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진정한 '루저', 월스트리트에 있다"

월스트리트 시위 한 달, 아이스크림 기업도 지지 선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오는 17일 한 달을 맞는다. 시위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서 시작됐지만 지난 5일(현지시간) 일부 '메이저 노조' 들도 이들에게 연대의 뜻을 표했고 특히 많은 지식인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유명 여배우 수잔 서랜든,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가십걸'의 펜 바드글리, 힙합 가수 탈립 콸리 등이 시위의 진원지 뉴욕의 주코티 공원을 찾아 지지 발언을 한데 이어 최근 랩퍼 칸예 웨스트, 배우 로잔느 바, 마크 러팔로 등도 시위대를 방문했다.

최근 주코티 공원을 방문한 화제의 인물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석학 슬라보예 지젝이다. 지젝은 9일 1000명의 시위대들 앞에서 가진 연설에서 "우리의 기본 메시지는 '금기는 깨졌다. 지금 우리는 가능한 가장 좋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대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곧 진짜 어려운 질문을 맞을 것이다. (…) 어떤 사회 조직이 현존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지난 세기의 대안들은 분명 작동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젝은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라 사람들을 부패하게 하는 제도"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노동과 고문을 아웃소싱한 이후, 결혼정보회사가 우리가 데이트하는 것까지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치 참여마저 아웃소싱된 것을 지켜봤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찾아오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지젝은 또 "적에 대해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우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항의를 희석시키는 거짓 동료의 잘못도 알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카페인 없는 커피를, 알콜 없는 맥주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쓸모없는 도덕적 항의자들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 등 민주당 일부에서 시위대에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신들의 지지층으로 흡수하려 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는 '루저'(패배자들)라고 불렸다. 하지만 진정한 루저들은 월스트리트에 있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들의 돈(세금) 수천 억 달러를 날리지 않았는가?"라며 "그들은 당신이 사유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투기적 행태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와 어렵게 번 사유재산을 날려 버렸다"고 금융자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외국 지도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탄압'을 비난하며 시위대에 동조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2일 현지 TV 방송에 출연해 "서방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전조"라고 말했다. 하메네이는 "미국의 자본주의는 결국 무너질 것"이라면서 "세계는 지금 역사적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하메네이의 주장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의 분석과 유사하다. 월러스틴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더 이상 하나의 (세계)체제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지난 4일 러시아 <RT> 방송이 전했다. 월러스틴은 더 나아가 지금 자본주의 이후 또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짜 정치적 투쟁은 '자본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체제'(가 무엇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시위에 일부 미국 기업이 동참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 '벤 앤드 제리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기업 이사회 명의로 '(월스트리트) 점령자들에게 :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제하의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 회사는 "우리 회사 이사회 임원들은 회사의 소명과 가치, 그리고 개인적인 신념에서 비폭력적인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주도한 여러분과 전국에서 이 시위에 연대를 표명하신 분들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면서 "(시위대가 제기한) 다음과 같은 이슈들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사회가 동의를 표한 시위대의 주장들은 아래와 같다.

△ 미국에서 현존하는 계급 간의 불평등은 비도덕적이다.
△ 미국은 실업 위기를 겪고 있다. 1억4000만 미국인이, 흑인의 20%가, 젊은이들의 25%가 실업자다.
△ 단지 먹고살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2~3개의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
△ 빚을 지지 않고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 기업들은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반면, 고용은 늘리지 않고 수 조 달러의 돈을 쌓아만 두고 있다.

'벤 앤드 제리스' 이사회는 이어 "우리는 (주류) 언론이 여러분을 무시하거나 또는 최루가스 사용 소식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절망과 어려움, 이 시위가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앞세우는 (보도) 관행에 가둘 것을 안다"면서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설립자 존 코언은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재정 건전성을 바라는 애국적 백만장자들(Patriotic Millionaires for Fiscal Strength)에도 참여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 미국 아이스크림 회사 '벤 앤드 제리스' 홈페이지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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