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 날리기' 12일 행사 돌연 취소

탈북자·보수단체, 황진하-<조선일보> 지적에 움찔?

오는 12일로 예고됐던 탈북자 및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 날리기' 행사가 돌연 취소됐다. 관련 단체 간부가 상을 당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비판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북한이 대북 전단 발송지인 임진각을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위협한 이후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과 인근 주민들은 물론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탈북자 단체들은 애초 10일 전단을 발송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어 바람 방향만 좋으면 10일이라도 당장 대북전단을 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9일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북쪽으로 바뀌는 10일 이들이 전단을 띄울 것으로 점쳐졌으나 박 대표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10일에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오늘은 바람이 안 맞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8~10일 사이에 풍향이 바뀐다고 해서 그 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0일 오전부터 전단을 날기에 좋은 남서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9일 오후까지는 북서풍이 불었으나 이후 남서풍으로 바뀌었고 11일까지는 주로 서풍 또는 남서풍이, 12일 오전에는 남동풍이 불 것으로 예보했다. 박 대표가 "6시간 이상 북쪽으로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감안해도 '10일 발송'에 바람 걱정은 없었던 셈이다.

▲ 10일 임진각 인근의 전경. 관광객이 없어 한산한 가운데 평화와통일을찾는사람들 등 시민단체들이 전단 살포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한나라당 등 보수 일각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로 파주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지난 8일 "이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당부드린다"며 "임진각보다는 다른 곳에서 비공개적으로 대북 전단 풍선을 날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조선일보>가 10일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8일자 사설에서 '대북풍선단장'으로 불리는 탈북자 이민복 씨의 "임진각은 상징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풍선을 띄우긴 가장 나쁜 곳"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대북 전단을 보내는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행사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납북자가족모임 등 일부 보수단체는 12일 전단 발송 행사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 행사에 주로 관여하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간부가 가족의 상을 당해 일단 행사를 잠정 연기하기로 협의를 마쳤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탈북자 단체의 박상학 대표도 이날 오후 4시경까지는 "12일에 바람이 아주 좋아서 그날 할 예정"이라면서 강행 의지를 피력했으나 7시경 행사의 연기를 확인했다. 박 대표는 행사가 취소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취소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다음 주 중 바람 방향을 고려해 날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날짜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박 대표는 황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지역구 의원인데, 정치인들이 표 떨어질 일 하겠냐"며 "표 때문에 한 얘기인데 진정성이 있겠냐, 신념을 가지고 한 얘기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절대 다수 국민들은 전단 살포에 동의한다"며 "임진각 인근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북한의 공갈협박에 움츠러들지 않고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가서 (발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진각 상인들이 발송 자제를 요구하는데 대해 박 대표는 "우선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계절이 아니고, 또 (관광객이) 줄었다면 구제역 때문"이라며 "과학적, 객관적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주민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임진각 인근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임진각 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배(33) 씨는 "북한의 위협 다음부터 관광객이 확실히 줄었다"면서 "원래 주말에 평균 4~5팀 정도 예약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매상이 반 정도 줄었다"며 전단 발송이 강행될 경우 막아서겠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다른 식당 주인 김병기(63. 가명) 씨도 "전단을 뿌리면 상황이 안 좋다"며 "뿌린다고 하면 관광객들이 안 들어온다. 실제로 확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상에 대해 묻자 "반? 반이 뭔가. 그 이상 더 줄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먹고 사는 문제, 생계가 달려 있는 우리로서는 (전단 발송을) 못 하게 할 것"이라며 "뿌리는 사람들이야 여기서 던지고 가면 끝날지 몰라도 우리는 다르다"며 대북 단체들에 자제를 요구했다.

이날 임진각에서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등 시민단체들이 대북 전단살포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통사 지도위원인 명진 스님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대북전단 살포는 (…) 심리전의 일환으로 전쟁의 한 형태"라며 "정부의 지원 또는 방조 없이는 실행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반북 대결적 본질이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날 집회가 벌어지는 동안 뒤쪽 망배단에서는 실향민으로 보이는 노인이 망향제를 지내고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명진 스님은 "이는 '남과 북은 언론‧삐라 및 그밖의 수단‧방법을 통해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않'기로 한 남북기본합의서 제3장 8조 위반"이며 "(북에) 물품 등을 반출하거나 반입하려는 자는 관련 내용에 대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1항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 ⓒ프레시안(곽재훈)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은 "(탈북자 단체 등은) 사실상 내란을 선동하고 주민 봉기를 유도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려 하고 있다"며 "이런 대북 적대적 도발은 남북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유 팀장은 "독수리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심리전을 전개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정부가 막기로 한다면 근거도 찾을 수 있고 법에도 저촉되는데, 민간단체 행동이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몇몇 관광객들만이 드나들었을 뿐, 임진각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일본 관광객 카타기리 료코 씨는 집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북쪽 주민들이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중동 민주화 바람도 있으니 전단 발송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그런데 북한에서 사격을 한다고 했으면 정말 할 것 같다"며 우려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전단을 보내더라도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 관광객 김승세(44) 씨는 "보낼 필요도 없는데 뭐하러 보내나"라면서 "일부러 북한에 시비를 거는 건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단 발송 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왔는데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며 "보내지 말라고 해요"라면서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한국인 여성 관광객은 체념했다는 투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쏘면 죽는 거고. (전단 발송을) 말린다고 듣나…. 내 말 들으면 말리지."

"애기봉 성탄 트리는 '정권 안보용' 트리"

평통사 집회에 참석한 이적 민통선 평화교회 담임목사는 "대북 전단을 발송하겠다는 분들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애기봉 등탑 트리가 떠오른다"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 목사의 발언은 북한의 타격 위협이 되는 시설물 인근 주민들의 공포를 생생히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의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 당시를 회상하며 "서울 순복음교회에서 성도 400명을 데리고 와서 점등식을 한다면서 법석을 떨었다"면서 "이들이 등불 켜고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500~600명의 주민들은 대피 소동을 벌이고 공포에 떨며 방공호에 숨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담임목사 ⓒ프레시안(곽재훈)
이 목사는 스스로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안 보수교회의 담임목사"라고 밝히며 "같은 교회 목사지만 애기봉 트리 점등을 반대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려와, 남북 간에 맺은 협정을 남한이 먼저 깨트리는 것은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민족 공멸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기봉 트리에 당초 지난해 12월 26일까지만 불을 밝히기로 했다가 올해 1월 8일까지 연장한 것에 대해서 그는 "(점등 기간이) 김정은 북한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생일까지라고 하는데, 성탄 트리와 김정은이 무슨 상관이냐"면서 "김정은 생일을 축하라도 해줄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사목하고 있는 교회에서 당시 점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면서 "애기봉 트리는 예수님의 성탄 트리가 아니고 이명박 정권이 사주하는 '정권 안보용' 트리"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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