을 포기하고,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통역관을 자원한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이 선택은 훗날 무리뉴에게 FC 바르셀로나 코칭스텝으로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무리뉴의 인생에 '성공'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런 무리뉴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서 단 하나의 기회에만 매달리는 어린애 같은 행동이며 스스로 성공의 기회를 좁히는 실수'다. 무리뉴에게 있어서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여는 용기있는 행동이며, 성공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스텝이다.

또, 무리뉴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현대 경영철학의 구루라고 불리는 톰 피터스는 "모든 성공의 98%는 운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성공은 좋은 시기, 적절한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루어진다. 무리뉴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좋은 시기, 적절한 장소, 좋은 사람들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만약, 무리뉴가 일찍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바비 롭슨이 포르투갈 리스본의 감독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또 만약 무리뉴가 축구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통역이라는 생소한 영역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축구감독 무리뉴는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스페셜 원' 무리뉴는 없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세운 목표와 꿈을 이루기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한 번쯤 더 도전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무리뉴를 떠올리며 포기하고 다른 가능성에 눈을 돌려라. 도전 자체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 당신에게 "1000번을 실패해도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와 같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을 전해준다면, 만약 무리뉴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면, 지금의 무리뉴는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라. 비록 무리뉴가 이런 성격 때문에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누구도 '스페셜 원' 무리뉴를 가리켜 실패한 감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포기하는 것을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스포츠평론가 이종훈은…

'무한경쟁과 승리의 스포츠'보다는 '힐링의 스포츠',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보다는 '나를 응원해주는 스포츠'에 관심이 더 많은 자칭 비주류 스포츠평론가이다.

현재 MBC 라디오 <왕상한의 세계는 우리는>과 팟캐스트 <공짜 가라사대, 오빠가 쏜다!> 등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 위의 글은 <공짜 가라사대, 오빠가 쏜다!>의 코너인 [멘붕 스포츠]를 기사로 옮긴 것입니다. <공짜 가라사대>는 여행, 레저,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상품을 공짜로 나눠주는 팟캐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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