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장악한 '원자력 마피아' 실체…한국은 예외일까?

"후쿠시마 원전 내진설계, 안전점검 자체가 조작"

"정치인은 숨소리 빼고는 거짓"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보다 더 독한 말이 있다. "정치인은 숨소리도 거짓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좀비이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고도 "우리 원전은 안전하고, 원전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정부들에게 '좀비 정치인들이 장악한 정부'라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을 정도로 '원전 반대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물론 이들 정부들은 "이번 기회에 철저한 안전점검을 하라"는 쇼를 하며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잇따라 폭로되고 있어 원전산업에 대한 전세계 여론은 급변하고 있다.

▲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이 대량 검출되고 있다는 소식에 불안해 하는 일본 시민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전산업의 추악한 이면들이 속속 폭로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법원의 '원자로 폐쇄 명령'에 업체 적극 옹호한 일본정부

우선 17일 전문이 공개된 세계적인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일본 지방법원, 원자로 폐쇄 명령(LOCAL COURT ORDERS SHUTDOWN OF NUCLEAR REACTOR)' 제목의 미국 외교전문을 살펴보자.

핵심내용은 일본의 지방법원이 지난 2006년 이시가와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렸으나, 정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적극 옹호해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전문의 주요내용이다.

2005년 3월24일 일본 가나자와 지방법원은 호쿠리쿠 전력에 대해 시카 원자력 발전소의 2호기를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강진을 견뎌낼 능력이 부실하다는 이유다.

호쿠리쿠 전력은 즉각 항소했다. 일본 원자력산업안전청(NISA)은 문제의 원자로는 모든 철저한 안전점검 결과 안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NISA의 판단을 근거로 2호기를 폐쇄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호쿠리쿠 전력은 이 민사소송 이후 원전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기 힘들게 됐다.

앞서 일본 전역에서 모인 135명의 원고는 2호기의 시험 가동 직후인 2005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원자로는 내진설계가 불충분하며 개량형 비등형 경수로(ABWR)인 원자로 설계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소송은 문제의 원자로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무산되자 이뤄진 것이다. 원고의 주장은 일본정부의 지진연구위원회가 용역을 준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규모 7.6 이상의 지진이 원자로 부근의 44km에 달하는 오치가타 단층을 따라 발생할 확률이 2%라는 것이다. 이 원자로는 규모 6.5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원고는 2호기는 20년 전 기준에 맞춰 지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호쿠리쿠 전력은 오치가타 단층을 따라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원자로를 건설했으며, 강진이 발생하면 원고가 방사능에 노출될 가능성이 실재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ABWR이 안전하지 않다는 원고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쿠리쿠 전력의 나가하라 이사오 사장은 즉각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일본정부가 새로운 기준을 정하면 충족시킬 것을 약속했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2호기는 정부의 새로운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는 판정을 받고 2006년 3월15일 가동을 시작했다.

NISA 관계자에 따르면, 이 소송은 민사소송이어서 법원의 폐쇄명령이 즉각 이행되는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행정소송으로 정부의 규정 자체에 대해 법원이 직접 의문을 제기하는 판결이었다면 앞서 몬주 사건(일본 유일 고속증식로(FBR)로 1995년 가동 직후부터 온갖 사고와 행정소송으로 가동 중단.편집자)처럼 호쿠리쿠 전력은 원자로를 폐쇄해야 했을 것이다.

이시가와현 시카마치에 있는 이 원자로 건설비용은 3750억엔(32억달러)이며, 1358Mv의 전력 생산 능력을 가졌다.


잇따른 소송 속 몬주, 하마오카 원전 폐쇄 소송은 승소

일본에서 호쿠리쿠 전력 사건처럼 원자로 폐쇄를 요구하는 소송이 벌어지는 것은 놀라운 게 아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소송들이 많았다. 추부 전력이 운영하는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소를 즉각 폐쇄하라는 시민단체의 소송의 경우, 원고는 도쿄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하면 이 원자로가 도쿄를 포함한 지역에 심각한 방사능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것은 이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했다는 점이다.

앞서 일본에서 원자로 폐쇄 소송이 이긴 경우는 몇 년전 몬주 사건 뿐이었다. 2003년 1월 나고야 고등법원의 가나자와 지법은 1983년 몬주 건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승인을 무효화했다. 일본 정부가 이 원자로 건설에 앞서 안전평가를 부실하게 해 원자로에서 냉각재가 대량 유출되는 사고를 일으켰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2005년 5월30일 대법원은 정부의 최초 안전평가는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이 없다면서 2심 판결을 뒤집었다(하지만 이후에도 몬주 원자로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아 지금까지 가동을 못하고 있다.편집자 ).

호쿠리쿠 전력은 이번 판결로 원자로 폐쇄를 이행할 법적 강제를 받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은 향후 큰 지진이 오면 방사능 재앙이 닥칠 것으로 믿게 되면서 원전에 대한 지지를 회복하기 힘들 게 됐다.


'원전산업의 치어리더' IAEA조차도 일본에 경고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은 이것뿐이 아니다. 지난 2008년 12월에는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원전 안전 규정을 강화하라는 권고를 받았다.(2009년에는 일본인 아마노 유키야가 IAEA 사무총장에 취임하며 IAEA가 원전마피아에 장악됐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편집자)

IAEA의 한 관리는 2008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원자력안전보안그룹(NSSG)회의에서 일본 원전 안전 규정 지침은 지난 35년간 불과 세 차례만 개정된 낙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최근 발생한 지진 중에는 원전의 내진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사례도 일부 있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권고와 경고에 대해 일본 정부는 위기대응센터를 설립하는 등 대책에 나서는 시늉만 한채 지금까지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인재'였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원자력 사고 은폐, 원전 비용 문제 축소"

당시 고노 타로 중의원(자민당)은 2008년 10월 미국 외교관들에게 일본 정부가 원자력 사고를 은폐하고 있으며 원자력 산업과 관련된 비용 문제도 숨기고 있다고 말한 내용도 공개됐다.

지난 16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설계에 참여했던 오구라 시로(小倉志郞·69)씨가 도쿄 외신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충격적인 폭로를 하기도 했다.

오구라 씨와 기자회견에 동석했던 원전 전문가들은 "설계 당시 (지진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면서 후쿠시마 원전 설계 및 시공 자체가 부실투성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전문가들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서도 방사선 누출 위험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학박사인 사키야마 히사코 씨는 "일본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진설계와 실제 내진 능력과는 딴판

오구라 씨의 기자회견 내용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건설 현장감독의 편지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원전의 내진설계와 실제 건설 후의 내진 능력에 크게 차이가 나는 부실공사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원전 배관 기술 전문가로 20년을 일하다가 암으로 사망한 히라이 노리오 씨가 1996년에 쓴 글에 따르면, 1993년, 오나가와 원전 1호기는 불과 진도 4 정도의 지진으로 인해 출력이 급상승하여 자동 정지를 했다. 이 원전은 1984년에 진도 5에서 멈추도록 공사를 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도 내진설계상으로는 규모 7.9까지 견디도록 되어 있지만, IAEA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의 내진능력을 7.0으로 평가했다.

또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모델 자체가 설계 결함이 있다는 경고는 원전 건설 당시부터 있었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폭로된 내용이지만, 최근에 다시 미국의 원자력감시단체에 의해 발표됐다.

충격적인 것은 이미 25년전인 1986년에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는 지진과 관계없이 중대한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90%에 달한다는 경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담당 책임관료 해럴드 덴턴은 당시 원전 산업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자로들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마크 1' 모델로, 압력제어장치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압 능력이 작아 압력 제어에 실패할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미국 <ABC> 방송에 따르면, 데일 G 브라이든보 등 GE 기술자 3명은 1975년 이 모델에 대한 설계 검토 결과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결함이 있다는 확신에 따라 GE를 떠났다.

또한 후쿠시마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지난달 수명이 다한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 1호기의 가동 기한을 10년 연장하기 위한 로비에 성공해 정부의 결정까지 받아냈으나, 이 원자로는 3.11 대지진으로 폭발했다.

원전 운영업체가 안전점검 대행, 공익제보로 조작 폭로돼

이쯤되면 전세계의 원전산업의 배후에 '원전 마피아'가 있다는 분석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일본은 정경유착을 의미하는 각종 세력이 많기로 악명이 높다는 점에서 '원전 마피아' 세력이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장정욱 미쓰야마대 교수(경제학부)는 최근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원자력 마피아'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주목을 받고 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건설업체와 유착한 의원들을 가리키는 '건설족'처럼 '원자력족'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있으며, 금융이나 건설 등 각종 산업과 연결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정부의 원전 안전 규정이라는 것은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03년 이전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정부가 원전의 안전점검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 점검을 하는 주체는 운영사인 도쿄전력이며, 정부는 도쿄전력이 보고하는 안전점검 결과를 추인할 뿐이었다.

이런 구조라면 도쿄전력이 안전점검을 조작해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도쿄전력은 지난 2002년 29건의 원전 관련 조작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2002년 8월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원은 도쿄전력이 안전성 검사보고서를 조작해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원전 17기 가운데 13기에서 발생한 용기 상부 균열을 비롯해 제트 펌프, 연결고리 덮개, 노심계측기 등 압력용기의 여러 부문에 대한 안전성 점검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실 일본 정부가 스스로 안전점검 조작 사건을 적발한 것도 아니다. GE인터내셔널의 전 직원이었던 한 엔지니어가 2000년 공익제보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조사에 나선 것이다.

원전 노동자, 이름값 못하는 방호복 속에 목숨 건 작업

원전 현장감독으로 오랫동안 방사능에 피폭돼 암에 걸려 사망한 히라이 노리오 씨는 '원자력 마피아'들이 단물을 빨고 있을 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작업요원들의 '막장 인생'을 토로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방사능을 막아주는 방호복이라는 것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지금 후쿠시마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남아있는 작업요원들에게 '감동'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악어의 눈물'일 수 있다.

18일 국내 원전에서 30년 근무한 뒤 퇴직한 김장구 씨는 <CBS> '변상욱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방호복의 실상을 이렇게 증언했다.

"방호복 자체로는 무슨 방사선을 차폐하는 효과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알파선이나 베타선의 약간 정도는 방호가 되겠지만 감마선은 그 모든 것을 뚫고 지나가기 때문에 아마 그런 방호복으로는 오염을 방지하는 역할, 몸에 오염 물질이 묻지 않도록 하는 그런 효과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이른바 '결사대 50인'들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4000밀리시버트(mSv)라는 그런 것을 보통 반치사선량 LD50이라고 하는데 전신에 조사됐을 경우에 30일 내에 50%가 사망하는 양입니다. 7000밀리시버트(mSv)가 되면 이건 전치사량입니다. LD100 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2, 3주 내에 100%가 다 사망하는 그런 양이 됩니다. 일본 과기청에서의 연간 작업 방사선 피폭선량, 작업 종사자일 경우에 50밀리시버트(mSv)밖에 안되는데 아마 그 정도만 가지고는 그 안에 들어가서 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금 안될 겁니다."

이런 원전산업의 현실 때문에 영국의 <가디언>은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늦장 경고를 했다는 IAEA조차 "원전산업의 치어리더"라면서 "원전산업은 허위와 은폐, 비밀과 재원 낭비로 점철된 산업"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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